"어쩜 이리 기특할까" 20-20 대기록 대신 '초구 기습번트' 댔다… KIA 팬들 울린 박재현의 위대한 희생
생애 첫 '20-20 클럽'까지 단 홈런 한 방 남았던 8회말 마지막 타석
개인 타이틀 향한 풀스윙 대신 '팀 3위' 확정 짓는 기습번트… 2년 차 막내의 소름 돋는 헌신
케네디 멘탈 붕괴시킨 이 번트 하나가 밥상 차렸다
김도영 극장 투런포의 완벽한 징검다리
[파이낸셜뉴스] 단 하나의 홈런. 배트를 쥔 야구 선수라면, 그것도 야구 인생에 다시 올지 모를 '20홈런-20도루' 대기록을 단 한 방 남겨둔 상황이라면 눈이 뒤집히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호랑이 군단의 2년 차 막내는 개인의 찬란한 영광 대신, 팀을 가을야구로 이끄는 진흙탕 헌신을 택했다. KIA 타이거즈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린 박재현(21)의 이야기다.
12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정규시즌 최종전. 승리하면 3위로 준플레이오프 직행, 패배하면 4위로 벼랑 끝 와일드카드 결정전으로 떨어지는 운명의 단두대 매치였다.
이날 박재현의 타격감은 하늘을 찔렀다. 1회말 첫 타석부터 시원한 우월 솔로 아치를 그리며 기선을 제압했다. 이 홈런으로 시즌 19호 포를 기록한 박재현(21도루)은 호타준족의 상징인 '20-20 클럽'에 홈런 단 한 개만을 남겨두게 됐다.
운명의 8회말, 2-2로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박재현이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다. 사실상 정규시즌 마지막 타석. 스윙 한 번에 20-20이라는 엄청난 타이틀이 걸려 있었다. 타자라면 누구나 한 방을 노리고 풀스윙을 돌리고 싶은 유혹에 빠질 법한 절대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박재현의 배트는 허공을 가르지 않았다. 그는 LG 좌완 불펜 존 케네디의 1구째가 날아오자마자, 망설임 없이 방망이를 눕혀 3루 쪽으로 절묘한 기습번트를 댔다. 대기록을 포기하고 무조건 살아서 출루하겠다는 의지. 1루를 향해 전력 질주한 그는 기어코 세이프 판정을 받아냈다.
개인의 영광을 버리고 팀을 택한 이 위대한 '희생 번트 안타'는 곧바로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대기록을 앞둔 타자가 초구부터 번트를 대고 뛸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던 케네디는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차려진 무사 1루의 밥상. 후속 타자는 다름 아닌 '슈퍼스타' 김도영이었다. 심리적으로 쫓긴 케네디의 실투를 놓치지 않은 김도영은 그대로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결승 투런 홈런(시즌 45호)을 꽂아 넣으며 광주벌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결국 박재현의 이타적인 기습번트 하나가 김도영의 결승포를 불렀고, KIA를 4-2 승리와 함께 정규시즌 3위(준PO 직행)로 이끄는 가장 완벽한 징검다리가 된 셈이다.
과거 KBO리그에서는 시즌 막판 개인 기록을 위해 승부를 외면하거나 얼굴을 붉히는 이기적인 촌극이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하지만 KIA의 2년 차 외야수는 달랐다. 20홈런-20도루라는 빛나는 훈장을 내려놓고 팀의 가을을 위해 몸을 던졌다.
비록 개인 기록지에는 19홈런으로 남게 됐지만, 광주 홈팬들의 심장 속에 박재현이라는 이름 석 자는 그 어떤 대기록보다 강렬하게 새겨졌다. 이것이 바로 강팀 타이거즈를 지탱하는 진짜 저력이다.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