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내가 쓰러지면 대출은 어떡하지?"… 내시경 침대 위에서 밀려오는 숨막히는 공포 [어른의 오답노트]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올해 건강검진 아직 안 받으신 분들, 서둘러 예약 바랍니다." 인사팀의 독촉 메일에 등 떠밀려 예약한 10월의 건강검진. 밤 9시부터 시작되는 금식 시간을 앞두고, 수면 내시경 침대 위에서 혹시나 몹쓸 병이라도 발견될까 봐 두려워하는 4050 남성들 내 몸이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는 가장들의 간절한 수요일 밤에 대하여.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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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10월 중순의 수요일 밤 9시. 스마트폰 알람이 울린다. '내일 건강검진을 위해 지금부터 물을 포함한 모든 음식물의 섭취를 금합니다.'

습관적으로 냉장고 문을 열려던 손을 멈칫하고 거실 소파에 앉는다. 배고픔보다 먼저 밀려오는 것은 막연한 불안감이다. 작년 검진 결과지에 붉은 글씨로 적혀 있던 '지방간 의심', '콜레스테롤 수치 주의' 같은 단어들이 유령처럼 떠오른다.

"요즘 자고 일어나도 피곤하던데, 혹시 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며칠 전부터 속이 쓰리던데 위가 잘못된 건 아니겠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길한 상상에 휩싸인 채, 고요한 거실에서 새근새근 잠든 일곱 살 아들의 작은 숨소리를 듣다 보면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한다.

◇ 자동차 엔진오일은 챙기면서, 내 몸은 방치했던 모순
대한민국 4050 남성들의 건강 관리는 기묘한 모순을 안고 있다. 가족을 태우고 다니는 자동차는 5000km마다 비싼 합성유로 엔진오일을 갈아주고 자잘한 소음에도 즉각 정비소를 찾으면서, 정작 자신의 몸은 빨간 경고등이 켜질 때까지 철저히 방치한다.

주식 계좌의 수익률이나 아파트 평수에는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내 혈압 수치와 간 수치는 인사팀의 독촉이 있기 전까지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아침마다 아내가 챙겨주는 정체 모를 영양제 몇 알을 한 움큼 입에 털어 넣으며, 마치 그것이 내 건강을 지켜주는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팍팍한 하루를 버텨낼 뿐이다.

◇ 내시경 침대 위, 죽음보다 두려운 '책임'의 무게

건강검진 당일, 차갑고 낯선 병원 냄새 속에서 헐렁한 검진복으로 갈아입고 나면 평소의 당당하던 김 부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진다. 특히 수면 내시경을 위해 웅크리고 누워 혈관으로 마취약이 들어오는 그 짧고 서늘한 10초. 가장들의 머릿속을 스치는 공포는 '죽음 그 자체'가 아니다.

"내가 여기서 쓰러지면, 아직 한참 남은 주택담보대출은 누가 갚지?", "내년에 학교 들어가는 우리 아들은 누가 책임지나."

마취에서 깨어나 몽롱한 정신으로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은 의사의 미묘한 표정 변화다. "가벼운 위염 말고는 깨끗하시네요"라는 말 한마디를 듣고 나서야, 꽉 막혔던 숨을 토해내며 안도한다. 내가 아프면 내 가족의 일상이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는 끔찍한 자각. 4050 남성에게 건강이란 '오래 살기 위한' 개인적 욕망이 아니라, 가족의 생계를 지탱하는 가장으로서 절대 고장 나면 안 되는 '핵심 인프라'를 지켜내야 하는 처절한 의무감인 셈이다.

◇ 살기 위해 먹는 영양제, 당신의 몸이 곧 최고의 우량주다

병원 문을 나서며 "올해부터는 진짜 술 줄이고 운동한다"고 다짐하지만, 오후가 되면 또다시 모니터 앞에 앉아 상사의 질책과 쏟아지는 업무를 맨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서글픈 현실이다.

하지만 수요일 밤, 빈속을 부여잡고 내일의 내시경을 걱정하고 있을 당신에게 이 말만은 전하고 싶다. 당신이 뼈 빠지게 일해서 모은 주식과 부동산보다, 끄떡없이 버텨주는 당신의 두 다리와 심장이야말로 가족에게는 절대 상장폐지 되지 말아야 할 최고의 우량주다.

용종 하나를 떼어내고도 쉴 틈 없이 회사로 복귀하는 당신. 미련해 보일지 몰라도, 그 악착같은 책임감 덕분에 당신의 가족은 오늘도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스마트폰의 주식 창 대신, 묵묵히 버텨준 스스로의 어깨를 한 번쯤 따뜻하게 두드려 주자.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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