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로 켜켜이 쌓은 바위…신미경 '거석' 국내 첫 대규모 공개 [fn 아트스냅]
10년의 재료 실험 담은 작품 한자리에
AOD 뮤지엄서 도자·평면 등 200여점
16일 개막…내년 2월 28일까지 무료 관람
푸르고 붉은 층 사이로 울퉁불퉁한 표면이 드러난다. 지층을 잘라 세운 듯한 덩어리는 흙을 빚고 구워 만든 조각이다. 비누로 유물과 고전 조각을 재현해온 신미경이 이번 전시에서는 바위를 닮은 도자로 물질에 새겨진 시간을 묻는다.
16일 서울 마포구 AOD 뮤지엄에서 개막하는 신미경 개인전 'Becoming Stone: From the Remains'는 '거석 시리즈'와 올해 신작 등 200여점을 선보인다. 미술관을 운영하는 다림문화재단은 오랜 재료 실험을 거쳐 발전시킨 '거석' 연작을 국내에서 처음 대규모로 소개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가마 속 파편에서 시작된 '거석'
작업의 출발점은 네덜란드 도자 창작기관 EKWC의 가마에서 발견한 파편이다. 다른 작가의 대형 도자 작품이 가마에서 구워지는 과정에서 깨져 남은 조각들이었다. 신미경은 의도한 형태를 잃은 잔해에서 지질학적 사건 뒤에 남은 암석과 같은 형상을 발견했다.
그는 흙을 빚고 구부린 뒤 표면을 갈아내고 구워 오래된 광물 덩어리를 닮은 도자를 만들었다. 이를 쌓아 바위 같은 구조물을 세웠다. 새로 만든 도자에 오래된 유물의 인상을 입힌 셈이다. 이번 전시에는 2021년 네덜란드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박물관에서 선보인 주요 작품도 포함됐다.
1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가는 "서툰 작업이 나오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작할 때부터 10년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물의 표면에서 과거의 시간을 읽듯 조각을 바라보지만, 눈앞의 흔적은 동시대의 제작 과정에서 생겨났다. 작품의 나이를 짐작하던 시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피는 쪽으로 옮겨간다.
층층이 포개진 작품에서는 전체 윤곽과 층 사이의 경계를 번갈아 볼 만하다. 한 덩어리의 바위처럼 보이던 형상도 색과 질감이 다른 층을 따라가면 여러 부분이 맞물린 구조로 읽힌다. 자연의 지층을 떠올리는 순간에도 쌓아 올린 손길이 함께 드러난다.
■비누에서 도자로, 덩어리에서 화면으로
신미경은 일상에서 쓰는 비누로 역사적 유물과 고전 조각을 재현하며 재료와 시간, 문화적 가치의 관계를 탐구해왔다. '거석'은 이 관심을 도자로 확장한 작업이다. 익숙한 유물의 형태를 낯선 재료로 옮기던 데서 나아가, 흙으로 빚은 덩어리가 오래된 돌로 읽히는 조건을 살핀다.
올해 제작한 '언노운 페인팅(Unknown Painting)' 연작은 이 질문을 벽면으로 옮긴다. 회화처럼 걸린 화면에는 조형 재료인 제스모나이트와 금속 분말을 바르고 쌓았다. 특정 대상을 그리기보다 재료가 겹치며 만드는 형상과 흔적을 드러낸다.
두 연작을 함께 보면 덩어리의 윤곽뿐 아니라 표면을 읽는 일이 중요해진다. '거석'에서 층이 쌓인 구조를 살폈다면 평면 작업에서는 화면 위에 축적된 재료의 흔적을 따라갈 수 있다. 조각과 회화라는 구분보다 물질이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에 시선을 두게 하는 구성이다.
전시 제목의 'Becoming Stone'은 '돌이 되어간다'는 뜻이다. 흙과 도자, 돌 사이에서 달라지는 사물의 인식을 가리킨다. 파손된 도자의 잔해가 새로운 작업의 출발점이 됐듯, 완성된 형태보다 그 전후의 변화를 생각하게 한다.
전시는 AOD 뮤지엄 지하 1층에서 내년 2월 28일까지 이어진다. 관람은 무료다.
[email protected] 장인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