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먹고 배가 찢어질 듯"…담석인 줄 알았더니 범인은 '이 벌레'였다
"삼겹살이 독약으로"…고기 섭취 수시간 뒤 찾아오는 극심한 복통
범인은 작은 '진드기'…침투한 당 분자가 만든 육류 알레르기 '알파갈 증후군'
일반 식중독과 달라 원인 찾기 어려워…심하면 '아나필락시스' 생명 위협까지
[파이낸셜뉴스] 평생 아무렇지 않게 먹었던 햄버거와 소시지가 어느 날 갑자기 극심한 복통을 유발한다면 어떨까. 단순한 식중독이나 소화불량으로 넘기기 쉽지만, 원인은 뜻밖에도 몇 주 전 몸에 붙었던 작은 '진드기'에 있을 수 있다.
최근 미국의 한 여성이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먹을 때마다 심한 복통에 시달리다 진드기 물림으로 유발되는 희귀 알레르기 질환인 '알파갈 증후군(Alpha-gal syndrome)'을 진단받은 사연이 알려졌다.
현지 시간 9일 미국 피플지와 CBS 방송 등에 따르면, 펜실베이니아주에 거주하는 앤절라 런디는 지난 6월 소시지를 먹은 뒤 처음 몸의 이상을 느꼈다. 일주일 뒤 남편과 햄버거를 나눠 먹은 후에는 잠에서 깰 정도의 극심한 복통이 3시간이나 이어졌다. 처음엔 담석 등 소화기 질환을 의심했지만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원인을 찾지 못해 고통받던 그에게 지인이 "진드기 물림으로 육류 알레르기가 생길 수 있다"는 뜻밖의 조언을 건넸다. 그제야 런디는 6월 초 진드기에 물려 심하게 가려웠던 기억을 떠올렸고, 혈액검사 결과 '알파갈 증후군'이라는 최종 진단을 받았다.
알파갈 증후군은 특정 진드기에 물린 뒤 소, 돼지, 양 등 포유류의 고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질환이다. 원인은 '갈락토스-알파-1,3-갈락토스(줄여서 알파갈)'라는 당 분자다. 알파갈은 대부분의 포유류에 존재하지만 사람의 몸에서는 자연적으로 생성되지 않는다.
문제는 일부 진드기의 침에도 이 알파갈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진드기에 물려 알파갈이 인체로 유입되면, 우리의 면역체계는 이를 위험 물질로 인식해 방어 태세를 갖춘다. 이후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섭취하면 면역체계가 격렬하게 반응하며 두드러기, 구토, 복통 등의 알레르기 증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이 증후군은 주로 '론스타 진드기(Lone Star tick)'에 물렸을 때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파갈 증후군이 치명적인 이유는 일반적인 음식 알레르기와 달리 증상이 '뒤늦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보통의 알레르기는 원인 식품 섭취 직후 반응이 오지만, 알파갈 증후군은 육류 섭취 후 약 2~6시간이 지나야 증상이 발현된다. 저녁 식사로 고기를 먹고 멀쩡히 잠자리에 들었다가 한밤중에 극심한 고통으로 깨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시간 차가 크다 보니 환자 스스로 고기가 원인임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증상도 가벼운 소화불량부터 심한 복통, 설사, 전신 두드러기까지 다양하다. 가장 심각한 것은 전신 급성 알레르기 반응인 '아나필락시스'다. 혈압이 급감하고 호흡곤란이 오며 심하면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게다가 육류를 먹을 때마다 매번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어서 방심하기 쉽다.
이 질환은 단순히 고기만 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포유류가 원천인 우유, 유제품, 젤라틴이 포함된 식품이나 의약품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단, 반응 정도에 따라 회피 대상은 전문의와 상의해 결정해야 한다.)
미국 CDC는 알파갈 증후군의 영향을 받는 미국인이 최대 45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로선 예방 백신이나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어, 원인 식품을 철저히 피하고 추가적인 진드기 물림을 예방하는 것이 유일한 대처법이다. 중증 환자의 경우 응급상황을 대비해 에피네프린 자가주사기를 처방받기도 한다.
야외활동 후 진드기에 물린 적이 있고, 육류를 먹은 지 수시간 뒤 원인 모를 복통이나 두드러기가 반복된다면 단순 소화불량으로 넘기지 말고 알레르기 내과를 찾아 정확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작은 진드기 한 마리가 평생 즐겨 먹던 음식에 대한 우리 몸의 면역 지도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