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없이 오간다" 최태원 '한일 경제공동체' 日도 주목
GDP 6조달러 경제권 구상
에너지·반도체 협력이 출발점
다케다 "한국의 해외 진출력과 일본의 신뢰성 결합해야"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 한국과 일본이 여권 없이 오가고 에너지와 반도체 공급망을 공유하는 '한일 경제공동체' 구상에 일본에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인구 감소와 성장 정체, 미국의 통상 압박에 맞서 양국의 시장과 산업 경쟁력을 결합하자는 취지다. 다만 정치·제도적 장벽이 높은 만큼 에너지 공동 조달 등 실익이 분명한 분야부터 협력을 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6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제안한 한일 경제공동체 구상에 일본 경제계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한일경제인회의에서도 일본 측 참석자들의 전향적인 발언이 잇따랐다.
최 회장이 2024년 제시한 구상은 사람과 상품, 자본, 서비스가 자유롭게 이동하는 유럽연합(EU)을 모델로 한다. 닛케이는 실현될 경우 국내총생산(GDP) 6조달러가 넘는, 미국·EU·중국에 이은 세계 4위 경제권이 탄생한다고 소개했다. 양국이 힘을 합쳐 국제 규칙을 따르는 데서 나아가 규칙을 만드는 쪽에 서자는 것이다.
대외 환경 변화도 협력 필요성을 키우고 있다. 양국은 미국과의 동맹에 안보를 의존하면서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아래 통상 압박과 안보 불확실성에 노출돼 있다. 중국의 압박에도 대응해야 한다.
우선 협력 대상으로는 에너지가 꼽힌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양국이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를 공동 구매·비축하면 비용을 낮추고 공급 차질에 대응할 수 있다는 논리다. 닛케이에 따르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월 정상회담에서 원유·석유제품 비축과 상호 융통 등 에너지 안보 협력을 구체화하기로 했다.
반도체에서는 한국의 제조 역량과 일본의 소재·장비 경쟁력을 결합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장기적으로는 유럽의 솅겐협정처럼 출입국 심사를 없애 여권 없이 양국을 오가는 구상도 제시됐다.
일한의원연맹 회장인 다케다 료타 전 총무상은 이날 닛케이 인터뷰에서 EU식 통합은 쉽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서로 이익이 되는 분야에서는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역량에 주목했다. 일본은 내수만으로도 산업이 어느 정도 성장할 수 있지만 한국은 작은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에서 경쟁해왔다는 평가다. 그는 "일본은 한국의 해외 진출력을 활용하고, 한국은 일본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활용하는 형태로 부가가치를 높이면 된다"고 말했다.
공동체 구상이 정상 간 공식 의제로 채택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한 일본 정부 관계자는 "국민감정에도 배려할 필요가 있다"며 "일본 측 이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장 통합의 효과에도 온도차가 있다. 한국은 자국 인구의 3배가 넘는 통합 시장에 접근하게 되지만 일본의 시장 확대 폭은 약 1.5배다. 대한상의가 지난 7월 발표한 조사에서 공동체 구상 찬성률은 한국 약 70%, 일본 약 60%였다. 역사 문제도 여전히 변수다.
이에 따라 한국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등 단계적인 협력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양국 간 별도 자유무역협정(FTA)이나 경제동반자협정(EPA)이 없는 만큼 한국의 CPTPP 참여만으로도 시장 개방을 크게 진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야카와 가즈노부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아시아경제연구소 주임연구원은 EU형 공동체의 정치·제도적 부담을 지적하며 단계적 접근을 주문했다. 호주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등에도 열린 틀로 설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케다 전 총무상은 "정치 관계가 악화하더라도 민간 기업 간 협력이 방해받지 않는 환경을 만들겠다"며 "정치에 과도하게 휘둘리지 않고 국제 경쟁에서 함께 이길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서혜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