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가족들 다 잠든 토요일 밤의 거실… 아빠들이 소파 귀신이 되는 이유 [어른의 오답노트]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파스 냄새 짙게 밴 토요일 밤 11시의 고요한 거실. 기절할 듯 피곤한 몸으로도 억지로 밤을 지새우는 건, 아빠 품을 떠날 날이 머지않은 아이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아두고 싶은 서글픈 미련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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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토요일 밤 11시. 거실 불은 이미 꺼졌고, 안방에서는 아내와 아이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만 들려온다.

치열했던 평일의 생존 경쟁을 마치고 맞이한 주말이지만, 4050 가장들의 토요일은 결코 휴식이 아니다.

아침 일찍부터 무거운 몸을 이끌고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으로 나가 일곱 살 아들과 스텝을 맞췄다. 아이의 서툰 드리블과 슈팅 연습을 끝없이 받아주다 보면, 마음은 아직 20대 국가대표지만 현실은 연골이 시큰거리는 마흔의 아저씨일 뿐이다.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 씻고 누우면 어느새 밤 11시. 당장이라도 기절할 듯 피곤하지만 이상하게도 눈망울은 더 또렷해진다.

뻐근한 종아리와 어깨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아무도 없는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스마트폰을 켠다. 딱히 볼 것도 없으면서 숏폼 드라마나 유튜브 알고리즘을 멍하니 넘겨보는 이 시간. 아내들은 "피곤하다면서 왜 안 자고 청승이냐"며 혀를 차지만, 아빠들이 억지로 졸음을 쫓아가며 거실을 지키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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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회사의 부품으로, 토요일 낮에는 가족의 든든한 보호자와 운전기사로 모든 에너지를 태웠다.

온전히 '나'라는 사람의 욕망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은 모두가 잠든 이 캄캄한 토요일 밤의 거실뿐이다. 이 아까운 시간을 그냥 잠으로 날려버리는 것은, 왠지 내 인생의 마지막 남은 주도권마저 빼앗기는 것 같아 억울하기만 하다. 그렇게 소파라는 고독한 무인도에 홀로 표류한 채,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 영상을 보며 헛헛한 마음을 달래는 것이다.

하지만 무의미하게 화면을 내리던 손가락은 문득 현관 앞 바닥에 시선이 닿으며 멈칫한다. 흙투성이가 된 채 뒹굴고 있는 아주 작은 축구화 한 켤레. 낮에는 "아빠, 한 번만 더 차자!"며 조르는 아이의 끈질김에 진저리를 쳤지만, 어둠 속에서 그 작은 신발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불현듯 뼈아픈 자각이 밀려온다.

이토록 고단하고 벅찬 주말의 노동이 사실은 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눈부신 전성기라는 사실이다.

몇 년만 지나도 아이는 더 이상 아빠와 축구공을 차지 않을 것이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피시방으로 달려가거나 방문을 닫아걸 테고, 그때가 되면 현관에는 흙 묻은 작은 운동화 대신 무심하고 커다란 슬리퍼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것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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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온전히 쓰임 받고, 누군가의 세상에서 완벽한 영웅으로 존재할 수 있는 유효기간.

몸이 부서질 것 같은 이 피곤함이야말로 내가 누군가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라는 가장 확실하고 슬픈 증명서인 셈이다.

스마트폰의 창백한 불빛을 끄고, 파스 냄새 진동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안방으로 향하자.

어둠 속에서 아무렇게나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 아이의 이마를 조심스레 쓸어 넘기며, 내일 아침이면 또다시 시작될 고단한 일요일을 기꺼이 다짐해 본다.

"그래, 아빠 무릎 연골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내일도 원 없이 뛰자."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가정을 지켜내는 4050 아빠들의 토요일 밤은, 그 어떤 화려한 불금보다 묵직하고 거룩하게 저물어 간다.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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