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바꾸는 '조용한 혁명'…갤러리 P&R 한·독 교류전 개막 [fn 아트스냅]
서울 부암동 '시와 혁명, 그리고 그 너머' 박광성·뤼퍼츠 등 한국·독일 작가 6인 회화·판화·조각·AI로 존재와 감각 탐색 16일 개막식 열어…11월 30일까지 전시
인공지능(AI)이 바꾼 모나리자의 얼굴과 커다란 발이 두드러지는 채색 청동 인물상이 익숙한 시선을 흔든다. 서울 부암동에 모인 한국과 독일 작가 여섯 명이 제안하는 '혁명'은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갤러리 P&R(Poetry & Revolution)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부암동 전시관에서 제1회 기획전 '시와 혁명, 그리고 그 너머' 개막식을 열었다. 독일 에센의 갤러리 클로즈와 공동기획한 첫 국제교류전이다.
■'그 너머'를 향한 예술가의 시선
김현선 피앤알 예술감독은 '그 너머'를 두고 "내가 해온 작업과 믿어온 가치, 살아온 삶의 바깥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바깥의 세계에는 아름다움뿐 아니라 혼란과 두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낯섦은 설렘과 함께 찾아온다는 뜻이다.
그는 '시'를 오래 바라보는 힘, '혁명'을 익숙한 세계를 다시 만나 시선이 달라지는 순간으로 풀며 "그런 의미에서 시는 가장 조용한 혁명"이라고 밝혔다. 피앤알은 갤러리 이름에서 출발한 '시와 혁명'을 매년 이어갈 대표 기획전으로 삼을 계획이다.
김 감독은 익숙한 기준에 따른 판단이 때로 새로운 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고 짚었다. 그는 "이해되지 않는 작품을 서둘러 평가하기보다, 왜 낯선지 오래 바라보는 것"을 제안했다.
또 "모른다는 시간을 견딜 때, 보이지 않던 세계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며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나설 때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송의달 파이낸셜뉴스 사장은 축사에서 "기존의 자신을 넘어서는 일, 작은 감각으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일"이라는 전시의 메시지에 공감을 표했다. 특히 약 3개월 전 피앤알을 처음 찾아 박광성 작품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도 전했다.
이날 개막식에는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과 이순종 자문밖문화포럼 이사장, 주한독일대사관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박광성과 한정엽이 현장에서 인사를 건넸으며, 정가 공연과 전시 투어도 마련됐다.
■X·옻칠·AI로 묻는 존재와 감각
전시에는 박광성·한정엽·이태현과 마르쿠스 뤼퍼츠·막스 울리히·요르크 W. 쉬르머가 참여한다.
박광성의 '소유와 존재'와 '제우스의 초상'은 실존을 묻는다. 검은 화면을 가로지르는 붉은 X에는 제우스의 상징성과 영원성의 의미가 겹쳐 있다. 신화 속 존재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으로 확장하며 정체성과 자유를 성찰하게 한다.
한정엽은 자체 개발한 창작 시스템 'Creative AI Engine'으로 색채·형태·패턴의 관계를 탐색한다. 'Hyper Mona Lisa' 연작은 익숙한 미술사 속 얼굴을 AI로 변환한 작업이다.
AI가 예상하지 못한 형상을 만들어내면 인간은 그 안에서 익숙한 얼굴과 의미를 찾는다. 작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이미지가 지각과 감정을 거쳐 현실처럼 경험되는 순간을 탐색한다. 영상 'Mona Lisa of Hallucination'도 함께 선보인다.
이태현의 2021년작 '무제'는 콘크리트 위에 옻을 바르고 굳힌 뒤 연마하는 과정을 반복해 스무 겹 넘게 쌓은 작품이다. 검게 보이던 표면은 빛을 받으면 붉은 깊이를 드러낸다. 칠하고 말리는 반복은 재료의 표면에 시간을 쌓는 과정이기도 하다. 도자 재료로 만든 2020년작 '무제'도 출품한다.
■인체·신화·선, 익숙한 형상의 변주
쉬르머의 채색 청동 조각은 인체의 비례와 시점을 뒤튼다. 'Akrobat mittel' 등에서 두드러지는 커다란 발은 낮은 곳에서 몸을 올려다보는 '개미의 눈높이'에서 출발했다. 청동에 흰 바탕칠을 하고 색을 입힌 뒤 연마해 회화와 조각을 한 표면 안에 겹친다. 먹 드로잉과 회화도 나와 평면과 입체를 오가는 작업을 함께 살필 수 있다.
뤼퍼츠는 석판화 위에 과슈를 덧칠한 'Ohne Titel (Michael Engel)'로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속 인물을 재해석한다. 형태를 단순화하고 특정 부분을 강조하며 구상과 추상을 결합한다. 'Europa'는 채색 청동 조각과 목판화로, 'Stillleben III'는 석판화로 만날 수 있다.
울리히는 먹과 수채, 오일파스텔로 그린 종이 작품을 선보인다. 인물과 풍경의 윤곽을 고정하기보다 겹겹이 쌓인 선의 움직임과 밀도로 대상을 드러낸다. 선이 만들어내는 리듬을 따라가며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살필 수 있다.
전시는 11월 30일까지. 화~토요일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으며 일·월요일과 공휴일은 휴관한다.
[email protected] 장인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