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라는 게 경쟁력"…뉴욕서 펼쳐진 창업가들의 꿈
뉴욕 맨해튼서 제2회 꿈 페스티벌…한인 창업자·기업인 집결
사이먼 김·라이언 김 성공담 공유…유현준 "인간의 가치 중요"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공연장 터미널5. 붉은 조명이 비추는 무대 위에는 'RISE(도약)', 'INSPIRE(영감)', 'BUILD(구축)'라는 문구가 내걸렸다. 객석에는 미국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한인 창업자와 기업인들이 자리했다.
뉴욕에서 미슐랭 스타를 받은 한식당 창업자는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겪었던 정체성의 혼란을 성공의 원동력으로 꼽았고, 한국 식품을 미국에 판매하는 기업인은 이제 K푸드의 인기를 넘어 존경받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날 열린 제2회 '꿈(KOOM) 뉴욕 페스티벌'은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창업과 투자, 글로벌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무대였다. 지난해 첫선을 보인 행사는 올해 창업기업들의 제품 전시와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강화했다. 강연의 주제는 외식사업부터 식품 유통, 인공지능(AI)까지 다양했지만 공통된 화두는 분명했다.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세계 시장에서 어떻게 새로운 경쟁력으로 바꿀 것인가였다.
행사를 이끄는 정세주 의장은 꿈 페스티벌을 만든 이유로 한국 기술과 문화의 결합을 꼽았다.
정 의장은 "한국의 테크 산업이 성장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고 한국 문화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며 "테크 스타트업뿐 아니라 문화를 활용해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하고 한국의 멋진 문화와 서비스를 통해 연대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강조한 것은 단순한 한인들의 친목이 아니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창업자들이 부족한 인적 네트워크와 신뢰 관계를 확보하고 이를 실제 사업 기회로 연결하는 공동체였다.
이날 행사에서는 해외에 진출하는 창업자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부족이 거론됐다. 현지에서 사업을 시작하려 해도 투자자를 만나거나 믿을 만한 사업 파트너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 의장은 창업자들이 이러한 모임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투자 유치와 미국 시장 진출의 기회를 확보한 사례를 소개했다.
올해는 이 같은 연결을 실질적인 사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프로그램도 확대됐다. 42개 창업기업이 참여하는 '꿈 하우스' 팝업 공간을 나흘간 운영하고, 행사 기간 다양한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행사 운영에는 약 80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했다. 정 의장은 "힘든 것은 더 잘하고 싶기 때문"이라며 "감사한 것이 90%이고 힘든 것은 10%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인이라는 공통된 배경을 사업의 출발점으로 삼되, 그 연결을 세계 시장으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날 무대에 오른 기업인들의 경험은 이러한 구상이 실제 사업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뉴욕의 미슐랭 스타 한식 스테이크하우스 '꽃(COTE)'을 창업한 사이먼 김 대표는 한국과 미국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 성공의 출발점이었다고 강조했다.
13세에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한국에서는 미국인으로, 미국에서는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지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김 대표는 "미국에 속하고 싶었지만 완전히 속할 수 없었고, 한국에 돌아갔을 때도 친구들은 나를 미국인이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처음 뉴욕 웨스트빌리지에서 이탈리아 음식점 '피올라(Piora)'를 운영했다. 미슐랭 스타까지 받았지만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김 대표는 "미슐랭 스타는 많은 것을 가져다주지만 임대료를 내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사업 실패 이후 그가 찾은 해답은 한국과 미국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대신 두 문화의 강점을 결합하는 것이었다.
미국식 고급 스테이크하우스의 서비스와 숙성육에 한국식 바비큐의 테이블 조리 방식과 다양한 고기 부위를 즐기는 문화를 접목했다. 이렇게 탄생한 꽃은 개업 약 4개월 만에 미슐랭 스타를 받았다.
김 대표는 "한국의 최고와 미국의 최고가 만나면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테이블'에 비유했다. 한국인과 미국인 중 어느 한쪽의 테이블에 앉으려 하기보다 두 문화의 장점을 결합해 자신만의 새로운 테이블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누군가 나를 초대해주기를 기다리기보다 결국 나만의 테이블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한국 문화의 경쟁력을 바라보는 시각은 김씨마켓(Kim'C Market)의 라이언 김 대표에게서도 이어졌다. 다만 그가 강조한 것은 대중적인 인기를 넘어서는 장기적인 브랜드 가치였다.
김 대표는 "우리는 인기 있는 K푸드에 갇혀 인기 있는 것으로 남을 것이냐, 아니면 존경받는 음식과 문화가 될 것이냐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K푸드라는 말 자체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상품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과 프랑스 음식이 오랜 전통과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처럼 한국 음식도 장인정신과 전통 식문화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인기 있거나 트렌디한 것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음식은 오래도록 남고 문화는 오래 남는다. 존경은 오래 남는다"고 강조했다.
김씨마켓은 한국의 전통 장류와 식재료를 미국 시장에 소개하고 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전체 고객의 64%가 미국인이며, 프랑스 음식점에서도 한국 장인들이 만든 식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미국 셰프들이 한국을 방문해 김치와 전통 장, 사찰음식 등을 직접 배우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한국 음식의 세계화가 단순한 식품 수출을 넘어 관광과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오는 12월 1일 새로운 오프라인 매장을 열고 한국의 식재료와 브랜드를 갤러리 형태로 소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이먼 김 대표가 한국과 미국의 문화를 결합해 새로운 외식 모델을 만들었다면 라이언 김 대표는 한국 고유의 전통을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브랜드로 발전시키려는 셈이다. 두 사람의 접근법은 달랐지만 한국 문화의 가치를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로 바꾼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경쟁력으로 발전시키려는 이날 논의는 AI 시대 인간의 역할에 대한 질문으로도 이어졌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는 AI를 기존 인간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이민자'에 비유했다.
유 교수는 "인공지능은 새로운 이민자라고 볼 수 있다"며 "가상 공간에 들어온 AI가 이제 자율주행 자동차와 휴머노이드 로봇을 통해 현실 세계로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엘리베이터가 고층도시를 가능하게 하고 인터넷이 가상 공간을 열었던 것처럼 AI와 로봇이 인간의 활동 영역을 더욱 넓힐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몇 년만 지나면 건축 프로젝트의 95%는 AI가 더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디자인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기술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뛰어넘더라도 인간 고유의 경험과 감정까지 대체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초콜릿의 화학적 성분은 AI가 인간보다 더 잘 분석할 수 있고 인간이 좋아할 만한 초콜릿을 만들 수도 있다"면서도 "그 초콜릿의 의미는 인간이 먹고 경험할 때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건축물 역시 AI가 설계할 수 있지만 그 공간의 가치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과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 오랜 시간 축적해온 이야기와 감정, 신체를 통한 경험을 AI 시대의 차별화 요소로 꼽았다.
이는 앞서 무대에 오른 기업인들의 성공 경험과도 맞닿아 있었다. 사이먼 김 대표가 두 문화 사이에서 겪었던 경험을 새로운 외식사업의 경쟁력으로 바꾸고, 라이언 김 대표가 한국의 전통과 장인정신에서 브랜드의 가치를 찾은 것처럼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 고유의 경험과 이야기가 중요해진다는 의미다.
유 교수는 "꿈을 꾼다는 것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라며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변화가 많을수록 변하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이 더 필요하다"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email protected] 이병철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