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저 사람들은 왜 줄 안 서?"… 7살 아들 질문에 카드 긁은 40대 가장 [얼마면 돼]
돈으로 대기 시간을 지우는 '시간의 상업화' 앞에서 하루 40만 원을 탕진해야만 했던, '타임 푸어' 맞벌이 부모의 자본주의 영수증
[파이낸셜뉴스] 완연한 가을 날씨를 보인 10월의 셋째 주 일요일. 40대 맞벌이 직장인 K씨는 모처럼 7살 아들의 손을 잡고 수도권의 한 대형 테마파크를 찾았다. 핼러윈 시즌까지 겹친 놀이공원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입장하자마자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인기 어트랙션으로 달려갔지만, 안내판에는 '대기시간 120분'이라는 절망적인 숫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1시간쯤 지났을까, 다리가 아프다며 보채기 시작한 아이의 시선이 '프리미엄 게이트' 쪽을 향했다.
그곳으로는 일반 대기 줄과 달리, 별도의 팔찌나 티켓을 보여준 사람들이 텅 빈 통로를 여유롭게 걸어 들어가 바로 놀이 기구에 탑승하고 있었다.
"아빠, 저 사람들은 왜 안 기다려? 우리도 돈 내고 저기로 들어가면 안 돼?"
칭얼거리는 아이의 이 한마디에, 전날 밤 야근으로 체력이 바닥난 K씨는 결국 스마트폰 앱을 켜고 추가 결제 버튼을 눌렀다. 놀이공원 입장료에 버금가는 비용을 더 지불하고 '우선 탑승권'을 구매한 것이다. K씨 가족은 남은 1시간의 대기를 돈으로 건너뛰었다.
대한민국의 대형 테마파크는 이제 가장 노골적이고 직관적인 '자본주의의 축소판'이 되었다. 과거에는 입장권(자유이용권) 하나만 사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뙤약볕 아래서 줄을 서는 '시간의 평등'이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국내 주요 대형 테마파크들이 운영하는 우선 탑승권의 가격은 보통 3~5회 탑승 기준 1인당 4만 원에서 5만 원 선(입장료 별도)에 형성되어 있다. 4인 가족이 입장료 할인을 받아 10만 원대 초반에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2시간의 대기열을 견디지 못해 우선 탑승권을 구매하는 순간 15만~20만 원이 추가로 지출된다. 여기에 테마파크 안에서 사 먹는 5천 원짜리 추로스와 팝콘, 점심 식사, 캐릭터 머리띠, 그리고 주차비까지 더하면 하루 나들이 견적은 가볍게 40만 원을 돌파한다.
자유이용권은 그저 공원에 들어갈 자격일 뿐, 제대로 즐기기 위한 '시간과 체력'은 별도의 프리미엄 요금을 내고 구매해야 하는 기형적인 요금 구조가 정착된 것이다.
세계적인 석학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통해 이러한 테마파크의 '새치기 권리 판매(Fast Track)' 현상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돈이 모든 가치를 압도하면서, '줄 서기의 도덕(먼저 온 사람이 먼저 이용한다)'이라는 평등한 규범이 자본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현실의 3040 맞벌이 부모들에게 이런 거시적인 도덕적 비판은 사치에 가깝다. 이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어 우선 탑승권을 사는 이유는 특권 의식이나 허영심 때문이 아니다. 절대적인 시간과 체력이 부족한 '타임 푸어(Time Poor)'이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모에게 일요일의 놀이공원은 온전한 휴식이 아니라 '월요일 정상 출근'을 전제로 한 고강도 육아 미션이다. 2시간씩 줄을 서며 아이의 짜증을 받아낼 체력도, 뙤약볕에서 버틸 관절도 이미 마모되어 있다.
결국 부모는 "아이에게 자본주의의 계급을 너무 일찍 가르치는 것 아닌가"라는 내면의 죄책감을 누른 채, 내일의 출근을 위해 지갑 속의 돈을 꺼내 '대기 시간'을 삭제해 버린다. 이는 소비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자본주의적 땜질이다.
"여보, 오늘 하루 놀이공원에서 쓴 돈만 40만 원이 넘어. 이럴 거면 차라리 한우를 구워 먹거나 키즈 펜션을 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귀가하는 차 안, 뒷좌석에서 곯아떨어진 아이를 확인한 아내가 영수증이 찍힌 카드 앱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부부 합산 월소득 800만 원. 결코 적지 않은 돈을 벌지만, 맞벌이로 잃어버린 시간과 체력을 보상받고 아이의 미소를 지켜주기 위해 내미는 자본의 청구서는 매주 잔혹하게 날아든다.
시간을 돈으로 샀다는 묘한 승리감도 잠시, 텅 빈 통장 잔고를 마주한 40대 가장의 주말은 허탈함으로 저문다.
돈을 벌기 위해 아이와 놀아줄 시간을 포기했는데, 막상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아이와 놀아주기 위해 번 돈을 몽땅 써버려야 하는 모순. 달콤한 솜사탕과 화려한 퍼레이드 뒤에 숨겨진, 대한민국 3040 맞벌이 부부들의 잔인한 '가짜 소득' 쳇바퀴다.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