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항공사들 수년짜리 긴축 경영 예고…"인플레로 모두가 가난해져"
[파이낸셜뉴스]
전 세계 항공사들이 앞으로 수년에 걸쳐 심각한 경영난이 닥칠 것에 대비해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지난 2월 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작한 이란 전쟁으로 기름값이 뛰고, 덩달아 인플레이션(물가상승) 고삐가 풀리면서 소비자들의 항공 수요 둔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아직 두드러진 수요 둔화 흐름은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유류 할증에 따른 항공권 가격 상승과, 전반적인 인플레이션에 따른 소비자들의 여윳돈 부족이 본격화하면 세계 항공 시장에 수 년짜리 불황이 찾아올 것이란 위기감이 짙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7일(현지시간) 전 세계 항공사 경영진이 바싹 긴장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항공유 가격 상승에 맞춰 항공권 가격을 추가로 올려야 하지만 이럴 경우 소비자들이 이를 감내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치솟는 항공유 가격으로 인해 '뉴노멀'이 강제되고 있다면서 항공사들은 항공권 가격을 더 올리고, 장기 성장 계획을 축소하는 한편 취역 항공기 감축도 재개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우려했다.
이란 전쟁이 조기에 마무리되고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면서 유가가 떨어지기 시작할 것이라던 전쟁 초기의 희망이 사라진 데 따른 것이다. 이제 항공업계는 항공유 가격 고공행진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비용 압박이 심화하고, 여기에 소비자들의 항공 여행 수요 감소 역풍까지 더해질 가능성에 떨고 있다.
TAP 에어 포르투갈 최고경영자(CEO) 루이스 로드리게스는 "앞으로 3~5년은 힘든 시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아직 수요는 있지만…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항공사 CEO들은 지정학적 불안 속에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서 소비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항공 수요를 줄일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아직은 큰 문제는 없다. 걸프 지역 항로가 수개월째 차질을 빚고 있지만 항공 여객 규모에는 큰 변화가 없다.
데이터 업체 OAG 추산으로는 올 상반기 항공 좌석 예약은 23억석으로 전년에 비해 1% 늘었다. 올 들어 거의 매달 항공권 가격이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였지만 아직은 수요가 탄탄한 것으로 보인다.
델타항공도 지난 9일 분기 실적발표에서 올해 항공권 가격이 평균 20% 올랐지만 수요는 떨어지지 않았다고 안도했다.
그러나 가격이 더 뛰면 충격은 불가피할 것이란 공포가 항공업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탈리아 ITA 항공은 이란 위기 이전 연료 80%를 확충했지만 내년 충격에 대비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예르크 에베르하르트 ITA CEO는 "모두 그런 것처럼 우리도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미 최대 항공사인 칠레 라탐항공의 로베르토 알보 CEO도 항공 업계가 아직은 관리가 더 쉬운 비용 문제만 있을 뿐 수요 문제는 없다면서도 앞으로가 문제라고 우려했다.
항공 업계는 가격 상승에도 항공 수요가 타격을 받고 있지 않는 현 상황이 지속되기 어려울 것으로 비관하고 있다.
한 대형 항공사 CEO는 "어느 시점이 되면 수요 파괴가 시작될 것"이라면서 "이 모든 인플레이션이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시점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라탐항공 CEO 알보 역시 "관건은 더 높은 에너지 가격이 경제 전반에 충격을 줄 것인가"라면서 "그렇게 되면 수요 둔화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료비 고공행진이 지속되면 "모두의 방정식이 바뀔 수밖에 없다"고 말해 기업, 가계의 항공 수요 감소라는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비관했다.
항공사들은 대개 수요 둔화에 가격 인하로 대응한다. 그러나 지금 같은 공급 충격 발 비용 인플레이션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비용은 오르고, 순익성이 악화하는 가운데 가격을 더 올리면 악순환이 불가피하다.
브라질 저비용항공사(LCC) 골과 콜롬비아 국적 항공사 아비앙카가 합병해 탄생한 아브라 그룹 CEO 에이드리안 뉴하우저는 "이는 성장 계획에 영향을 준다"면서 이런 악순환이 없었다면 "더 커졌을 산업 규모가 더 작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항공사들은 질곡을 거친다"면서 "행복하게 살찌는 시기를 거치면 비용 절감 시기를 겪는다. 지금이 그 비용 절감 시기"라고 덧붙였다.
항공사들은 특히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공지능(AI) 투자에 나서야 하는 시기에 비용절감을 달성해야 한다는 화두를 안게 됐다.
독일 루프트한자와 튀르키예 항공 합작사인 튀르키예 '선 익스프레스' CEO 마커스 슈나벨은 "어디에 투자할지 결정해야 한다"면서 "AI는 공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수요 감소와 수익성 악화로 현금이 줄어드는 가운데 AI 투자도 게을리할 수 없는 항공사들은 결국 운용 항공기 대수 감축에 나설 전망이다. 연비가 떨어지는 구형 항공기들은 퇴역시키고, 당초 인도받기로 했던 보잉과 에어버스의 연비 좋은 신형 항공기 구입은 줄이거나 미루는 것이다.
보유 항공기 대수가 400대에 육박하는 라탐항공은 이미 연료비를 아끼려 낡은 항공기는 덜 붐비는 노선에 투입했다. 알보 CEO는 일부는 정식으로 퇴역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알보는 희망도 내비쳤다.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덩치를 줄여 가볍고 날래게 탈바꿈하면 경기가 회복할 때 빠르게 덩치를 키우며 세를 불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email protected] 송경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