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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시위 프랑스, 국가적 파탄 위기 경고

윤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치솟는 물가와 예산 감축에 불만 폭발, 전국으로 시위 확산
약탈 방화에 마크롱 대통령, 폭력에 엄정 대응 약속
구조적 재정 부실이 사태 초래 지적, 국가 빚 GDP 대비 119%
금융시장, 佛 디폴트 가능성, 신뢰 회복 위해 진통 불가피

1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한 남성이 시위 중 약탈당한 상점 앞을 지나고 있다. 교육 여건 개선을 요구하는 고등학생들의 시위가 대학생, 노동조합, 교사 등이 참여하며 높은 생활비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로 번졌으며 약 2400명이 체포되고 약 1000명이 부상했다.AP뉴시스
1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한 남성이 시위 중 약탈당한 상점 앞을 지나고 있다. 교육 여건 개선을 요구하는 고등학생들의 시위가 대학생, 노동조합, 교사 등이 참여하며 높은 생활비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로 번졌으며 약 2400명이 체포되고 약 1000명이 부상했다.AP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치솟는 물가와 생활비 부담에 분노한 대규모 시위가 전국을 강타한 프랑스의 재정과 정국 불안이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교사 부족과 교육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약 1개월간 이어진 학생 운동에 시민과 노동조합이 가세하면서 커진 시위는 주말 동안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파리 11만명을 포함해 약 55만명이 참가했다. 방화와 약탈까지 발생하면서 이날 하루동안에만 약 2400명이 구속됐다. 경제지 포천은 이번 주 예정된 의회의 표결을 앞두고 국가 부채 위기와 포퓰리즘 정치의 폐해가 동시에 폭발하면서 "프랑스가 사실상 국가적 파탄 위기에 놓였다"고 보도했다.

시민들은 평화적인 시위를 벌였으나 일부 폭력 집단이 공공기관과 명품 매장, 수퍼마켓 등을 포함한 상점들을 방화와 약탈을 하면서 경찰관 약 1000여명이 다쳤으며 파리에서 시위 참가자 1명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지난 17일 프랑스 중부 리모주에서는 143년 역사를 지닌 시청 건물이 방화로 파괴됐다. 이밖에 마르세유 시청에 시위대가 침입하고 리용의 관광안내소가 불에 탔으며, 보르도에서만 최대 100여개 상점이 약탈당하는 등 전국적으로 수백 개의 매장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사태가 격화되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8일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이런 장면을 보며 우리 모두 '프랑스인이 어떻게 프랑스에 이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며 "어떠한 것도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설명하거나 변명할 수 없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극좌 폭력 집단과 이에 가담한 범죄자들에게 "타협 없는 엄정 대응"을 약속했다. 다만 국가비상사태 선포나 통행금지령은 발령하지 않는 대신, 지방 지사와 시장들에게 공공건물과 지역 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집회 금지 권한을 부여하기로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또 로랑 누녜스 내무장관의 사직서를 반려하면서 치안 안정에 나설 것을 당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시위를 넘어 장기간 누적된 구조적 재정 부실에서 비롯됐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프랑스의 국가 부채는 약 4조달러(약 5400조원)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19%에 달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과 우크라이나·이란 전쟁이 재정을 악화시킨 데다 마크롱 대통령이 부채 통제를 위한 개혁안에서 발을 빼면서 상황이 더욱 심각해졌다.

유라시아 그룹의 무즈타바 라만 유럽 담당 이사는 뉴욕타임스 기고글에서 "프랑스는 현재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재정 관리 실패의 위기, 청년층의 환멸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며 "그중에서도 국가를 파멸로 몰아넣고 있는 재정 위기가 가장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프랑스의 교육 예산 지출은 유럽연합(EU) 평균을 상회하지만, 예산의 25% 이상이 퇴직 교사의 연금 충당에 쓰이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도 "과도하게 관대한 연금제도로 인해 정작 교육 투자가 희생됐다"며 "프랑스가 다른 모든 세대의 희생을 대가로 노년층에게 과도한 특혜를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프랑스 내각은 재정 적자 비율을 GDP 대비 5.4%에서 5.0%로 완만하게 낮추는 2027년 예산안을 제출했으며, 오는 20일 하원에서 운명의 첫 표결을 실시한다. 라만 이사는 "만약 정부가 예산안 통과에 실패할 경우, 프랑스의 부채 이자 상환 비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세계 7위 경제 대국인 프랑스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유럽중앙은행(ECB)의 지원도 구해야 하는 굴욕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포천은 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경제 그 자체보다 '정치적 통제 불능' 상태라고 지적했다. 내년 봄 대선을 앞두고 극우와 극좌 성향의 후보들이 지지율 상위권을 달리고 있어, 누가 당선되더라도 고통스러운 재정 감축 개혁을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절망감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극우 진영의 마린 르펜은 은퇴 연령을 62세 또는 60세로 다시 낮추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며, 극좌 성향의 장뤼크 멜랑숑 후보는 중앙은행이 보유한 프랑스 국채를 단순히 '탕감'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

라만 유라시아그룹 이사는 이번 주 르펜이 이끄는 정당이 예산안 표결에서 기권하여 예산안이 가까스로 통과된다면 당장의 파국은 면할 수 있겠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프랑스는 이제 더 이상 스스로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왔다"라고 말했다.

금융 시장은 이미 프랑스의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까지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호주 맥쿼리그룹의 티에리 위즈만 글로벌 전략가는 지난주 공개한 노트에서 프랑스가 채권 시장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향후 수개월간 혹독한 진통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위즈만은 프랑스가 ▲내각 불신임 및 국정 마비 ▲무디스의 국가신용등급 하향 조정 ▲거리 폭동 및 유혈 사태의 확산 ▲국채 금리 스프레드의 폭등 ▲르펜의 대통령 당선이 필요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또한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ECB가 즉각 지원에 나서지 않을 것이며, 기존 구제금융 기구들도 프랑스 규모의 경제를 감당할 자금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email protected] 윤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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