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우승했던 그 마운드니까요" 양현종의 페트병, 잠실의 역사를 간직하다
'2017년 우승 성지' 마운드 흙 페트병에 담은 양현종… "새 돔구장 땐 관중석에 있겠죠" 뭉클
44년 잠실 역사 '마지막 만루 홈런'의 주인공… 145m 아치 그린 김도영
역사 속으로 허물어지는 야구 성지, 2032년 돔 시대 기약
[파이낸셜뉴스] 수많은 영웅이 탄생했고, 수천 번의 환희와 눈물이 교차했던 44년 한국 야구의 심장. 그 낡고 거대한 콘크리트 성전의 마지막 밤은 가장 화려한 축포와 가장 먹먹한 낭만이 교차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저물었다.
2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리그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5전 3승제) 3차전. KIA 타이거즈가 LG 트윈스를 13-1로 대파하고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행을 확정한 이 경기는, 1982년 개장한 잠실구장이 헐리기 전 치러진 '마지막 프로야구 경기'로 영원히 기록되게 됐다. 디펜딩 챔피언 LG가 3연패로 가을 무대에서 퇴장하면서, 잠실의 시계도 완전히 멈춰 섰다.
이 역사적인 고별전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것은 '천재 타자' 김도영이었다. 3-0으로 앞선 2회초 1사 만루, 김도영은 존 케네디의 직구를 벼락같이 걷어 올려 좌중간 관중석 최상단에 꽂히는 비거리 145m짜리 초대형 그랜드슬램을 작렬했다. 역대 포스트시즌 최연소이자 최장 비거리 타이기록. 무엇보다 이 홈런은 44년 잠실구장 역사에 새겨진 '마지막 만루 홈런'이라는 지워지지 않는 훈장으로 남게 됐다. 나성범 역시 2개의 아치를 그리며 야구 성지의 마지막 밤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하지만 이날 가장 짙은 여운을 남긴 장면은 경기가 모두 끝난 뒤 텅 빈 그라운드에서 연출됐다. KIA의 '대투수' 양현종이 홀로 마운드로 걸어 올라가, 투수판 주위의 흙을 정성스레 페트병에 쓸어 담은 것이다.
양현종에게 잠실은 단순한 야구장이 아니다. 프로 무대 첫 등판을 치른 곳이자, 2017년 한국시리즈 5차전 9회말 마운드에 올라 KIA의 11번째 우승을 확정 짓고 데뷔 첫 세이브를 올렸던 약속의 땅이다. 양현종은 "오늘 아니면 내일이 내 야구 인생에서 잠실구장 마지막 경기라 생각하니 20년 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며 흙을 담은 이유를 담담히 전했다. 이어 "아마 이곳에 새로운 돔구장이 지어졌을 땐, 그라운드가 아닌 관중석에서 야구를 보고 있지 않을까"라며 씁쓸하면서도 호탕한 미소를 지었다.
이범호 감독 역시 품격 있는 작별 인사를 남겼다. 이 감독은 "잠실에서 시작해 잠실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거둬 영광스럽다. LG라는 최고의 팀과 이 구장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돼 감사하다"며 "더 좋은 구장으로 발전해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위해 지어져 프로야구의 요람이자 성지로 군림했던 잠실구장은 이제 철거 작업에 들어간다.
LG와 두산은 2027년부터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을 개조해 임시 홈구장으로 사용하며, 기존 부지에는 2032년 3월 완공을 목표로 최첨단 돔구장이 들어선다.
전광판의 불은 꺼졌고, 호랑이 군단은 대구로 떠났다. 낭만이 가득했던 44년 낡은 구장과의 이별. 그 마지막 페이지는 천재의 145m 만루포와 대투수의 페트병에 담긴 한 줌 흙으로 한국 야구사에 영원히 박제됐다.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