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비싼 선수 절대 안잡는 KIA인데"… 박정우가 증명할수록, FA 김호령은 더욱 절실해진다
김호령 대신 박정우 중견수 선발, 과감한 승부수 적중
카라스코 상대 9구 볼넷·선제 적시타…13-1 대승 견인
삼성 우완 투수들과 PO 격돌, 박정우 기회 확대되나
FA 앞둔 김호령, 주전 경쟁과 몸값 모두 걸린 가을
[파이낸셜뉴스] 홈런이 쉽게 나오지 않는 광활한 잠실구장. 그곳에서 외야 수비, 특히 중견수의 타구 판단 능력은 승패를 가르는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
그런데 KIA 타이거즈 이범호 감독은 가장 중요한 가을야구 무대에서 리그 최정상급 수비력을 자랑하는 중견수 김호령을 선발 라인업에서 과감히 지워버렸다. 대신 타격과 작전 수행 능력을 갖춘 박정우를 1번 타자 겸 중견수로 전진 배치했다. '수비' 대신 '공격'을 택한 이 독한 결단은 LG 선발 카를로스 카라스코를 철저히 붕괴시키는 완벽한 뇌관이 됐다.
KIA는 지난 2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6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5전 3승제) 3차전에서 13-1 대승을 거두며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PO) 티켓을 거머쥐었다. 김도영의 만루포와 나성범의 홈런 두 방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대승의 진짜 출발점은 박정우의 배트 끝에 있었다.
1회초 선두타자로 나선 박정우는 메이저리그 112승 경력의 베테랑 카라스코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방망이를 짧게 쥐고 파울만 4개를 걷어내며 무려 9구 승부 끝에 볼넷을 골라냈다. 올 시즌 KIA 타자들의 타석당 평균 투구 수가 3.85개임을 감안하면, 첫 타석부터 상대 에이스의 진을 완벽하게 빼놓은 셈이다. 카라스코는 1회 18구를 던졌고, 그중 절반이 박정우와의 승부였다.
압권은 2회초였다. 1사 후 상대 실책과 볼넷 등으로 만들어진 만루 찬스. 박정우는 2볼-2스트라이크 불리한 카운트에서 카라스코의 시속 141km 커터를 밀어 쳐 기어코 선제 적시타를 뽑아냈다. 이 안타 한 방으로 LG 벤치는 인내심을 잃었고, 카라스코는 1⅓이닝 만에 강판당하는 굴욕을 맛봤다. 이날 박정우는 5타수 2안타 2타점 1볼넷으로 '만점 리드오프' 역할을 수행했다.
이범호 감독이 수비 스페셜리스트 김호령 대신 박정우를 택한 이유는 철저한 데이터에 기반했다. 카라스코의 우타자 피안타율은 0.185에 불과했지만, 좌타자에게는 0.267로 약점을 노출했다. 이 감독은 이 틈을 파고들기 위해 박정우를 포함해 선발 라인업에 좌타자 7명을 배치하는 극단적인 융단폭격을 지시했고, 이는 완벽한 성공으로 귀결됐다.
하지만 이 장면을 단순한 1회성 플래툰 시스템으로 치부할 수 없다. KIA의 미래 중견수 구도, 나아가 다가올 스토브리그의 기류마저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모멘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KIA 중견수의 상징은 단연 김호령이었다. 넓은 수비 범위와 안정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시즌 초반 타격감까지 끌어올리며 생애 첫 FA 자격 취득을 앞두고 주가를 높였지만, 9월 이후 타격감이 급전직하했다. 이번 준PO 1, 2차전에서도 7타수 1안타(타율 0.143)로 침묵하며 결국 3차전 벤치 신세로 밀려났다.
반면 박정우는 올 시즌 110경기에 출전해 타율 0.292를 기록하며 1군 무대에 완벽히 자리 잡았다. 끈질긴 승부 근성, 빠른 발을 활용한 주루, 쉽게 물러서지 않는 콘택트 능력까지 갖추며 이범호 감독의 확실한 카드로 급부상했다.
이는 다가올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 판도에도 직결된다. 우완 선발이 즐비한 삼성을 상대로 좌타자 박정우의 활용 가치는 폭등할 수밖에 없다. 박정우가 PO 무대에서도 중견수 선발로 나서 활약을 이어간다면, KIA 벤치는 더 많은 선택지를 손에 쥐게 된다. 여기에 잠재력이 있는 발빠른 전문 중견수 자원인 김민규도 충분히 육성해봄직한 자원이다. 박재현이 2년차에 터진 것을 생각하면 김민규 또한 그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이 없다.
나아가 이는 시즌 뒤 FA 자격을 얻는 김호령의 협상 테이블에도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KIA 프런트는 앞서 최형우, 박찬호, 장현식, 최원준, 한승택 등 주축 자원들의 끊임없는 이탈에도 실용적인 선수단 운영과 대체 자원 발굴로 3위라는 성과를 냈다. 박정우가 주전 중견수도 가능하다는 확신을 심어준다면, 구단은 김호령에게 무리한 대형 계약을 안겨줄 필요가 없어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KIA는 김호령이 필요하다. 김호령만한 수비력과 주력을 지닌 선수는 드물다. 하지만 '반드시' 와 '대체가 가능한 것'은 금액의 앞자리가 달라진다. 즉 협상에 주도권을 쥐게 된다는 의미다.
반대로 김호령이 남은 가을야구에서 자신의 독보적인 가치를 다시 증명해 낸다면 FA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다
준PO 3차전 이범호 감독의 1번 타자 교체는 13-1 대승을 불렀다. 하지만 그 선택이 쏘아 올린 파장은 2027년 호랑이 군단의 중견수 자리를 둘러싼 거대한 생존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