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두 걸린 뒤 걷지도 말하지도 못했다"…7세 소녀 뇌에 무슨 일이
2022년 수두 앓은 영국 7세 소녀
40도 고열에 보행·언어 능력 상실
독감 판단 뒤 희귀 뇌척수염 진단
오른쪽 눈 실명…병원 측 공식 사과
[파이낸셜뉴스] 일곱 살 딸이 수두에 걸렸을 때만 해도 엄마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으레 겪는 통과의례쯤으로 여겼다. 물집이 가라앉고 딱지가 지면 다시 건강하게 뛰어놀 줄 알았다. 하지만 수두 딱지가 앉기 시작할 무렵, 가족의 평범한 일상은 산산조각이 났다.
2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선은 수두 감염 이후 희귀 뇌 질환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겪게 된 소녀 루비 호퍼(10)의 안타까운 사연을 보도했다.
비극의 시작은 2022년 부활절 무렵이었다. 당시 일곱 살이던 루비는 동생과 나란히 수두에 걸렸다. 그런데 회복 국면이라 믿었던 딱지가 생길 즈음, 루비의 체온이 40도까지 치솟았다. 아이는 눈을 뜨지도, 말을 하지도 못했다. 팔다리는 굳었고 앓는 소리만 간신히 내뱉었다.
놀란 부모는 아이를 구급차에 태워 영국 리즈종합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의료진의 판단은 안일했다. 수두 끝에 온 '단순 독감'이라며 아이를 돌려보냈다. 이틀 뒤 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지경이 돼 다시 병원을 찾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여전히 "독감 가능성"뿐이었다.
일주일 뒤, 굳었던 몸이 조금씩 풀리며 말을 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걷지는 못했다. 결정적 이상 징후는 눈에서 나타났다. 루비의 오른쪽 눈이 바깥쪽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기겁한 엄마가 안경사를 찾았고 "뇌종양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듣고서야 대학병원 정밀검사가 진행됐다.
검사 결과 뇌종양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 끔찍한 병마가 아이의 뇌를 덮치고 있었다. 진단명은 '급성파종성뇌척수염(ADEM)'. 감염 직후 면역체계가 오작동을 일으켜 뇌와 척수 등 정상적인 중추신경계를 무차별 공격하는 희귀 염증질환이다. 루비의 경우 앞서 앓았던 수두 바이러스가 이 치명적인 방아쇠를 당긴 것으로 확인됐다.
면역체계가 신경 신호 전달을 돕는 지방질 막(수초)을 갉아먹으면서 루비는 근력 약화, 보행 장애, 시력 상실이라는 치명상을 입었다. 너무 늦은 진단 탓에 뇌 신경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 상태였다.
결국 루비는 오른쪽 시신경이 손상돼 영구적으로 시력을 잃었다. 척수 손상으로 다리에 힘이 풀린 딸을 위해 엄마는 바닥에 주저앉아 걸음마부터 다시 가르쳐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뇌 손상 여파로 여덟 살 무렵부터 성조숙증까지 찾아왔다. 열 살이 된 지금도 루비는 잦은 입원과 대상포진 등으로 학교 출석률이 70%에 머물고 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병원 측은 뒤늦게 부모를 만나 초기 대응 미흡과 오진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현재 루비의 사례는 의료진이 ADEM 증상을 조기 발견할 수 있도록 의대생 교육용으로 쓰이고 있다.
수두는 흔한 감염병이지만, 극히 드물게 뇌염 등 치명적인 신경계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전문의들은 "수두를 앓던 아이가 심하게 처지거나, 갑자기 걷지 못하고 시력에 이상을 보인다면 단순 피로나 감기로 넘기지 말고 즉시 신경학적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수두로 시작된 작은 불씨가 한 아이의 시력과 일상을 앗아갔다. 내 아이의 평소와 다른 '이상 신호'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기는 대목이다.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