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특파원 칼럼] 3500억달러와 1만5000명의 간극

파이낸셜뉴스
이병철 뉴욕특파원
이병철 뉴욕특파원

3500억달러와 1만5000명. 하나는 한국이 미국에 약속한 투자패키지 규모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의회에서 추진 중인 한국인 전문인력 비자의 연간 최대 발급 규모다. 수천억달러의 투자약속은 한미 경제협력의 성과로 주목받았지만 정작 전문인력 비자법안은 10년 넘게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유권자들은 경유 가격과 생활비, 의료비를 걱정하며 투표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들이 던지는 한 표는 태평양 건너 한국 기업의 공장 운영과 한국인 근로자의 비자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미국 중간선거가 남의 나라 선거일 수 없는 이유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주목할 인물은 한국계 영 김 연방 하원의원이다. 그는 미국 연방 하원의 한국계 의원 3명 가운데 유일한 공화당 소속으로 현재 3선 의원이다. 특히 하원 외교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 소위원장을 맡아 한반도를 비롯한 미국의 동아시아 외교정책을 다룬다. 미 의회 한미의원 교류모임 공동의장도 맡고 있다. 한국계라는 상징성을 넘어 트럼프 정부에서 한미 관계 관련 정책 논의에 직접 참여하는 위치에 있는 셈이다.

그런 영 김 의원이 이번 선거에서는 같은 공화당 소속 켄 캘버트 현역 의원과 하나의 의석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선거구 재획정으로 벌어진 이례적인 대결이다. 그의 선거는 한국의 이해관계와 연결된 미국 의회의 정치적 창구가 얼마나 안정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영 김 의원이 추진해 온 '한미동반자법(Partner with Korea Act)'이 대표적이다. 한국인 전문인력에게 연간 최대 1만5000개의 E-4 취업비자를 제공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비슷한 법안이 2013년 이후 여러 차례 발의됐음에도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를 확대해도 필요한 전문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문제는 여전히 과제다.

지난해 조지아주 한국 기업 배터리공장에서 발생한 대규모 이민 단속은 이러한 간극을 드러냈다. 미국은 한국 기업에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요구하면서도 공장 건설과 설비 가동에 필요한 한국인 전문인력의 입국 문제에서는 제도적 해법을 마련하지 못했다.

한국의 대미 경제협력이 확대될수록 이 같은 제도적 공백의 영향도 커질 수 있다. 미국의 정책은 백악관의 결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한국 기업의 투자를 환영하더라도 전문인력 비자 신설에는 의회의 입법이 필요하다. 통상정책과 국방 예산, 투자 관련 제도 역시 의회의 권한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 의원들에게 한국과의 경제협력은 외교 문제인 동시에 지역구의 이해관계다. 한국 기업의 공장은 지역 일자리와 세수로 이어진다. 반대로 인력 부족이나 제도적 불확실성으로 투자가 지연되면 미국 지역사회도 영향을 받는다. 한국의 요구를 미국의 경제적 이익과 연결해 설명해야 하는 이유다.

영 김 의원이 민주당 의원과 공동으로 한미동반자법을 추진했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다. 한국 관련 현안이 반드시 양당의 대립구도에 갇힐 필요는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법안이 반복적으로 발의되고도 통과되지 못한 현실은 초당적 협력이 실제 입법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도 말해준다.

물론 영 김 의원 한 명의 당락이 한미 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필요한 것도 특정 의원이나 정당에 대한 의존이 아니다. 어느 당이 의회를 이끌더라도 한국의 이해관계를 설명하고 협력을 이끌어낼 지속적인 정치적 네트워크다.

중간선거가 끝나면 미국 의회의 인적 구성도 달라진다. 한국 기업이 진출한 지역을 대표하는 의원은 누구인지, 통상과 외교·안보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누가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살펴야 한다. 선거 결과 분석을 넘어 새 의회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한국 외교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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