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었니?"... 언젠가 그 전화마저 그리워지는 날이 온다 [그때 그 말]
너무 익숙해서 소중한 줄 몰랐던 그 목소리, 언젠가는 아무리 기다려도 다시 들을 수 없는 날이 온다.
[파이낸셜뉴스] 저녁 7시 30분.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린 몸을 이끌고 퇴근길 지하철에 오른다.
그때 울리는 휴대전화. 화면에 떠오른 '아버지'라는 두 글자에 반가움보다 피곤함이 먼저 밀려온다.
'전화를 받을까, 나중에 걸까.' 내일의 출근과 쌓인 집안일을 핑계로 우리는 종종 부모님의 전화를 망설인다.
어렵게 전화를 받아도 대화는 짧다. 밥은 먹었는지, 회사는 별일 없는지. 늘 똑같은 질문의 반복이다. 자식에게는 어제도 들은 지루한 이야기지만, 부모에게는 다를 수 있다. 그 짧은 몇 마디가 하루 중 가장 기다려온 순간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부모와 자식의 시간은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른다. 자식의 하루는 직장과 육아로 쉴 새 없이 돌아가지만, 은퇴한 부모의 일상에서는 자식의 안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어릴 적에는 반대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친구와 다툰 일, 점심에 먹은 반찬까지 쉴 새 없이 쏟아냈고 부모는 아무리 바빠도 그 이야기를 들어줬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자식은 부모가 간절히 원하는 짧은 대화조차 부담스러워한다.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그저 삶이 바빠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 바쁨을 너무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건네는 연락의 가치를 종종 과소평가한다.
미국 피츠버그대 페기 리우 교수 연구진이 2022년 59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연락이 상대방에게 줄 기쁨을 일관되게 낮게 예상했다. 특히 뜻밖의 연락일수록 받는 사람의 고마움은 훨씬 컸다.
비단 친구나 지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짧은 전화 한 통, "별일 없으시죠?"라는 평범한 안부에도 누군가의 하루를 밝히는 강렬한 힘이 숨어 있다.
부모님의 전화가 귀찮게 느껴진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누구에게나 혼자 쉬고 싶은 고단한 저녁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금 당연하게 누리는 이 일상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아버지', '어머니'라는 이름. 언제든 누르면 연결될 것 같은 그 번호도 세월을 비켜 갈 순 없다. 부모님이 먼저 걸어오는 전화가 점차 줄어들고, 어느 순간에는 자식이 먼저 안부를 챙겨야만 하는 시기가 온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무리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도 익숙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날이 찾아온다.
그때 가장 그리운 것은 거창한 가족 여행이나 선물이 아닐 것이다. "밥은 먹었니?", "건강해라"라며 늘 반복되던 그 평범하고 지루했던 말들이 뼈저리게 그리워질지 모른다. 가장 오래 남는 기억은 가장 자주 들어 소중한 줄 몰랐던 말들이다.
오늘도 수많은 이들이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그 바쁜 걸음 속에서 잠시만 휴대전화를 꺼내보면 어떨까.
거창한 이야기는 필요 없다. "아버지, 저녁 드셨어요?", "엄마, 별일 없죠?"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반드시 오늘이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굳이 내일로 미뤄야 할 이유도 없다. 우리는 늘 제대로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를 후회하지만, 그 마지막이 언제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언젠가 가장 간절하게 듣고 싶어질 그 목소리를, 우리는 다행히 '오늘' 들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지금 당장 전화를 걸 이유는 충분하다.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