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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부터 김대중, 여성유학자와 시인까지… 한국사상의 뿌리 되짚다[책을 읽읍시다]

장인서 기자
파이낸셜뉴스

'창비 한국사상선' 30권 완간

정도전부터 김대중, 여성유학자와 시인까지… 한국사상의 뿌리 되짚다[책을 읽읍시다]

정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할까. 평범한 사람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기후위기와 사회 갈등이 깊어진 지금, 삶과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들이다. 조선부터 현대까지 한국 사상가들이 남긴 글에는 저마다의 시대에 변화의 길을 찾으려 한 고민이 담겨 있다.

창비가 계간 '창작과비평' 창간 60주년을 맞아 '창비 한국사상선(사진)' 전30권을 완간했다. 2024년 첫 10권을 선보인 뒤 지난달 마지막 10권을 더했다. 정도전부터 김대중까지 59인의 핵심 저작을 골라 엮고 전문가의 해설을 덧붙여 사상이 형성된 배경과 맥락을 짚는다. 시리즈는 근대 전환기를 기준으로 전기편 '민본의 이상을 펼치다'(1~15권)와 후기편 '문명의 전환을 사유하다'(16~30권)로 나뉜다. 유학자와 종교인, 군주와 정치인, 여성과 문학인을 함께 놓아 한국사상을 읽는 시야를 넓혔다.

첫 권의 주인공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며 임금의 하늘이다"라고 썼다. 정약용 편은 '경세유표' 등 제도 개혁 구상과 유교 경전 해석을 함께 살핀다. 덕은 행동으로 옮겨야 비로소 성립한다는 생각이 인재 선발과 관료의 역할, 국가 운영을 고치는 구상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기존 사상서에서 상대적으로 덜 다뤄진 인물을 불러낸 점도 눈길을 끈다. 임윤지당·이사주당·강정일당 편은 학문이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대에 자신의 이론을 세우고 삶에서 실천한 여성들을 조명한다. 임윤지당은 여성도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믿었고, 이사주당은 '태교신기'를 통해 태교를 가족 전체가 함께할 일로 확장했다.

함석헌이 말한 '씨알'은 이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작은 씨앗이 생명을 품듯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스스로 판단하고 역사를 바꿀 힘이 있다는 생각이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등의 글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함께, 소수 지도자에게 운명을 맡긴 채 살아가는 태도에도 물음을 던진다.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다른 존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 역시 그의 생명철학을 이루는 바탕이다.

김대중 편은 연설문과 기고문, 인터뷰를 통해 민주주의와 경제, 외교와 통일 구상을 따라간다. 동학에서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찾고, 경제 운영에 대중의 참여를 강조한 대중경제론을 제시한 사상가의 모습이 드러난다.

임화·김수영·신동엽 편에서는 시인들의 논설과 산문을 사상으로 읽는다. 김수영은 문학의 실험과 정치적 자유를 연결했다. 신동엽은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다운 삶의 바탕을 잃으면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다고 봤다. 편저자 황정아는 신동엽의 '시인정신론'에 담긴 문명 비판을 오늘날의 생태위기에 비춰 재해석한다.

왕조의 질서 안에서 개혁을 꿈꾼 사유와 시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지향한 사유는 출발점이 다르다. 그 차이를 함께 읽으면 개인의 마음을 닦는 일과 공동체를 바꾸는 일이 시대마다 어떻게 만났는지 생각하게 된다. 각 시대의 조건과 한계를 살피면서 오늘의 삶에 가져올 질문을 고르는 것, 이 방대한 선집이 독자에게 건네는 읽기의 방식이다.

장인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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