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춘 효과 과장됐다"…성장호르몬 대체요법의 민낯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노화를 막기 위해 당장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불가능하다. 성장호르몬 치료는 성장장애를 앓는 아동과 성장호르몬 결핍증 진단을 받은 성인에게만 엄격하게 허용되기 때문이다. 단지 나이가 들어 성장호르몬 수치가 감소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성장호르몬 치료를 받을 수 없다.
노화를 늦출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을 왜 막아 놓은 걸까. 그 이유는 여러 부작용의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논문들은 몇 개월간의 치료로 좋은 효과를 얻었지만 장기적으로는 효과보다 위험이 더 크다. 대표적인 부작용으로는 관절염, 수면무호흡증, 당뇨병, 고혈압, 심장질환 등이 있다.
이 중에서 노인들에게 적용할 경우 가장 우려되는 부작용은 당뇨병이다. 많은 노인들이 이미 인슐린 저항성을 갖고 있다. 이때 성장호르몬을 투여하면 지방조직의 분해가 촉진되면서 혈액으로 다량의 유리지방산이 흘러나오게 된다. 동시에 성장호르몬 수치가 높아지면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의 분비가 늘고 이로 인해 인슐린도 다량으로 분비된다. 인슐린의 역할은 포도당을 세포 안으로 밀어 넣는 것인데 혈액 속의 많은 유리지방산으로 인해 이 작용이 방해를 받게 된다. 그 결과 인슐린 수치는 높지만 포도당이 세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인슐린 저항성이 심화된다.
성장호르몬의 인위적인 주입은 암과도 관련이 있다. 성장호르몬 수치가 높아지면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의 수치도 높아지는데 이것은 모든 세포를 증식하게 만드는 호르몬이라서 암세포까지 증식하게 만든다. 원래 암세포는 대식세포(이물질, 미생물, 암세포 등을 처리하는 면역세포)가 잘 처리해서 대부분 증식하지 못하고 자멸한다. 그런데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은 모든 세포에 영양분을 충분히 보내라는 신호를 보내 암세포의 세포자멸을 막고 종양이 증식하도록 유도한다.
2020년 영국 옥스퍼드대 너필드보건대학원과 국제암연구소가 공동으로 영국인 약 40만 명의 혈액샘플을 분석해 인슐린유사성장인자-1 수치와 30여 종의 암 발생 간 연관성을 조사했다. 그 결과 특히 갑상선암은 인슐린유사성장인자-1 수치가 높을수록 발병률이 높아졌고, 유방암, 전립선암, 대장암 역시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의 수치와 관련이 있었다.
더 놀라운 부작용이 있다. 성장호르몬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일찍 죽는다. 유전자 돌연변이로 성장호르몬이 결핍된 쥐는 또래 쥐보다 몸집은 작지만 42~68% 더 오래 산다. 성장호르몬의 수치를 인위적으로 낮추면 수명이 늘어나는 것도 여러 동물실험에서 확인됐다. 무엇보다도 유전자 이식으로 성장호르몬과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의 분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쥐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죽었다. 이 쥐들은 신장이 망가졌고 간이 비대해졌다. 특히 간에서 다양한 종류의 암세포가 발견되었다.
또한 앞서 소개한 여러 실험에서 보고된 성장호르몬의 안티에이징 효과는 어쩌면 과장된 것인지도 모른다. 2021년 이탈리아 제노바대학 연구팀이 그동안 발표된 성장호르몬 대체요법 논문들을 검토한 결과 실험 설계에서 여러 허점을 발견했으며 실제 효과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심장 기능이 튼튼해졌다고 했지만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사례가 많고, 지방량이 줄었다는 주장에도 논란이 있었다. 인지능력 향상은 가능성이 있지만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봤다.
결국 모든 것은 자연을 따라야 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몸의 모든 기능이 쇠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호르몬이 줄어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것을 인위적으로 보충하여 높이면 반짝 효과를 얻을지는 몰라도 그보다 큰 부작용을 떠안게 된다. 성장호르몬이 줄면 기력이 떨어지고 심장도 약해지고 살도 찌지만, 한편으로는 그 덕분에 인슐린 저항성이 나빠지는 것을 막고 암 발생도 억제해 타고난 수명만큼 오래 살 수 있다.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이 어쩌면 삶을 건강하게 마무리하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email protected]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