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본초여담] 약값을 셀 때 등불을 켜지 않았다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옛날 명나라 때 의현진에 유송천(劉松泉)이라는 의원이 있었다. 그는 대대로 의술을 이어온 집안 출신으로 의술이 뛰어날 뿐 아니라 인품 또한 훌륭했다. 그래서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찾아와 진찰을 청하면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유송천에게는 남다른 습관이 하나 있었다. 그는 진료를 마치면 환자에게 사례를 받았는데, 환자들은 치료비를 주머니에 넣어서 주도록 했다. 그런데 치료비를 받고서도 얼마를 주고 가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한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날 환자들에게 받은 약값을 꺼내놓을 때는 아무리 어두워도 등불을 켜지 않았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부인이 물었다. "어찌하여 약값을 살펴보면서 등불을 밝히지 않으십니까? 어두워서 돈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이에 유송천이 대답했다. "바로 그것 때문이오. 누가 약값을 후하게 주었고 누가 적게 주었는지 알게 되면 나도 모르게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오. 그러면 다음에 그 환자가 찾아왔을 때 차별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낫지 않겠소?"
그는 약값의 많고 적음에 따라 환자의 귀천을 따지게 되고 결국 진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다.
하루는 한밤중에 도둑이 벽을 넘어 방 안으로 들어와서 장롱이나 반닫이 등 여기저기 뒤지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 있던 유송천은 도둑을 보고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도둑은 유송천이 전혀 놀라지 않아서 오히려 자신이 당황했다.
유송천은 도둑에게 그 날 낮에 진료하고 받은 돈을 꺼내 건네주면서 말했다. "자네가 왜 도둑질을 하는지 알 수 없네만, 이 돈이면 네 살림에 얼마간 보탬이 될 것이네. 그렇다고 남의 집에 몰래 들어와 물건을 훔치려 하다니, 이게 무슨 짓이냐? 다시는 그러지 말거라."
도둑은 뜻밖의 일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꾸지람을 듣거나 잡혀서 몰매를 맞을 줄 알았는데, 의원은 돈을 주면서 도리어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도둑은 돈을 받아 들고 황급히 달아났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아침이면 약재를 다듬고 약을 조제하는 약대(藥臺) 위에 제철의 싱싱한 음식이 놓여 있는 것이었다. 어느 날은 과일이었고, 어느 날은 채소였다.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이러한 일이 몇 년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이었다. 유송천이 새로 나온 앵두를 조상에게 천신(薦新)하려고 하던 참이었다. 천신이란 그해 처음 수확한 과일이나 곡식을 조상에게 올리는 풍속이다. 그때 누군가 약대 위에 바구니 하나를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유송천은 얼른 그를 붙잡았다. "잠깐 기다리시오. 그동안 이곳에 음식을 가져다 놓은 사람이 당신이오?"
사내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세히 얼굴을 살펴보니 몇 년 전 한밤중에 집에 들어왔던 바로 그 도둑이었다. "아니, 자네는 그때 그 도둑 아닌가?"
사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날 의원님께 받은 은혜를 잊지 못했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 보답할 길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철마다 나는 먹거리라도 가져다 놓았던 것입니다."
유송천은 사내에게 당부했다. "이미 지난 일이지 않은가? 그날 내가 준 돈은 돌려받으려고 준 것이 아니네. 이제 그만하고 자네 살림에나 잘 보태게."
유송천이 사내를 그렇게 타이른 뒤에야 약대 위에 음식이 놓이는 일이 멈추었다.
유송천은 의술 또한 남달랐다. 한번은 그의 아우가 생선국을 먹다가 목에 무언가 걸리는 일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말을 할 때는 목이 뚫렸지만 물을 마시거나 음식을 삼키려 하면 다시 막혔다. 아우는 형인 유송천에게 진찰을 부탁했다.
유송천은 목의 상태를 살핀 뒤 상아(象牙)를 곱게 깎은 가루를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이를 끓인 술에 타서 마시게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음식이 다시 넘어갔다.
아우가 궁금하여 유송천에게 물었다. "형님, 대체 목에 무엇이 걸렸기에 상아 가루를 쓰셨습니까? 생선 가시 아니었습니까?"
"생선 가시가 아니라 비늘이 걸린 것이다. 비늘은 가벼우니 말을 하면 폐기(肺氣)가 밖으로 뿜어지면서 들리고, 물이나 음식이 들어오면 다시 내려앉아 막히는 것이었다. 코끼리는 본래 용(龍)의 종자라서 그 상아(象牙)가 온갖 뼈를 삭이는 성질을 지녔다. 그래서 뜨거운 술과 함께 넘기니 비늘을 쉽게 쓸어내린 것이다."
이는 상아가 가진 본초학적 성질과 따뜻한 술의 승산(升散) 작용을 결합한 처방으로 단순히 증상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체의 기기(氣機) 변화와 약재의 고유한 약성을 조화롭게 응용한 결과다.
특히 유송천이 등불을 켜지 않고 약값을 꺼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요즘에 보면 의사들은 환자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옛날 사람들은 유송천을 두고 손진인이 쓴 <천금요방>에 기록된 '대의정성(大醫精誠)'을 실천한 모범으로 여겼다.
'무릇 참된 의원이 병을 치료할 때는 반드시 마음을 안정시키고 뜻을 확고히 하여, 탐욕도 요구함도 없어야 하며, 먼저 원대한 자비심과 측은해하는 마음을 내어 모든 생명의 고통을 구제하겠다고 맹세해야 한다. 만약 질병과 재앙으로 구원을 청하러 오는 자가 있으면, 그 귀함과 천함, 가난함과 부유함, 연령의 많고 적음, 외모의 잘나고 못남, 원수와 친한 이, 좋은 친구인 중화나 오랑캐,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를 묻지 말고, 모두 평등하게 하나로 보아 마땅히 가장 가까운 친족처럼 생각해야 한다.'
<의술명류열전(醫術名流列傳)> 明. 劉松泉. 按《儀真縣志》:劉松泉, 世醫也. 道經坐草婦未娩而死, 診曰:"此可活." 一藥立甦, 并全其子. 邑人求視疾, 無貧富悉奔其急. 每夜歸, 釋所受藥資, 不篝燈, 人詰其故, 答曰:"恐有豐嗇好惡, 不如不分別爲愈也." 夜見偷兒洞壁入, 即以晝所得金與之, 誡之曰:"度此足汝生計. 此何事? 今勿爲也." 後有及時鮮品, 每日必獲自藥臺, 莫知其自, 如是者數年. 一日, 欲新含桃以薦, 忽見一人置一籠, 疾趨而出, 挽訊其故, 即當年暮夜受金者也. 劉復誡之, 饋始絕. 有弟啗魚羹而咽, 與人言則通, 下勺水便塞. 松泉診之, 命取象牙鎊屑, 以沸酒和飲之, 立下飲食. 弟亦知醫, 請故, 答曰:"此非骨鯁, 乃魚鱗橫氣門也. 鱗性輕, 語出則肺氣外衝而開, 外物入則掩而閉. 象故龍種, 性能化諸骨, 以熱酒下之, 未有不融者." 晚年失偶, 其子買婢以進, 乃顧謂其子曰:"吾今老矣, 奈何誤人少女?" 製裝嫁之, 其德厚如此. 壽至七十餘, 一日, 語其子曰:"三日後, 予當逝. 上帝命我承乏泰興城隍." 越三日遂終. (명. 유송천. 의진현지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유송천은 대대로 이어 온 의사였다. 분만 도중이던 부인이 미처 해산하지 못하고 죽었는데, 진찰하더니 "이는 살릴 수 있소."라 했다. 한 번 약을 쓰자 곧 소생했으며 그 아이 역시 살렸다. 읍 사람이 진찰을 부탁하면 빈부를 막론하고 모두 달려가서 구했다. 매일 밤 귀가해서 그날 받은 약값을 꺼내놓을 때 등불을 밝히지 않았는데, 누군가 그 까닭을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값이 후한지 박한지에 따라 좋아하고 싫어함이 생길까 염려해서이니, 분별하지 않는 편이 낫소." 밤에 도둑이 벽을 통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즉시 낮에 번 돈을 주면서 타일렀다. "이 돈이면 너의 살림에 보탬이 될 것이다. 이게 무슨 짓이냐? 이제는 그러지 말거라." 그 후로 제철의 싱싱한 먹거리가 매일 어김없이 약대에 놓여 있었는데,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었으며 이와 같이 몇 년이 흘렀다. 하루는 햇앵두를 천신하려다가 문득 어떤 사람이 바구니 하나를 놓고는 재빨리 달려 나가는 것을 보고, 붙들어 그 까닭을 물었더니 바로 석년 밤중에 돈을 받아 간 자였다. 유송천이 다시 그를 타이르자 음식 보내는 일이 그제야 끊겼다. 그의 아우는 생선국을 먹다가 목이 메었는데, 남과 이야기하면 뚫리고 물 한 국자라도 삼키면 다시 막혔다. 유송천이 진찰하고는 상아 깎은 가루를 가져오게 하여, 끓인 술에 타서 마시자 곧 음식이 넘어갔다. 아우 역시 의술을 알았으므로 설명을 부탁하니 이렇게 대답했다. "이는 가시가 걸린 것이 아니라 생선비늘이 숨구멍에 걸쳐진 것일세. 비늘은 성질이 가벼우므로 말을 하면 폐기가 밖으로 뿜어져서 열리고 외물이 들어가면 덮여서 닫히네. 코끼리는 본디 용의 종자로서 성질이 능히 온갖 골질을 삭이니, 뜨거운 술로 상아를 넘기면 녹이지 못할 것이 없다네." 만년에 아내를 여의자 그의 아들이 여종을 사서 바쳤는데, 도리어 아들에게 "나는 이제 늙었거늘, 어찌 남의 젊은 여인을 망치랴?" 하고는 혼례복을 지어 입혀 시집보내니, 그 덕이 두텁기가 이와 같았다. 70여 세 되던 어느 날 아들에게 "3일 후에 나는 떠나련다. 상제께서 나에게 태흥의 성황을 승핍하라 명하셨다. " 하고, 3일이 지나서 마침내 생을 마쳤다.)
<천금요방(千金要方)> 大醫精誠. 凡大醫治病, 必當安神定志, 無欲無求, 先發大慈惻隱之心, 誓願普救含靈之苦. 若有疾厄來求救者, 不得問其貴賤貧富, 長幼姸蚩, 怨親善友, 華夷愚智, 普同一等, 皆如至親之想. (대의정성. 무릇 참된 의원이 병을 치료할 때는 반드시 마음을 안정시키고 뜻을 확고히 하여, 탐욕도 요구함도 없어야 하며, 먼저 원대한 자비심과 측은해하는 마음을 내어 모든 생명의 고통을 구제하겠다고 맹세해야 한다. 만약 질병과 재앙으로 구원을 청하러 오는 자가 있으면, 그 귀함과 천함, 가난함과 부유함, 연령의 많고 적음, 외모의 잘나고 못남, 원수와 친한 이, 좋은 친구, 중화나 오랑캐,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를 묻지 말고, 모두 평등하게 하나로 보아 마땅히 가장 가까운 친족처럼 생각해야 한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email protected]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