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조부 살해' 20대 손녀 1심 징역 5년 "살해 의도 단정 어려워"

서지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할아버지 숨지게 한 손녀…살인의 고의 쟁점
재판부, 존속살해 혐의 대신 상해치사 적용
법정형 하한 징역 5년…공소청은 20년 구형

서울북부지방법원. 사진=서지윤 기자
서울북부지방법원. 사진=서지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친할아버지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손녀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범행 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존속살해 혐의 대신 존속상해치사죄를 적용해 법정형 하한선인 징역 5년을 선고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1부(최경서 부장판사)는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된 대학생 노모씨(24)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노씨는 지난 5월 18일 오전 11시53분께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자택에서 80대 친할아버지를 과도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노씨가 범행을 미리 계획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범행에 쓰인 과도가 주방이 아닌 노씨의 방에 보관돼 있었지만, 노씨가 조부모의 다툼을 피하려고 방에 머물거나 방에서 식사를 해결한 사정을 고려하면 흉기를 살해 목적으로 미리 준비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노씨가 범행 전 인공지능(AI) 앱에 폭행 충동을 참는 방법이나 살인 관련 내용을 검색하고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시청한 사실도 살펴봤다. 다만 AI 앱 질의는 사실상 두 건에 그쳤고, 답변도 충동 조절이나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권하는 내용이었던 만큼 검색 기록만으로 살해 의도를 뒷받침하기는 힘들다고 봤다.

범행 당시 상황과 공격 부위도 살폈다. 노씨는 할아버지와 다투다 방으로 들어갔다가 할아버지가 욕설과 공격적인 행동을 이어가자 다시 다가가 어깨 부위를 향해 칼을 휘두른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면 가슴을 직접 찌르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어깨 부위를 향해 흉기를 휘둘렀다"며 "살해할 의도로 흉기를 휘둘렀는지에 대해서는 합리적 의심이 남는다"고 설명했다.

범행 이후 노씨가 119에 신고하고 구급대원의 지시에 따라 심폐소생술을 한 점도 고려됐다. 노씨는 신고 당시 자신의 책임을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후 경찰 조사에서 범행을 인정했고 흉기를 숨기려는 행동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이러한 사정을 종합할 때 노씨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에는 합리적 의심이 남는다고 판단했다. 최 부장판사는 "살인의 고의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범행 전후의 사정을 종합해 판단할 수 있지만, 범행의 비난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며 "존속살해 혐의 대신 존속상해치사죄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사망한 결과가 중대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유족들이 겪는 고통은 회복하기 어렵고 피해자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사정만으로 범행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노씨가 피해자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은 점, 주거비를 아껴 유학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함께 피해자와 함께 생활해 온 점 등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가족들이 노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과 초범인 점도 감안해 법정형의 하한선인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앞선 결심 공판에서 서울북부지검(현 서울북부지방공소청)은 노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한 바 있다.

노씨는 최후 진술에서 선처를 호소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연로하신 분이라는 것을 생각했다면 갈등을 더 참고 피하거나 살갑게 풀어가려고 노력했어야 했다"며 "개인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죄를 지어서 죄송하다. 죽을 때까지 속죄하고 또 속죄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라고 거듭 사과했다.[email protected] 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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