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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떼고 '잘파' 입었다… 이수만과 'A2O'가 그리는 팬덤 경제의 넥스트 레벨 [박지현의 아트월드]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A2O LITE의 멤버 아이찡. /사진=뉴시스
A2O LITE의 멤버 아이찡.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K-팝이라는 성공 방정식을 구축한 설계자가 스스로 'K'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았다.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분쟁 이후 글로벌 시장에 복귀한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와 신생 기획사 'A2O 엔터테인먼트'가 던진 화두다. 신인 루키 'A2O LITE(에이투오 라이트)' 등의 데뷔를 기점으로 글로벌 음악 산업계는 이를 단순한 신인 데뷔가 아닌 K-팝 산업 지형도의 거대한 지각변동으로 예의주시하고 있다.

■ 주류 시장의 견제와 외신이 주목한 '잘파팝' 패러다임의 역공

글로벌 음악 산업계는 'K-팝의 설계자'가 K-팝이라는 타이틀 대신 내세운 새로운 화두에 주목했다. 글로벌 음악 산업 전문 매체 뮤직비즈니스월드와이드(MBW)를 비롯해 '해시태그 레전드 홍콩' 등 아시아 주요 매체들 역시 이수만 프로듀서의 복귀를 일제히 조명했다. 이들은 그가 'A2O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다국적 신인들을 대거 공개하고 '잘파팝(Zalpha-Pop)'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전면에 내세운 행보를 비중 있게 분석했다.

이수만 비저너리 리더 겸 키 프로듀서가 12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에서 열린 데뷔쇼 '웰컴 투 소울라이트 프롬 에이 투 오 소울 에이 투 오 라이트(WELCOME TO SOULITE From A2O SOUL A2O LITE)‘에서 A2O엔터테인먼트의 방향성과 비전, 엔터 테크 기술을 비롯한 주요 시스템과 콘텐츠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수만 비저너리 리더 겸 키 프로듀서가 12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에서 열린 데뷔쇼 '웰컴 투 소울라이트 프롬 에이 투 오 소울 에이 투 오 라이트(WELCOME TO SOULITE From A2O SOUL A2O LITE)‘에서 A2O엔터테인먼트의 방향성과 비전, 엔터 테크 기술을 비롯한 주요 시스템과 콘텐츠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수만 프로듀서가 자신이 만든 'K-팝'이라는 거대한 브랜드를 버린 이유는 최근 글로벌 음악 시장이 보여준 보수적인 견제와 무관하지 않다. 그 단적인 예가 올해 불거진 '그래미 어워즈 출품 보이콧' 사태다. 그래미를 주최하는 레코딩 아카데미는 내년 2월 열리는 제69회 시상식을 앞두고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을 신설했다. 이에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지난 7월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며 출품을 전격 거부했다. 뒤이어 하이브를 비롯해 SM, YG, JYP 등 국내 대형 기획사 모두 해당 부문에 작품을 내지 않으며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의 반발로 이어졌다.

전 세계를 휩쓴 K-팝의 메가 히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미권 주류 시장에서는 '아시안 니치 마켓(틈새시장)'으로 분류하는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이러한 척박한 산업적 토양에서 A2O가 전면에 내세운 '잘파팝'은 지역적 꼬리표를 선제적으로 떼어내는 영리한 역공이다. 아시아권 팝이라는 한계를 벗어던지고 기획 단계부터 Z세대와 알파 세대라는 글로벌 핵심 소비층의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새로운 표준으로 삼겠다는 고도의 지식재산권(IP) 브랜딩 전략인 셈이다.

■ 1인당 연 1억 원의 '인적 R&D'… 벤처 투자 뺨치는 육성 시장 규모

이러한 IP 브랜드의 진화는 한국 음악 산업 고유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라는 원천 기술이 있기에 가능했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육성 시스템은 단순한 기획사 업무를 넘어,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VC) 투자 방식과 맞먹는 거대한 '인적 R&D(연구개발)' 산업으로 진화했다.

글로벌 팝 시장이 완성된 아티스트와 단기 계약을 맺고 앨범 단위로 수익을 내는 전통적인 유통업에 가깝다면, 한국형 시스템은 원석을 발굴해 수년에 걸쳐 막대한 자본을 선행 투자하는 제조업과 IT 산업의 특성을 동시에 지닌다. 업계 평균적으로 연습생 1인을 육성하는 데는 보컬, 댄스, 외국어 교육부터 심리 상담, 숙식 유지비까지 연간 1억 원 안팎의 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나의 아이돌 그룹(5~7인조 기준)이 데뷔하기까지 최소 3~5년의 기간 동안 15억 원에서 30억 원에 달하는 초기 자본이 투입된다.

A2O LITE가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 SBS프리즘타워에서 열린 SBS Life 음악 방송 ‘더 쇼(THE SHOW)’ 생방송에서 1위를 차지한 뒤 A20 SOUL의 축하를 받으며 앙코르 송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뉴스1
A2O LITE가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 SBS프리즘타워에서 열린 SBS Life 음악 방송 ‘더 쇼(THE SHOW)’ 생방송에서 1위를 차지한 뒤 A20 SOUL의 축하를 받으며 앙코르 송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뉴스1

A2O 엔터테인먼트가 9인조 걸그룹 A2O LITE와 15인조 보이그룹 A2O Soul 등 다수의 루키를 동시다발적으로 공개한 것 역시 웬만한 중견 벤처기업의 초기 투자 규모를 뛰어넘는 거대한 자본력이 뒷받침된 IP 포트폴리오 구축 전략이다. 실패 리스크를 감수하고 수십억 원의 선행 자본을 태워 아티스트라는 '초고도화된 지식재산권(IP)'을 직접 주조해 내는 이 과감한 자본 운용 모델은 현재 전 세계 어떤 엔터테인먼트 산업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강력한 진입장벽이 되었다.

■ 숏폼과 4DGS 기술, 레거시의 결합… 글로벌 스탠더드가 된 K-육성 시스템

실제로 A2O LITE의 데뷔곡 'NEON(니온)'은 발매 단 29시간 만에 멜론 톱 100 1위를 석권하는 폭발력을 보여줬다. 이는 2021년 이후 데뷔한 신인 그룹 중 최단기 기록이다. 가사 일부가 '미혼 앤 비혼' 등으로 들린다는 밈(Meme)이 틱톡 등에서 자발적으로 확산한 것은 이들이 기획 단계부터 잘파 세대의 숏폼 문법을 얼마나 정교하게 타겟팅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AI 기반 팬 소통 플랫폼 블루밍톡 /사진=연합뉴스
AI 기반 팬 소통 플랫폼 블루밍톡 /사진=연합뉴스

흥미로운 점은 숏폼 소비를 겨냥하면서도 곡 자체는 3분 28초 분량의 묵직한 정통 K-팝 공식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유영진 프로듀서와 소녀시대 써니 등 K-팝 레거시를 상징하는 베테랑들이 참여해 보컬과 퍼포먼스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여기에 삼성전자와 협력해 다각도의 3차원 아티스트 데이터를 제공하는 '4DGS(4차원 가우시안 스플래팅)' 기술까지 결합했다. A2O는 이를 바탕으로 아티스트의 AI 모델과 소통하는 앱 '블루밍 톡(Blooming Talk)'도 출시하는 등 단순한 음악 감상을 넘어 기술 기반의 '팬덤 구독 경제'로 IP를 빠르게 진화시키고 있다.

이렇게 막대한 초기 자본과 기술을 거쳐 탄생한 IP가 창출하는 산업적 승수효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K-콘텐츠 수출이 1억달러 증가할 때마다 화장품, 의류, 식품 등 소비재 수출은 1억8000만 달러가 동반 상승하는 파급 효과를 낸다.

해외 음악 산업계와 자본 역시 이러한 '한국형 방법론'을 전면적으로 이식하기 시작한 지 오래다. 세계 최대 음반사인 유니버설 뮤직 그룹(UMG) 산하 레이블인 인터스코프 게펜 A&M의 존 재닉 회장은 지난 2023년 8월 합작 글로벌 걸그룹 프로젝트 출범 당시 "최고의 K-팝 방법론을 활용해 글로벌 그룹을 개발하는 것은 진정 특별한 경험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공식 평가하며 시스템 자체를 수입했음을 인정했다.

결과적으로 이수만의 '잘파팝' 선언은 단순히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겠다는 수사학이 아니다. 글로벌 자본과 외신이 앞다투어 이식하고 싶어 하는 고도로 정밀화된 한국형 '문화 기술(CT)'을 앞세워, 주류 시장이 쳐놓은 변방의 울타리를 부수고 글로벌 팝 생태계의 중심부를 직접 타격하겠다는 거시적인 산업 전략이다. 'K'를 떼어내고 세대를 입은 한국형 엔터테인먼트 자본이 글로벌 시장에서 또 한 번 패러다임의 혁신을 증명할 수 있을지 전 세계 음악 산업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mail protected]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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