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쉴 수 없다"…상처 안고 불길 뛰어드는 소방관들[소방관, 붉은 제복의 눈물]
(4-2)인력 부족에 휴가·교육은 사치
인명 피해 PTSD에 민원 스트레스까지
"고맙다"는 인사가 현장 지키는 원동력
[파이낸셜뉴스] '부천 공장 화재'로 김진석 소방위가 순직한 사건을 계기로 인력난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 고충을 토로하는 일선 소방관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격무 속 지친 심신에도 인명을 구한 보람과 시민이 건네는 "고맙다"는 한마디에 다시 불길로 뛰어드는 힘을 얻는다고 입을 모았다.
26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신입부터 20년 경력의 베테랑에 이르기까지 소방관들은 생사를 오가는 위험과 누적되는 피로를 감당하면서도 마음 놓고 쉴 틈이 없는 현실을 호소했다. 부족한 인력 탓에 휴가나 교육을 포기하게 되고, 출동이 끝난 뒤에도 현장에서 받은 심리적 충격에 시달린다는 취지다.
인천에서 활동 중인 3년 차 A 소방사(25)는 2024년 '강화도 산불' 진압을 가장 힘들었던 경험으로 꼽았다. 당시 그는 24시간 당번 근무 중 낮에는 산 중턱의 오물 화재를 진압했고, 밤에는 도로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 이튿날 새벽에도 산불 신고를 받아 방화복 차림에 등짐펌프를 메고 삽을 든 채 소방차마저 다다를 수 없는 험한 산길을 올라야 했다.
A 소방사는 "출동 대원 수가 충분하지 않아 이미 체력이 소진된 상태에서도 산을 오르니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며 "교대는 그날 오후 9시에야 산 현장에서 이뤄졌다. 당시 지원은 물과 빵 하나 뿐이었다"고 밝혔다. 또 "특히 구급대원이 모자라 무자격자가 구급차 운전을 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적은 인원으로 출동할 때 동료를 지켜줄 여력이 부족하다는 우려도 나왔다. 2006년 임용된 경남 양산의 이모 소방경(48)은 "화재 진압이 길어져 교대 인력이 부족하거나 휴직·부상으로 빈자리가 생기면 쉬던 동료가 나와 메워야 하니 아플 틈조차 사치"라며 "통상 펌프차에 5명은 필요하지만 경남에선 3명만 타는 곳이 많다. 5명이면 일부가 밖에 남아 위험에 빠진 동료를 구할 수 있지만, 3명이 모두 들어간 상황에서 동료마저 위험해지면 누가 나를 구해줄지 걱정된다. 인원이 적을수록 선택할 수 있는 진압 전략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짧게라도 휴가나 교육으로 빠지면 동료가 대신 근무를 서야 하니 미안해서 못 간다"며 "결국 피로가 쌓여 현장 위험도가 높아진다. 전기차 화재 등 달라지는 화재 양상에 맞춘 교육을 제때 이수할 수 있도록 여유 인력 확보가 필수"라고 덧붙였다.
인명 피해를 접하는 과정에서 겪는 정신적 부담도 컸다. 2009년 입직한 서울의 김모 소방위(45)는 약 6년 전 타 관할 신고로 먼저 출동한 사이 자신의 관할에서 영아 심정지 신고가 접수된 일을 떠올렸다. 그는 "당시 도착한 곳은 단순 주취자 신고 현장이었다"며 "다른 구급대가 출동했지만 영아는 기도가 막혀 숨졌다. 그때 기르던 아이가 어려서 감정이입이 됐고, '영아를 구하러 갔어야 했다'는 후회로 한동안 고생했다"고 말했다.
이 소방경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어머니를 지켜보던 초등학생 자녀를 회상하며 "아이가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또 "이런 기억으로 힘들어도 동료에게 나약하게 보일까 치료 사실을 숨기는 사례가 많다"며 "상담 지원이 있어도 처음 본 사람에게 곧바로 속내를 꺼내기는 어렵다. 같은 상담자와 꾸준히 대면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전했다.
각종 민원과 항의에 대응하는 일도 소방관들을 지치게 했다. 김 소방위는 "긴급 환자 이송 시 병원에서 환자 수용이 어렵다고 해 다른 병원을 알아보는 동안에도 '일 처리가 왜 이렇게 늦냐'는 보호자의 거센 항의를 받는다"며 "급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환자 상태에 맞는 병원을 찾고 수용 여부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업무 자체보다 민원 스트레스가 더 클 때가 종종 있다"고 했다.
이들은 시민의 감사 인사를 현장을 지키는 원동력으로 꼽았다. 지난 4월 소방관으로서 첫발을 뗀 서울의 김모 소방사(27)는 "불을 끈 뒤 땀을 흘리며 쉬던 중 물 한 병을 챙겨준 시민을 보며 '소방관이 됐구나' 싶었다"며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시민의 인정·격려가 가장 큰 힘"이라고 밝혔다. 15년 차 베테랑인 대구의 이모 소방위(42)도 "지하 노래방 화재를 진압하고 나오자 한 어르신이 떡을 손에 쥐어주며 '고맙다'고 말해준 기억이 오래 남는다"며 "겁은 나지만 시민을 위해 일한다는 보람으로 버틴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박성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