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두 달 특강비만 200만원?"… 월 800 벌어 학원에 바치는 맞벌이 '교육 소작농' 잔혹사 [얼마면 돼]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부모의 퇴근 시간까지 아이를 맡기려 기꺼이 학원가의 '소작농'을 자처한 3040 맞벌이 부부의 뼈아픈 겨울방학 선결제 영수증.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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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10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후. 달력상으로는 아직 가을이지만, 대한민국 3040 학부모들의 시간은 이미 1월을 향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주요 학원가의 '겨울방학 특강' 레벨 테스트와 등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의 주말은 학원 설명회 일정과 결제 스케줄로 빽빽하게 채워진다. 평소 국어, 영어, 수학 학원에 태권도나 피아노 같은 예체능을 더해 아이 한 명당 월 70만~80만 원 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교육비 예산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완전히 붕괴된다.

오전부터 시작되는 방학 집중반, 이른바 '텐투텐(오전 10시~오후 10시) 특강'과 다음 학년 선행학습 교재비가 청구서에 얹어지면 두 달 치 학원비는 순식간에 200만 원을 훌쩍 넘긴다. 부부 합산 800만 원을 벌어들이는 중산층 가구조차 통장 잔고의 밑바닥을 긁게 만드는 서늘한 10월 말의 풍경이다.

◇ '방학 특강'이라는 이름의 사설 돌봄 외주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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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맞벌이 부부들은 이토록 무리해서 방학 특강에 돈을 쏟아붓는 것일까. 대치동이나 목동 같은 교육 특구의 남다른 학구열 때문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3040 맞벌이 가구에게 겨울방학 사교육은 '보육의 외주화'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존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학교는 12월 말부터 두 달 가까운 긴 방학에 들어가지만, 부모의 직장은 방학이 없다. 부모가 퇴근하는 저녁 7시까지 아이가 방치되지 않으려면, 누군가는 아이를 거둬 먹이고 보호해야 한다. 결국 맞벌이 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대안은 아이의 동선을 오전부터 촘촘하게 학원 스케줄로 채우는 것뿐이다. '교육'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지만, 그 본질은 텅 빈 집 대신 학원 난방기 아래 아이를 맡겨두기 위해 지불하는 값비싼 '돌봄 비용'인 셈이다.

◇ 통계가 증명하는 27조 원의 무게… 고소득일수록 뼈아픈 역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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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맞벌이 가구의 교육비 출혈은 정확한 숫자로 증명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27조 1천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소득 수준에 따른 지출 규모다. 월평균 소득 800만 원 이상 가구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67만 1천 원으로, 전 구간에서 가장 높았다. 자녀가 두 명이라면 평달에도 134만 원이 고정적으로 나간다는 뜻이다. 여기에 겨울방학 특강비가 더해지면 지출은 수직으로 상승한다. 수치상으로는 대한민국 상위 20%에 속하는 고소득 맞벌이 가구라 할지라도, 세금과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그리고 숨 막히는 사교육비를 떼고 나면 실제 손에 쥐는 가처분소득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 우리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교육 소작농'의 탄생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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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직장에서 상사의 눈치를 보며 뼈 빠지게 일한다. 하지만 그렇게 벌어들인 월급의 상당수는 통장을 스치듯 빠져나가 학원 원장님의 계좌로 꽂힌다.

전문가들은 이를 '에듀푸어(Edu-Poor)'를 넘어선 '교육 소작농' 현상이라 부른다.

소작농이 1년 내내 남의 땅에서 땀 흘려 농사를 짓고도 추수철이 되면 지주에게 수확물의 절반 이상을 바치듯, 오늘날의 3040 부모들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죽어라 일해 번 노동의 결실을 거대한 사교육 시장에 고스란히 헌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현재를 갈아 넣고 있지만, 정작 부모 자신의 노후 대비는 제로(0)에 수렴해 가는 잔혹한 딜레마가 매달 반복된다.

10월의 마지막 일요일. 신용카드 무이자 할부 혜택을 검색하며 특강비 결제창을 띄워놓은 부모들의 마음 한편에는 본질적인 질문이 맴돈다.

'우리는 지금 우리 가족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학원비를 대기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일까.'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부모들은 내일 아침 아이의 학원비를 벌기 위해 다시 무거운 출근길을 나선다.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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