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으로 간 '과징금 폭탄'… 조단위 소송에 몸살 앓는 기업들
해킹 고도화로 환경 바뀌었는데
당국의 산정 기준은 과거 그대로
매출만큼 늘어나는 과징금 규모에
기업은 부담 줄이려 '소송' 수순
징수하더라도 소비자 구제엔 0원
공정거래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주요 규제당국이 부과하는 행정 과징금 규모가 수천억원대로 치솟으면서 산업계에서는 '조단위 소송전'이 이뤄지는 중이다.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확산으로 해킹 기술은 고도화됐지만 과징금은 여전히 과거의 '100% 방어'와 '매출 대비 산정' 기준을 적용해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리스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과징금 감면을 위해서는 법원의 판단에 기댈 수밖에 없어 과징금을 둘러싼 소송전이 구조적 리스크로 굳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쿠팡의 PB 알고리즘 관련 1600억원대 과징금 취소소송, 통신 3사의 수백억원대 불복소송이 진행 중이다. 개인정보위 역시 구글·메타의 1000억원대 맞춤형 광고 과징금과 카카오의 역대 최대 과징금(151억원) 처분이 줄줄이 법정 공방으로 번지며 다투는 소송가액만 수조원에 달한다.
■경영 리스크 줄이려면 소송 '필수'
기업 입장에서는 소송전이 당장의 과징금 폭탄을 피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 되고 있다. 매출 규모에 따라 도식화해 산출한 과징금 규모가 커지며 그대로 납부하기 어려울 정도로 금액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징금의 본질적인 목표 중 하나가 부당이득의 환수인데 산업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어느 수준까지를 부당이득으로 산정할지 기준이 모호해진다"며 "부당이득의 범위를 넓게 잡는 면이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법정까지 이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징금을 산정하는 당국 내부의 회계 전문 인프라 역시 최근의 산업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과징금 일부가 법원에서 인정받지 못하며 감액되는 결과들이 사실상 산정 단계에서의 정보·소통 부족에 영향을 받았다는 지적이다. 개인정보위의 경우 2020년 중앙행정기관(장관급) 출범 이후 전체 정원(약 160~170명) 중 회계 전담 전문임기제(나급) 정원은 부처 전체를 통틀어 단 1명에 불과하다. 공정위 역시 변호사·회계사·경제학 박사 등 전문임기제 정원 약 30~35명 가운데 공인회계사 자격은 통상 6명 안팎에 머무르고 있다.
권 교수는 "부당이득 환수, 산업군에 대한 경고 등 과징금에도 분명 징벌적인 요소가 있지만 필요 이상으로 커져야 할 이유는 없다"며 "사법적 구제체계 위에 산정기준마저 모호한 조 단위 행정 과징금까지 얹는 것은 과잉규제로 번질 수 있다"고 짚었다.
■"실질 구제방안 마련해야"
해킹 등 보안 피해와 관련해서는 최근 글로벌 정보기술(IT)환경에서 생성형 인공지능(AI)과 고도화된 악성코드를 앞세워 '완벽하게 막을 수 있는 방어망'을 구축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처럼 여겨진다. 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형식의 해킹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개인정보의 영역도 모호해지는 것이 체감되고 있어 '알고도 막지 못하는' 사고에 대한 위험이 늘어난 것 같다"고 토로했다.
보안 피해를 입은 소비자 입장에서도 조 단위 과징금이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현행 국가재정법상 규제당국이 징수한 과징금은 전액 국고 일반회계로 귀속된다. 직접적인 피해구제가 아닌 도로 건설, 복지 재원 등 일반 국가 운영비로 소진될 뿐이다.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실질적 배상을 받으려면 별도의 민사소송을 제기해 수년간 법정 다툼을 벌여야 한다.
최장혁 전 개인정보위 부위원장은 "과거 IT 산업을 이끈 '정보통신진흥기금'처럼 과징금을 국가보안 인프라 확충이나 중소기업 보안 지원, 피해자 구제기금 등으로 연계하는 특수목적기금 조성이 필요하다"며 "침해 사실 자체만으로 거액의 과징금을 매기는 방식은 한계에 봉착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과징금은 산업 투자에 대한 경각심을 최고경영책임자(CEO) 수준까지 일깨우는 효과가 있는 것"이라며 "처벌을 피하기 위한 소송전에 수백억원의 법률비용을 탕진하게 둘 것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암호화와 보안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실제 피해 최소화(데이터 암호화)'와 '선제적 보안조치에 대한 실효적 인센티브'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이창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