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곳간 털어 무상급식 강행하더니… 포퓰리즘 역풍 맞은 인니

아울리아 마울리다 함다니 기자, 김준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프라보워 2년… 지지율 반토막
무리한 무상급식에 재정 압박
교육 예산·유가 보조금 기습삭감
분노한 청년·시민사회 거리 나서
증시·환율·고용 일제히 '쇼크'
외국인 이탈에 증시·환율 폭락
일자리 증발로 청년실업률 17%
카르텔 정치 굳어져 돌파구 캄캄

인도네시아 프라보워 대통령 연합외신
인도네시아 프라보워 대통령 연합외신

"프라보워 대통령이 스스로 사임하거나, 헌법과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정권 교체가 조속히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인도네시아의 경제·금융 중심지이자 한국의 여의도에 비유되는 자카르타 남부 수디르만 대로의 SCBD. 지난 26일 이곳에서 만난 민심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직장인 줄리안씨는 산불 연무 대응 실패부터 무상급식 부정부패까지 현 정부의 실책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날 본지가 만난 시민 10명 중 9명은 현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지난 20일 인도네시아 서자바주 반둥에서 시위대가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과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 부통령의 집권 2주년을 맞아 정부의 산불 대응 방식을 규탄하고 부패와 족벌주의의 종식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동안 한 시위대가 허수아비를 불태우고 있다. 연합로이터외신
지난 20일 인도네시아 서자바주 반둥에서 시위대가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과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 부통령의 집권 2주년을 맞아 정부의 산불 대응 방식을 규탄하고 부패와 족벌주의의 종식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동안 한 시위대가 허수아비를 불태우고 있다. 연합로이터외신

【파이낸셜뉴스 하노이(베트남)·자카르타(인도네시아)=김준석 특파원·아울리아 마울리다 함다니 통신원】 집권 2주년을 맞은 프라보워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향해 가는 가운데, 취임 초기 80%를 웃돌던 대통령 지지율은 최근 44.5%까지 떨어졌다. '무상급식' 등 포퓰리즘 공약의 후폭풍과 국정 난맥상이 겹치면서 민심 이반이 가속화하는 모습이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5%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증시와 환율, 청년 고용 등 주요 경제지표가 악화하면서 정부의 경제 운용 능력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프라보워 대통령은 집권 2주년 기자회견을 생략한 채 측근 중심의 국정 운영을 강화하며 정면 돌파를 택했다. 인도네시아 대학가와 시민사회는 오는 28일 전국적인 거리 시위를 예고하면서 정국도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증시·환율·고용 일제히 '최악'

27일 콤파스를 비롯한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에 따르면 프라보워 집권 2년 인도네시아는 각종 지표에서 경고등이 켜졌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 이탈로 자카르타 종합주가지수(IDX)는 연초 대비 30% 넘게 폭락하며 6년 만의 최저치로 추락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가장 가파른 붕괴 추이다. 루피아화 가치 역시 집권기 동안 16%가량 폭락해 심리적 마지노선인 달러당 1만8000루피아 선을 돌파하며 역사상 최저치로 밀려났다.

고용 시장의 미스매치도 심각하다. 대졸 청년 인구는 급증했으나 정부 규제와 인프라 위축으로 일자리가 증발하면서 청년 실업률은 17% 선까지 치솟아 아시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대선 당시 프라보워를 전폭 지지했던 젊은 유권자들이 코로나19 팬데믹 때보다 살기 힘들다며 가장 먼저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시선도 냉혹하다. MSCI는 지배구조 불투명성과 시장 조작 우려를 이유로 인도네시아 증시 등급을 신흥시장에서 최하위 등급인 독립시장으로 강등할 수 있다고 전격 경고했다. 신용평가업체 S&P는 "재정 압박 장기화 시 등급 조정이 불가피하다"며 경고등을 켰고, 무디스와 피치는 정책 신뢰도 추락을 지적하며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일제히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무상급식' 포퓰리즘의 청구서

이란발 에너지 공급망 위기 등 대외 악재가 겹친 비상 상황에서도, 프라보워 정부는 정권의 명운을 '무상급식'에 건 채 국정 동력을 소모하며 골든타임을 놓쳤다. 당초 프라보워 정부는 올해 무상급식 예산으로 335조루피아(약 24조4885억원)를 책정했다. 그러나 이를 마련하기 위해 헌법상 보장된 교육 예산까지 전용하면서, 대학 기자재 도입과 초·중·고교의 필수 교육 환경 개선 사업이 대거 중단돼 청년층과 교육계의 거센 반발을 샀다. 급기야 경제 부처 내에서도 식품조정장관을 필두로 조달 과정의 잡음과 물류 실패를 꼬집는 내부 비판이 터져 나오면서 결국 예산 감액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무리한 포퓰리즘 정책의 여파는 민생 전반으로 번졌다. 재정 압박을 견디지 못한 정부가 유가 보조금을 기습 삭감하면서 휘발유 가격이 폭등했고, 대도시를 중심으로 주유소마다 '휘발유 대란'이 벌어지며 민생 물가는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대규모 산불 연무 사태마저 발생했으나, 방재 예산이 대폭 삭감된 탓에 초기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치며 정부의 총체적 무능과 재정 파탄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비판 속에서도 친정체제 구축

이러한 비판 속에서도 프라보워 대통령은 지난 21일 대외 및 대국민 질의응답을 받는 공식 기자회견을 '전면 패스'하고, 자카르타 대통령궁에서 열린 내각 회의 연설로 일방향 메시지를 던지며 '마이웨이'를 공고히 했다. 이날 수백 명의 관료를 병풍처럼 세워둔 프라보워 대통령은 무상급식을 담당하는 국가영양청(BGN)의 부패 관료 350여명을 파면했다는 수치를 직접 공개하며 강력한 사정을 지시했다. 현지 언론들은 프라보워 대통령이 "무상급식 정책의 구조적 부실과 재정 실패 책임을 집행 과정의 관료 부패 문제로 치환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프라보워 대통령은 2년간 8차례의 개각을 통해 1인 중심의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프라보워는 대선 당시 조코위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정치 신인인 기브란을 부통령으로 앉히는 '정치적 야합'을 통해 정권을 잡았으나, 취임 후 2년 동안 내각과 군·경 핵심 지휘부를 무려 8차례나 연쇄 개편하며 '조코위 지우기'에 나섰다. 조코위의 사람들이 떠난 자리는 철저한 프라보워 골수 충성파와 군부 엘리트들로 채워졌다.

■"프라보워 마이웨이 계속될 것" 전망

이 같은 실책에도 불구하고 프라보워 행정부의 국정 기조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과거 수하르토 독재 정권 시절부터 이어져 온 '합의와 권력 분점'이라는 인도네시아 정치 특유의 타협 문화 속에서, 정권 교체기마다 승자와 패자가 완전히 갈리기보다는 모든 정치 세력이 지분을 나눠 갖는 연립정부 형태가 생존 공식처럼 굳어지며 실질적인 견제 세력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박정훈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인도네시아 정치권이 원내 10여 개 정당 모두 내각에 참여하는 '슈퍼 그랜드 콜리션(Super Grand Coalition·거대 연합)' 체제로 굳어지면서, 2024년 대선 이후 투쟁민주당 등 야권마저 각료 자리를 얻기 위해 승자 편에 줄을 섰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도네시아의 '엘리트 카르텔 정치'가 친족 세습으로 변질되면서 야당의 견제 기능 상실과 대중과의 소통 단절이라는 심각한 정치적 퇴행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이어 "프라보워 대통령에게 자신의 경제 정책을 수정하는 것은 포퓰리스트 지도자 특유의 '자기 부정'으로 비치기 때문에 경제 정책의 선회 대신 비판자나 외부 세력을 '적'으로 규정하고 정면 돌파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인도네시아 프라보워 행정부의 포퓰리즘 실책과 제왕적 불통 통치에 분노한 대학생들은 정권을 향해 마지막 최후통첩을 날렸다. 청년의 날인 오는 28일 대규모 전국 총궐기 시위를 예고하면서, 정국은 임기 반환점을 맞은 프라보워 정부의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mail protected] 김준석 기자 , 아울리아 마울리다 함다니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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