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명세서 돌려달라' 영장 깔고 앉은 86세... 대법 "절도는 아니다"

김동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경찰 압수에 항의하며 영장 원본 가져가 20여일 보관... 공무집행방해는 유죄
대법 "오래 갖고 있었다는 것만으론 부족... 경제적으로 쓸 의사 따로 증명돼야"

대법

연합뉴스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경찰이 압수한 자기 명세서를 돌려받으려고 압수수색영장 원본을 집어 들고 20여일 보관한 80대가 절도 혐의를 다시 판단받게 됐다. 오래 갖고 있었다는 사정만으로는 절도죄의 불법영득의사가 증명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 판단이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지난 1일 절도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A씨(86)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지난해 1월 8일 오후 5시 30분께 부산에 있는 자택에서 대한민국 소유인 압수수색검증영장 원본 2부와 압수목록 교부서 2부, 정보저장매체 원본 반출 확인서 1장을 가져가 반환을 거부하고, 이를 되찾으려는 경찰관들을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경찰관들은 A씨 배우자의 주택법 위반 혐의에 관한 영장을 집행하던 중이었다. A씨 명의의 은행·카드 명세서 30장이 압수되자 A씨는 "영장에 적힌 압수할 물건이 아니다"라며 명세서를 가져갔고, 되찾으려는 경찰관의 가슴을 한 차례 밀쳤다. 명세서를 회수당하자 이번에는 테이블에 있던 영장 등을 들고 거실 소파에 깔고 앉아 "명세서를 돌려주면 이 서류도 돌려주겠다"고 했다. 반환을 요구하는 경찰관의 손등을 때리고, 철수하는 다른 경찰관의 뒤통수에 굵은 소금 뭉치를 던져 맞히기도 했다. A씨는 같은 달 15일 경찰서에 가고도 서류를 돌려주지 않다가 2월 4일 수사관의 질문을 받고서야 임의제출했다.

쟁점은 A씨에게 절도죄의 불법영득의사가 있었는지였다. 불법영득의사는 남의 물건을 권리자를 배제하고 자기 소유물처럼 그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하거나 처분하려는 의사를 말한다. 남의 점유를 침해했다는 것만으로 절도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1·2심은 유죄로 봤다. 2심은 A씨가 반환 요청을 여러 차례 거부했고 명세서를 돌려받지 못할 것을 알고도 경찰관들이 떠날 때까지 서류를 내놓지 않았으며 약 한 달 뒤에야 돌려준 점을 들어, 일시적 사용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 논리가 한 단계 빠졌다고 봤다. 재판부는 "상당히 장시간 점유하고 있었다는 점은 인정되나 그러한 사정만으로 불법영득의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자기의 소유물과 같이 '그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처분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었음이 추가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오래 점유했다는 것은 일시 사용이 아니라는 사정에 그칠 뿐, 그 자체로 불법영득의사가 되지는 않는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A씨가 애초에 "명세서를 돌려주면 서류를 반환하겠다"고 말한 점, 실제로 임의제출한 점을 들었다. 서류의 성격도 따졌다. 영장 원본은 이미 집행돼 더 압수수색에 쓸 수 없는 데다 수사기관이 아닌 개인이 용법대로 이용하거나 처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압수목록 교부서는 압수당한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려고 만들어 주는 서류라는 것이다. A씨가 이 서류들을 실제로 경제적 용법에 따라 쓴 정황도 없다고 했다.
반면 공무집행방해는 유죄가 유지됐다. 명세서 압수가 적법했는지를 두고 다툼이 있었지만 대법원은 압수 대상과 관련성, 증거능력에 관한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봤다. 절도와 공무집행방해가 경합범 관계여서 하나의 형이 선고된 만큼 원심판결은 전부 파기됐다.

[email protected] 김동규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