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난소에 12㎝ 종양 생긴 줄 알았는데".... 20세 여성 배 속에서 발견된 '떠돌이 장기' [이상징후]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복통으로 병원 찾은 20세 여성…골반에서 거대한 덩어리 발견
혈소판 수치 95만4000개까지 치솟아 난소 종양 의심
수술 중 밝혀진 충격적인 정체…왼쪽 윗배에 있어야 할 비장이 골반에
혈관 꼬이고 조직 괴사까지…비장 절제 후 회복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입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입니다

[파이낸셜뉴스] 스무 살 여성의 아랫배에서 12㎝ 크기의 거대한 덩어리가 발견됐다. 위치상 난소 종양이 유력했다.

하지만 수술실에서 배를 연 의료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난소와 나팔관은 너무나 깨끗했다. 골반을 꽉 채우고 있던 혹 덩어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여성 자신의 '비장'이었다. 왼쪽 갈비뼈 아래에 있어야 할 장기가 뱃속을 떠돌다 골반까지 추락한 것이다.

27일(현지시간) 미국 의료전문매체 메디컬데일리는 국제학술지 '저널 오브 옵스테트릭스 앤드 가이니콜로지 리서치(Journal of Obstetrics and Gynaecology Research)'에 보고된 튀르키예 의료진의 기막힌 수술 증례를 소개했다.

아랫배의 거대한 혹, 그리고 '비어버린' 윗배

튀르키예 앙카라의 에틀리크 시립병원을 찾은 20세 여성은 극심한 복통을 호소했다. 초음파 검사 결과, 오른쪽 난소 부근에서 12㎝ 크기의 단단한 덩어리가 포착됐다.

혈액 검사 수치는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혈소판 수치가 정상치의 두 배가 넘는 95만4000개까지 폭증했고, 세포 손상 시 나타나는 젖산탈수소효소(LDH) 수치도 치솟았다. 의료진은 거대한 고형 종괴와 기형적인 혈액 수치를 바탕으로 난소 생식세포종양(암)에 무게를 뒀다.

복부 CT 영상에는 결정적인 '단서'가 하나 숨어 있었다. 정상적인 위치인 왼쪽 윗배(갈비뼈 아래)에 있어야 할 비장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골반 속 거대한 덩어리에 시선이 쏠린 탓에, 수술 직전까지도 이 덩어리가 비장일 것이라곤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골반으로 추락해 꼬여버린 '떠돌이 장기'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입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입니다

수술실에서 확인한 덩어리의 실체는 충격적이었다. 자궁과 양쪽 난소는 완벽하게 정상이었다. 거대한 암 덩어리인 줄 알았던 조직을 떼어내고 보니, 그것은 정상 위치를 이탈해 골반까지 내려온 '비장'이었다.

의학명으로는 '유주비장(wandering spleen)'이라 불리는 극희귀 질환이다. 비장을 제자리에 고정해 주는 인대가 선천적으로 없거나 후천적으로 느슨해지면서, 장기가 뱃속을 둥둥 떠다니는 상태를 말한다. 발생 빈도가 0.2%에 불과해 전 세계적으로 보고된 사례가 500건도 채 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장기가 이동하면서 벌어지는 합병증이다. 탯줄처럼 이어진 비장 혈관이 꼬이면서 혈액 공급이 끊기게 된다.

여성의 비장 역시 주변 조직에 복잡하게 들러붙은 채 혈관이 심하게 꼬여 이미 조직이 괴사(경색)하고 출혈이 발생한 상태였다. 악성 종양(암)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장기를 살릴 수 없다고 판단한 의료진은 결국 비장 전체를 절제했다.

다행히 결과는 해피엔딩이었다. 비장을 떼어내자 95만 개를 넘나들던 혈소판 수치는 이틀 만에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지며 정상을 되찾았다. 여성은 무사히 회복해 퇴원했으며, 비장 상실로 인한 면역력 저하를 막기 위해 폐렴구균 등 각종 예방백신을 접종받았다.

연구진은 "젊은 여성의 골반에서 원인 모를 종괴가 발견됐을 때, CT상 비장의 본래 위치가 비어 있다면 반드시 유주비장 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은 단서를 놓치면 장기를 잃을 수도 있다는 의학적 경고다. 내 몸속 장기가 항상 그 자리에 얌전히 있을 것이란 맹신을 산산조각 낸 오싹하면서도 기막힌 증례다.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