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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우산인가, 숫자의 점령인가… 다우키움이 품은 '문학동네' [박지현의 아트월드]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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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004170), 키다리스튜디오(020120), 키움증권(039490)

중앙일보 이어 문학동네 품은 다우키움·CJ·신세계… '초거대 미디어 제국' 시동
佛 비방디 '문화 장악' 참사 거울삼아야… "숫자 논리 앞세우면 순수문학 허리 끊겨"
단기 수익률 압박 벗어나 '인내하는 자본' 돼야 진정한 IP 시너지 완성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 문학동네가 발행한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 장편소설이 진열돼 있다. /사진=뉴스1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 문학동네가 발행한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 장편소설이 진열돼 있다.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문학의 낭만이 숫자의 논리와 마주했다. 1993년 창립 이래 30여 년간 한국 문학 생태계를 견인해 온 대형 출판사 '문학동네'가 IT(정보기술)·증권 기반의 다우키움그룹에 매각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자본주의 최전선에 있는 금융·IT 자본이 가장 전통적인 지식 산업인 '종이책'의 본진을 품으려 하는 이 낯선 풍경 앞에서, 출판계 내부의 시선은 당혹감과 우려가 교차한다.

업계 사정에 밝은 한 출판사 대표는 31일 이번 빅딜을 두고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문학의 가치가 실적 압박에 내몰릴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수익성이 최우선 지표가 되는 순간, 출판사는 당장 팔리는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나 숏폼 흥행작에만 자본을 집중하게 된다"라며 "결국 실패를 용인하며 긴 호흡으로 흙 속의 진주를 찾아내던 순수문학의 토양 자체가 무너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 굴복이 아닌 '전략적 승차'… 중앙일보 품은 다우키움, 트랜스미디어 제국 꿈꾸다

하지만 막후의 기류는 밖에서 감지되는 짙은 위기감과 사뭇 다르다. 강병선(필명 강태형) 문학동네 창립자가 4곳의 쟁쟁한 인수 후보 중 다우키움그룹의 손을 들어준 결정적 배경에는 불과 며칠 전 전해진 '메가톤급 팩트'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19일 다우키움그룹·CJ·신세계 컨소시엄이 중앙일보 경영권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전격 선정된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 소식을 접한 강 창립자는 오히려 다우키움이 그리는 거대한 '지식재산권(IP) 사업 밸류체인'에 확신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키움증권 본사 모습. /사진=뉴스1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키움증권 본사 모습. /사진=뉴스1

실제로 강 창립자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직후인 지난 23일 임직원 대상 설명회를 열고 약 1시간 50분에 걸쳐 다우키움그룹을 최종 선택한 배경과 향후 출판 사업의 청사진을 직접 공유했다. 강 전 대표의 지분(41.5%)을 포함해 기타 주주 지분까지 총 100% 전량 매각에 모든 주주가 동의한 것 역시, 이번 빅딜이 단순한 투자금 회수(엑시트)가 아니라 1기 경영진들의 전폭적인 합의하에 이루어진 쇄신 작업임을 시사한다.

이는 문학동네가 거대 자본에 수동적으로 포식된 것이 아니라, 새롭게 탄생할 '거대 미디어 제국'의 최상위 원천 IP 뱅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승차했음을 의미한다. 키다리스튜디오의 웹툰·웹소설 플랫폼, 중앙일보라는 강력한 여론·미디어 채널, 그리고 다우키움의 막대한 자본력과 IT 인프라가 하나로 결합하는 전례 없는 구조다. 프랑스의 통신·미디어 공룡 비방디(Vivendi)가 프랑스 최대 출판사 아셰트(Hachette)를 인수해 방송과 통신망을 아우르는 록인(Lock-in) 생태계를 구축하려 했던 글로벌 스탠더드와 거울처럼 닮아 있는 행보다.

■ 톰슨 교수의 서늘한 경고… '미드리스트' 붕괴와 상징 자본의 훼손

그러나 웅장한 시너지 시나리오 이면에는 서늘한 학술적 경고가 존재한다. 자본과 플랫폼의 논리가 문학 생태계 고유의 리듬을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다. 세계적인 출판 사회학자 존 B. 톰슨(John B. Thompson)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그의 저서 '문화의 상인들(Merchants of Culture)'을 통해 거대 자본의 출판사 인수가 가져오는 치명적 부작용으로 '중간 지대(미드리스트·Midlist)의 붕괴'를 지목한 바 있다.

존 B. 톰슨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저서 '문화의 상인들(Merchants of Culture)' /사진=파이낸셜뉴스
존 B. 톰슨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저서 '문화의 상인들(Merchants of Culture)' /사진=파이낸셜뉴스

톰슨 교수의 실증 연구에 따르면, 수익률(ROI)을 최우선시하는 금융 자본의 경영진이 들어서면 모든 마케팅과 투자는 당장 돈이 되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에게만 쏠리게 된다. 반면, 장기적 투자가 필요하지만 당장의 문학적 가치가 더 중시되는 중견 및 신인 작가들(미드리스트)은 출간 기회를 점차 박탈당하며 결국 출판 생태계의 허리가 끊어진다는 것이다.

롤모델로 꼽히는 비방디 역시 이 함정을 피하지 못했다. 비방디는 아셰트 인수 직후, 모기업의 통제 위주 기업 문화가 출판사 고유의 '편집권 독립'을 훼손하면서 반발한 저명 작가들과 핵심 임원진이 대거 이탈하는 참사를 겪었다. 경제적 효율성에 집착하다 출판사의 가장 큰 무형 자산인 '창작의 자유'와 '상징적 신뢰'를 스스로 파괴해 버린 셈이다. 이어 최근에는 노골적인 '문화 장악'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5월 쥘리에트 비노슈 등 프랑스 문화계 인사 600여 명은 비방디의 뱅상 볼로레 회장이 자사의 거대 미디어망을 활용해 문화계를 획일화하고 있다고 집단 규탄했다. 이에 비방디 산하 방송사인 카날플뤼스 측이 성명 참여자들을 향해 사실상의 '블랙리스트(협력 중단)'를 선언하며 보복에 나섰다. 거대 자본이 어떻게 출판과 문화계의 핵심 무형 자산인 '창작의 자유'를 폭력적으로 파괴하는지 적나라하게 증명된 셈이다.

3월 31일(현지시간) 프랑스 툴루즈의 스크린에 파리 증권거래소의 주요 주가지수인 CAC 40에 상장된 기업 '비방디(Vivendi)'의 로고가 표시되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3월 31일(현지시간) 프랑스 툴루즈의 스크린에 파리 증권거래소의 주요 주가지수인 CAC 40에 상장된 기업 '비방디(Vivendi)'의 로고가 표시되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다우키움의 인수가 기정사실로 된 직후인 25일을 기점으로, 국내 주요 언론과 출판계 내부에서 "인수 이후 경영체제와 출판업 고유의 자율성(편집권)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우려가 공식적인 쟁점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비방디의 뼈아픈 실패 사례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직감한 시장의 본능적인 경계심이 발동한 것이다.

여기에 IT·금융 자본 특유의 지배구조 리스크와 기술 종속 우려가 더해지며 비판의 층위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과거 대규모 미수금 사태 등 치명적인 내부통제 실패를 겪었던 증권계 자본이 과연 공론장과 창작의 자유를 수호할 자격과 윤리를 갖췄느냐는 근본적인 의구심이다. 나아가 문학동네와 중앙일보가 축적해 온 방대한 '텍스트의 원시림'이 거대 플랫폼의 인공지능(AI) 학습용 데이터로 무단 편입될 수 있다는 최전선의 위기감마저 감돈다. 단순히 중간 지대가 무너지는 것을 넘어, 출판의 토양 자체가 기술 자본의 데이터 창고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 '인내하는 자본'만이 IP 제국을 완성한다… 점령군 아닌 '든든한 방파제' 돼야

다우키움그룹과 문학동네의 이번 빅딜은 한국 문화 산업의 지형을 뒤흔들 기념비적 분기점이다. 미디어 플랫폼과 IT·플랫폼 인프라, 그리고 최상위 원천 텍스트가 결합한 거대한 생태계의 청사진은 이미 뚜렷하게 그려졌다. 그러나 이 웅장한 트랜스미디어 제국의 최종 성패는 '자본의 크기'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자본의 인내심'에 달려 있다.

단기적인 투자 수익률의 잣대로 출판을 재단하고 압박하는 순간, 톰슨 교수가 경고한 '중간 지대의 붕괴'는 참담한 현실이 된다. 다우키움그룹이 진정한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숫자의 논리를 앞세운 점령군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룹 특유의 든든한 현금 창출력을 바탕으로, 시장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문학동네가 묵묵히 흙 속의 진주를 발굴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강력한 '방파제' 역할을 자처해야 한다.

가장 폭발력 있는 IP R&D(연구개발)는 결국 사람과 텍스트를 향한 오랜 기다림에서 탄생한다. 다우키움이 문학동네 고유의 '편집권 독립'을 완벽하게 보장하고 순수문학의 토양을 존중하는 '인내하는 자본'의 품격을 보여줄 때, 비로소 한국 문학의 상징 자본은 새롭게 탄생할 미디어 제국을 움직이는 가장 빛나는 심장으로 박동할 것이다.

[email protected]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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