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엄마, 내년에도 같이 보자"…10월의 마지막 밤, 차마 하지 못한 말 [그때 그 말]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해마다 돌아오는 가을이지만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가을은 영원하지 않기에, 오늘의 평범한 하루가 더욱 애틋하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이미지입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이미지입니다

[파이낸셜뉴스] 10월 31일, 토요일 밤 8시. 창밖에는 가을의 끝자락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거리의 나무들은 어느새 붉고 노란 옷으로 갈아입었고, 바람에는 겨울의 냉기가 서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 에어컨을 켰던 것 같은데, 이제는 외투 없이 나서는 저녁 산책이 망설여진다.

달력을 본다. 10월의 마지막 날. 내일이면 11월이고, 두 달 뒤면 올 한 해도 저문다. 시간은 참 야속하다. 하루하루는 길고 고단한데, 지나고 보면 1년은 눈 깜짝할 새다. 휴대전화 사진첩을 넘기다 지난해 가을 찍은 가족사진 한 장에 시선이 멎는다. 단풍이 곱게 물든 나무 아래, 환하게 웃고 있는 부모님. 그때는 그저 평범한 사진이었다.

그런데 문득 올해 찍은 사진과 나란히 놓고 보니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진다. 어머니의 머리카락은 조금 더 희어졌고, 아버지의 어깨는 예전보다 조금 더 굽어 보인다. 나는 그저 한 살을 더 먹었을 뿐인데, 부모님은 한 해만큼 더 늙으셨다. 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왜 이토록 낯설고 아프게 느껴지는 걸까.

■ "내년에 또 오면 되지"…우리가 너무 쉽게 내뱉는 약속

가을이면 사람들은 단풍 구경을 간다. 부모님을 모시고 나들이를 떠났다가도, 바쁜 일정과 피곤함에 쫓겨 서둘러 돌아오곤 한다. 조금만 더 머물고 싶어 하는 부모님의 기색에 우리는 무심코 대답한다.

"엄마, 내년에 또 오면 되잖아."

악의 없는 위로다. 내년에도 가을은 오고 단풍은 물들 테니, 부모님도 당연히 그 자리에 계실 거라 굳게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는 미래를 참 쉽게 기약한다. "다음에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시간 날 때 여행 가요"라며 수많은 약속을 '다음'으로 미룬다.

당장 회사 일이 바쁘고, 아이를 챙겨야 하고, 주말엔 밀린 집안일이 산더미다.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벅찬 현실을 탓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철저히 망각하는 진실이 있다. 계절은 해마다 어김없이 돌아오지만, 그 계절을 함께 맞이할 사람까지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 내 나이의 무게와 부모님의 시간

어릴 적 부모님은 태산 같았다. 아버지는 무엇이든 척척 해결하는 슈퍼맨이었고, 어머니는 아무리 고단해도 지치지 않는 무쇠 같았다. 무거운 짐은 아버지가 들었고, 자식이 아프면 어머니가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때는 부모님이 늙어간다는 걸 짐작조차 못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작은 변화들이 눈을 찌른다. 성큼성큼 앞서 걷던 아버지가 자식의 걸음을 버거워하고, 기억력 좋던 어머니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무거운 물건을 번쩍 들던 손목엔 힘이 빠지고, 계단을 오를 때면 가쁜 숨을 고른다. 그제야 자식은 깨닫는다. 부모님도 늙어가고 있음을.

내 나이가 서른에서 마흔이 될 때, 부모님은 쉰에서 예순, 일흔이 됐다. 나에게 지난 10년이 사회에서 자리 잡고 아이를 키워낸 치열한 성장의 시간이었다면, 부모님에게는 익숙했던 몸과 일상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상실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부모님을 꼿꼿했던 옛 모습으로만 기억하려 든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착각이다.

■ 부모님과 함께할 가을은 몇 번이나 남았을까

조금은 서글픈 계산을 해본다. 부모님이 일흔 살이라고 치자. 앞으로 10년을 건강하게 함께하신다면, 우리에게 남은 가을은 단 열 번이다. 1년에 한 번 단풍 구경을 간다면 기회 역시 열 번뿐이다.

그중 한 번을 바쁘다고 미루고, 또 한 번을 피곤하다고 건너뛰면 실제로 함께할 날은 더 가파르게 줄어든다. 돈은 아꼈다 쓸 수 있고 휴가는 미뤘다 갈 수 있지만, 일흔 살 어머니와 함께하는 올해의 가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어도, 그 시간 속 부모님은 결코 작년의 부모님이 아니다.

오래된 가족사진을 볼 때 밀려오는 묘한 감정의 정체는 이것이다. 사진 속 부모님은 언제나 환하게 웃고 있지만, 현실의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 부모님을 늙게 만든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건 그 사진 속의 모습이 아니라, 다시는 붙잡을 수 없는 '그때의 시간'일지 모른다.

■ '내년'이 아니라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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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10월이 저문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거창한 여행이나 비싼 식사가 아니어도 좋다. 집 앞 공원을 천천히 걷거나,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엄마, 사진 한 장 같이 찍자"고 먼저 용기를 내보자. 그 사진 한 장이 훗날 어떤 위로가 될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오늘 밤,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보자. "엄마, 내년에 꼭 단풍 보러 가자"는 말 뒤에 이 한마디를 덧붙여야겠다. "아니, 내년까지 기다리지 말고 우리 다음 주에 당장 가자."

내년을 기약하는 것도 좋지만, 부모님과의 시간은 '지금'이 가장 젊고 눈부시다. 10월의 마지막 밤, 달력 한 장이 또 넘어간다. 언젠가 사무치게 그리워질 가을은 어쩌면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는 바로 지금일지 모른다. 내년으로 미루는 약속보다 더 귀한 말은 이것이다. "엄마, 우리 지금 당장 가요."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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