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감기약 하나 먹고 잤을 뿐인데"… 10월 마지막 밤, 4050 가장 숨통 틀어막은 '이 질환' [몸의 오프더레코드]
"단순 목감기인 줄"… 편도염으로 착각한 치명적 오판
골든타임은 단 몇 시간… 부풀어 오른 후두개가 숨구멍 밀봉한다
누우면 곧장 질식… 숨 쉬려 상체 꺾은 '삼각대 자세'의 참혹함
[파이낸셜뉴스] 10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토요일 밤. 달력은 11월의 문턱을 넘어서며 밤공기는 뼛속까지 파고들 정도로 매섭게 차가워졌다. 주말 내내 밀린 잠을 자고 일어난 4050 가장은 저녁 무렵부터 목구멍이 칼칼하고 침을 삼킬 때마다 면도날로 긁어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을 느낀다.
"갑자기 추워져서 편도가 또 심하게 부었네."
대다수 중년 남성들은 이 익숙한 통증을 단순한 환절기 목감기나 편도선염으로 여긴다. 아내에게 따뜻한 꿀물이나 차를 한 잔 부탁해 마시고, 구급상자에서 흔한 진통제나 목캔디 하나를 입에 문 채 침대로 향한다. 주말 밤 푹 자고 나면 내일 아침엔 가라앉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하지만 이 미련하고 안일한 인내심은 불과 2~3시간 뒤, 그를 산소가 완벽하게 차단된 지옥으로 밀어 넣는다.
새벽 2시. 컥컥거리는 기괴한 숨소리와 함께 번쩍 눈을 뜬다. 목구멍 안에 커다란 골프공이 꽉 끼어 있는 듯한 극심한 압박감이 덮친다.
억지로 숨을 들이마시려 하지만 산소는 들어오지 않고, 침조차 삼킬 수 없어 입 밖으로 질질 흘러내린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며 본능적으로 상체를 일으켜 앞으로 푹 숙인 채 헐떡인다.
단순한 감기약 하나로 억누르려 했던 이 끔찍한 질식의 병명은 바로 '급성 후두개염(Acute Epiglottitis)'이다.
후두개는 우리 목구멍 깊은 곳, 기도의 맨 위쪽에 위치한 얇은 잎사귀 모양의 연골 덮개다. 우리가 음식이나 침을 삼킬 때 이 덮개가 닫히면서 이물질이 폐(기도)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는 생명 유지 장치다. 하지만 세균(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등) 감염으로 이 후두개에 급성 염증이 생기면, 종잇장처럼 얇았던 연골이 순식간에 시뻘건 풍선처럼 비대하게 부풀어 오른다.
진짜 공포는 침대에 등을 대고 반듯하게 누울 때 시작된다. 중력에 의해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후두개가 뒤로 밀리면서, 오직 산소가 드나들어야 할 유일한 통로인 '기도'를 완벽하게 밀봉해 버리기 때문이다.
내 몸의 살덩어리가 내 숨통을 꽉 틀어막는 병리기전이다. 환자들이 숨을 쉬기 위해 본능적으로 상체를 숙이고 턱을 앞으로 쭉 빼는 이른바 '삼각대 자세(Tripod position)'를 취하고 침을 흘리는 것은, 이미 기도가 막혀가고 있다는 가장 절박한 인체의 구조 신호다.
급성 후두개염은 증상 발현 후 기도가 완전히 막히기까지 단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초응급 질환이다. 이 상태에서 병원 방문을 주저하거나 집에서 억지로 물이나 약을 삼키려 들면, 기도가 자극받아 그 즉시 완전 폐쇄(경련)가 일어날 수 있다.
대한민국의 4050 가장들은 웬만한 통증은 진통제로 버티고 병원 가는 것을 귀찮아하는 특유의 둔감함을 훈장처럼 여긴다. 하지만 침을 삼키지 못해 흘러내리고 목소리가 뜨거운 감자를 머금은 것처럼 웅얼거리는 소리(Muffled voice)로 변했다면, 그것은 목감기가 아니라 119를 불러야 할 사망의 전조다.
응급실 도착이 늦어져 기도가 완전히 막혀버리면, 의료진은 마취할 새도 없이 환자의 목 앞쪽 피부를 메스로 찢고 기관지를 뚫어 직접 산소관을 꽂아 넣는 끔찍한 '기관 절개술'을 감행해야만 한다.
10월의 마지막 밤, 따끔거리는 목을 움켜쥐고 진통제를 찾기 전 기억해야 한다.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이 유난 떠는 것이 아니라, 내일 아침 가족의 얼굴을 다시 보기 위한 가장의 가장 기본적인 책임감이라는 것을.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