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럽

프랑스 이어 벨기에·스웨덴·아일랜드도…유럽 마트 냉장고 연쇄 해킹에 식료품 대량 폐기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베네룩스·스웨덴 등서 슈퍼마켓 냉동·냉장고 온도가 최대 55℃까지 치솟는 사이버 공격 잇따라
해커들, 원격 조작으로 성에 제거 모드 전환…수백만 유로 상당 식품 폐기 및 영업 차질
EU "식량 공급 방해하려는 의도적 시도" 규탄…각국 수사 당국 및 보안 센터 진상 조사 착수

2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슈퍼밸류(SuperValu) 매장에서 고객이 텅 빈 냉장 진열대를 바라보고 있다. 아일랜드 3위 슈퍼마켓 체인인 슈퍼밸류는 이날 전체 223개 매장 중 특정 모델의 냉장 시스템을 사용하는 13개 매장이 사이버 공격의 영향을 받아 냉장·냉동 제품의 판매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2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슈퍼밸류(SuperValu) 매장에서 고객이 텅 빈 냉장 진열대를 바라보고 있다. 아일랜드 3위 슈퍼마켓 체인인 슈퍼밸류는 이날 전체 223개 매장 중 특정 모델의 냉장 시스템을 사용하는 13개 매장이 사이버 공격의 영향을 받아 냉장·냉동 제품의 판매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프랑스 슈퍼마켓들을 마비시켰던 대규모 냉장고 해킹 사태가 벨기에, 스웨덴, 아일랜드 등 서유럽과 북유럽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유럽 식량 공급망에 비상등이 켜졌다.

2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웨덴, 에스토니아, 아일랜드 등지에서 식료품 유통업체를 노린 연쇄 사이버 공격이 발생해 슈퍼마켓 매장 수십 곳의 냉장·냉동고 온도가 최고 55℃까지 급등했다.

앞서 지난달 중순 프랑스에서 여러 마트 체인 700여 개 점포의 냉장고 온도가 50~80℃까지 치솟는 사태가 벌어진 지 보름여 만에 유사한 범행이 유럽 각국에서 재연된 것이다.

■ 유럽 각국 마트서 냉장고 온도 급등…수백만 유로 상당 식품 폐기 사태

이번 해킹으로 벨기에 대형 슈퍼마켓 체인 델레이즈(Delhaize)는 벨기에 전역과 룩셈부르크 매장 등 40여 곳에서 냉각 시스템 이상을 겪었다. 까르푸 벨기에와 스파 등 여타 유통사 매장도 피해를 보았다.

스웨덴 최대 식료품 체인인 ICA와 쿠프(Coop) 매장 일부에서도 냉동고 온도가 최고 55℃까지 치솟는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스웨덴 남부 셰보 지역의 한 ICA 매장은 냉동고 안으로 뜨거운 공기가 유입되면서 온도가 50℃까지 올랐으며, 온도를 조절하거나 변경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고 전했다. 아일랜드의 슈퍼밸류 매장 13곳과 에스토니아의 마트 체인 등도 유사한 공격을 받아 몸살을 앓았다.

피해를 본 매장 관리자와 직원들은 재고 손실을 막기 위해 한밤중에 출근하거나 냉장 트럭을 동원하는 등 긴급 대응에 나섰으나, 이번 연쇄 오작동으로 수백만 유로 상당의 신선식품과 식료품이 폐기 처분 위기에 처했다. 스웨덴의 한 매장은 10만유로(약 1억5000만원)어치의 농산물을 버리게 됐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 해커들의 수법은?…원격으로 '성에 제거 모드' 전환

수사 당국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번 해킹은 지난달 프랑스 사태와 판박이다. 마트의 냉동·냉장 설비는 원격 유지보수와 장애 알림 등을 위해 인터넷에 상시 연결되어 있어 사이버 공격에 취약하다.

해커들은 이러한 시스템 취약점을 파고들어 원격으로 냉동·냉장 제어 시스템을 조작, 강제로 '성에 제거 모드'를 작동시키고 내부 온도를 치솟게 만드는 방식을 쓴 것으로 파악됐다. 벨기에 설비 기업 사브코벨의 최고경영자(CEO)는 해커들이 증발기 설비를 성에 제거 모드로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덴마크 엔지니어링업체 댄포스(Danfoss)는 지난달 프랑스를 비롯한 일련의 유럽 마트 냉동고 해킹 사건에 자사의 냉동 제어 시스템이 연루되었다고 밝히며 지난 3주간 고객사들을 지원해 왔다고 전했다. 미국에서도 지난 8월 미군기지 매점 일부에서 유사한 냉동고 오작동 사고가 발생해 수사 당국이 프랑스 사법 당국과 공조 조사를 벌이고 있다.

■ EU "식량 공급 방해하려는 의도적 시도"…각국 수사 착수

유럽 각국 수사 기관과 사이버보안 센터는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벨기에 검찰은 형사 조사에 돌입했으며, 스웨덴 국가 사이버보안센터도 관련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조사 중이다. 다만 아직 이번 연쇄 해킹의 배후를 공식 자처한 단체나 개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이번 사태를 엄중히 경고했다. 크리스토프 한센 EU 농업·식량 담당 집행위원은 유럽 슈퍼마켓을 겨냥한 냉장·냉동 시설 사이버 공격이 EU의 식량 공급을 방해하고 소비자의 신뢰를 훼손하려는 "의도적인 시도"라고 규정했다. 이어 "현시점에서 식량 안보가 직접 위협받는 것은 아니지만, 식품 폐기와 기업들이 받는 타격은 실질적인 문제"라며 EU 전역에서 디지털 위협에 대응한 사이버 보안 강화를 촉구했다.

[email protected]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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