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버그' 항생제 무력화 원리 찾았다… 이화여대, 내성 극복 실마리 규명
[파이낸셜뉴스] 국내 연구진이 항생제를 무력화해 강력한 '슈퍼버그'를 만들어내는 세균 속 효소의 작동 원리를 원자 수준에서 찾아냈다. 세균이 항생제를 파괴할 때 효소 안의 물 분자 2개가 서로 협력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으로, 향후 항생제 내성균을 잡는 차세대 치료제 개발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이화여자대학교는 화학·나노과학과 차선신 교수와 약학대학 최선 교수 공동연구팀이 세균이 항생제를 분해해 약효를 없애는 핵심 과정과 원리를 규명했다고 4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ACS 카탈리시스' 10월 27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페니실린이나 세팔로스포린 같은 '베타락탐계' 항생제는 세균의 세포벽을 무너뜨려 균을 죽인다. 하지만 폐렴이나 패혈증 등을 일으키는 그람음성균 등 일부 세균은 '베타락타마아제'라는 효소를 만들어 항생제 구조를 파괴하며 저항한다. 그동안 이 효소가 항생제를 없애는 과정에 물 분자가 관여한다는 점은 알려졌으나, 정확히 어떤 물 분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방사광 X선과 초고성능 슈퍼컴퓨터를 동원해 3세대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인 세포탁심과 내성 효소가 결합한 순간을 고해상도로 포착했다. 분석 결과, 효소 내부에는 기존에 알려진 물 분자 외에 또 다른 물 분자가 하나 더 존재한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 두 개의 물 분자는 효소 내부에서 역할을 분담해 움직였다. 첫 번째 물 분자가 두 번째 물 분자를 활성화하면, 활성화된 두 번째 물 분자가 항생제 중간체를 직접 공격해 파괴하는 방식이다. 세균이 항생제를 정밀하게 무력화하는 일종의 '콤비 작용' 원리가 밝혀진 셈이다.
이처럼 항생제가 분해되는 정확한 경로가 밝혀짐에 따라, 세균의 내성 공격을 회피하거나 이 효소의 작용을 방해하는 차세대 항생제 및 내성 치료제 설계가 한층 수월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최선 이화여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항생제 내성 효소가 약을 무력화하는 핵심 과정을 원자 수준에서 정밀하게 이해한 성과"라며, "향후 항생제 내성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약물 개발과 전략 수립에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김만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