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감염되면 '격리 벽' 세운다… 고려대, 면역 스위치 규명
[파이낸셜뉴스] 식물이 세균 침입을 받으면 감염 부위 주변에 스스로 '물리적 방어벽'을 쌓아 병원균을 가두는 핵심 면역 원리를 국내 연구진이 찾아냈다. 병충해에 강한 농작물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려대학교는 생명과학부 김옥매 교수 연구팀이 식물이 병원균에 감염됐을 때 세포벽 성분인 '리그닌' 방어벽을 세우도록 명령하는 핵심 신호 체계를 규명했다고 4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식물 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네이처 플랜츠' 온라인판에 최근 게재됐다.
동물과 달리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은 세균이 들어오면 감염된 세포를 스스로 죽여 병원균이 번지는 것을 막는다. 하지만 세포와 세포 사이 미세한 틈으로 퍼져나가는 세균까지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 연구팀은 식물이 감염 부위 주변에 세포벽을 단단하게 만드는 리그닌 성분을 쌓아 성벽을 짓는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나, 이 벽을 쌓으라는 명령이 세포 안에서 어떻게 전달되는지는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연구팀 조사 결과, 식물은 병원균을 감지하는 순간 일종의 '릴레이 신호'를 작동시켰다. 병원균이 침입하면 세포 표면 감지 장치가 이를 알아채고, 세포 내부 전달 단백질을 단계적으로 깨운다. 이렇게 활성화된 단백질이 방어벽 재료를 만드는 스위치를 켜면서 감염 부위에 튼튼한 장벽이 들어서는 원리다.
특히 이 신호 체계는 당초 식물 뿌리가 자랄 때 경계 벽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잎에서는 병원균을 막는 면역 스위치로 변신한다는 사실도 함께 밝혀졌다. 식물이 같은 도구를 뿌리에서는 '성장'에, 잎에서는 '방어'에 효율적으로 나눠 쓰고 있었던 셈이다.
김옥매 고려대 교수는 "뿌리 성장을 돕던 신호경로가 잎에서는 병원균을 막는 면역 반응의 핵심 역할을 한다는 점을 처음 확인했다"며, "향후 병에 잘 견디는 강한 작물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김만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