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한 줄 알고 소화제 먹고 잤는데"… 하룻밤 새 4050 시력 앗아간 '불 꺼진 방' [몸의 오프더레코드]
"피곤해서 편두통 온 줄"… 진통제 삼키고 억지로 눈 감는 치명적 오판
불 꺼진 방, 확장된 동공이 물길을 막다… 안압 4배 솟구치는 병리기전
눈 통증보다 극심한 두통과 구토… 급체로 착각해 내과 전전하다 시신경 다 죽는다
[파이낸셜뉴스] 11월 4일 수요일 밤. 일주일의 피로가 정점을 향해 치닫는 시간이다.
퇴근 후 파김치가 된 4050 가장의 유일한 낙은 가족들이 깰까 봐 거실이나 방의 불을 끄고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나 주식 창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 소박하고 고단한 휴식의 방식이 그의 시력을 영원히 앗아갈 끔찍한 덫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화면을 응시하던 중 갑자기 눈알이 빠질 듯한 극심한 통증이 덮친다.
동시에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밀려오고, 속이 메스꺼워지며 구역질까지 치밀어 오른다. 4050 남성 대다수는 여기서 생애 가장 치명적인 오판을 내린다.
"어두운 데서 폰을 오래 봤더니 신경성 편두통이 왔네", 혹은 "저녁 먹은 게 얹혔나 보네." 구급상자에서 흔한 진통제나 소화제를 꺼내 삼킨 그는 한숨 자고 일어나면 개운해질 것이란 미련한 인내심과 함께 억지로 눈을 감는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두통이나 소화불량이 아니다. 안과 영역에서 가장 즉각적이고 끔찍한 초응급 질환으로 꼽히는 '급성 폐쇄각 녹내장(Acute Angle-Closure Glaucoma)'의 발작이다.
병리기전은 명백하고 잔혹하다. 어두운 곳에 있으면 우리 눈은 빛을 더 많이 받아들이기 위해 동공을 크게 확장시킨다. 이때 홍채가 뒤로 밀리면서 눈 속의 형태를 유지하고 영양분을 공급하는 액체인 '방수'가 빠져나가는 하수구(전방각)를 완벽하게 틀어막아 버린다. 갈 곳을 잃은 방수가 눈 안에 갇히면서, 정상 15mmHg 수준이던 안압은 순식간에 60~70mmHg 이상으로 폭발하듯 솟구친다.
이 압도적인 압력이 눈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시신경을 짓눌러 물리적으로 괴사시키는 것이다.
안과학회 통계에 따르면 이 급성 발작은 수정체가 커지고 전방이 얕아지는 40대 이상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더 큰 문제는 안압이 치솟을 때 눈의 통증보다 극심한 두통과 위장 장애(구토)가 훨씬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환자들은 스스로 체했거나 뇌에 문제가 생겼다고 착각해 응급실 내과를 전전하거나 집에서 진통제로 버티며 골든타임을 허무하게 날려버린다.
급성 폐쇄각 녹내장의 골든타임은 최대 72시간이지만, 고안압 상태로 방치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시신경은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된다. 발작 후 단 하룻밤을 진통제로 버티며 잤을 뿐인데, 다음 날 아침 영구적인 시력 상실, 즉 실명 판정을 받는 참혹한 사례가 적지 않다.
가족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낸 4050 가장에게 불 꺼진 거실에서의 스마트폰 시청은 팍팍한 현실을 잊는 작은 도피처다.
하지만 눈알이 터질 듯한 압박감과 두통, 구토가 동시에 덮쳐올 때, 그것을 단순 피로 탓으로 돌리며 약을 삼키는 것은 당신의 눈에 스스로 암막 커튼을 치는 행위다.
속이 울렁거리고 눈이 깨질 듯 아프다면 약을 먹고 누울 것이 아니라, 당장 응급실 안과 콜을 잡아 안압을 떨어뜨려야 한다.
시력을 영원히 잃어버린 가장의 눈으로는 남은 삶의 그 어떤 비극도 제대로 쳐다볼 수 없다.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