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셔터 내린 '아트바젤 파리'의 청구서… 조기 폐막이 드러낸 미술 시장의 '양극화' [박지현의 아트월드]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프랑스 시위 여파로 주말 일반 공개 취소… 최루탄과 샴페인 교차한 파리
메가 갤러리는 프리뷰서 1000만 달러대 '완판'… 주말 의존도 높은 중소 화랑 직격탄
재난 앞에서도 엇갈린 명암… '그들만의 잔치'와 산업 생태계의 취약성 드러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제5회 '아트바젤 파리'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들. 200여 개 갤러리가 참여한 이번 행사는 당초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 열릴 예정이었으나 주말 시위 여파로 조기 폐막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제5회 '아트바젤 파리'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들. 200여 개 갤러리가 참여한 이번 행사는 당초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 열릴 예정이었으나 주말 시위 여파로 조기 폐막했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프랑스 전역을 휩쓴 대규모 시위의 여파로 '아트바젤 파리'가 주말 일반 공개를 취소하고 이틀 일찍 폐막한 이후, 글로벌 미술 시장은 예상치 못한 후폭풍을 맞고 있다. 7일 미술업계와 주요 외신에 따르면, 표면적으로는 시위로 인한 단순한 '일정 단축'으로 보였던 이번 사태는 아트페어라는 거대 플랫폼 내부에 존재하던 대형 갤러리와 중소형 갤러리 간의 극심한 양극화와 '글로벌 미술 자본'의 구조적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 "거대한 유리 온실"… 메가 갤러리는 타격 없었다

파리 그랑 팔레(Grand Palais)에서 열린 제5회 아트바젤 파리는 지난달 23일(현지시간) 금요일 저녁 7시를 기점으로 조기 폐막했다. 주말 시위대의 타깃이 그랑 팔레로 향할 것이라는 관측 속에 주최 측이 내린 결정이었다. 미술 전문 매체 아트뉴스(ARTnews)는 지하철역에 최루탄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행사장 근처 레스토랑에서는 보르도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의 풍경을 묘사했고, 아트넷(Artnet)은 이번 행사장을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거대한 유리 온실(Big Glass Bubble)"에 비유했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제5회 '아트바젤 파리' 데이비드 즈위너(David Zwirner) 갤러리 부스에 마를린 뒤마(Marlene Dumas)의 작품 '스키로스(Skyros)'가 전시되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제5회 '아트바젤 파리' 데이비드 즈위너(David Zwirner) 갤러리 부스에 마를린 뒤마(Marlene Dumas)의 작품 '스키로스(Skyros)'가 전시되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흥미로운 점은 조기 폐막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메가 갤러리'들의 실적은 굳건했다는 사실이다. 주요 외신들은 조기 폐막 이후 엇갈린 화랑들의 실적표에 주목했다. 뉴욕타임스(NYT)와 아트넷(Artnet)에 따르면, 하우저 앤 워스(Hauser & Wirth)는 개막 직후 VIP 프리뷰 기간에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1965년작 작품을 1000만 달러(약 138억원)에 판매하는 등 막대한 실적을 올렸다. 화이트 큐브(White Cube) 역시 줄리 머레투 회화 2점을 각각 785만달러(약 107억원)에 팔았고, 가고시안(Gagosian)은 1000만 달러 이상의 윌렘 드 쿠닝 작품을 판매하는 등 굵직한 거래를 성사시켰다.

데이비드 즈위너(David Zwirner) 측이 "우리 매출의 80%는 첫 이틀 동안 발생한다"고 외신에 밝힌 것처럼, 구매력을 갖춘 주요 컬렉터들은 대중이 몰려드는 주말 이전에 이미 막대한 거래를 끝마친 상태였다. 필립 호프만 파인아트그룹 대표 역시 "주말 폐막은 내 고객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고 잘라 말했다.

■ 직격탄 맞은 중소 갤러리는 '눈물'… 보험으로 보상 안 되는 '기회비용'

반면, VIP 고객층이 얇고 주말 일반 관람객의 현장 구매 의존도가 높은 중소형 갤러리들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아트뉴스는 주최 측이 조기 폐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참가 화랑들과 어떠한 사전 협의도 거치지 않았으며, 이에 현재 일부 화랑들이 연합해 주최 측에 피해보상을 요구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중소 갤러리 관계자들은 주말 영업이 취소되면서 실적은 물론, 당장 작품을 철수할 인력조차 확보하지 못해 큰 혼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더 큰 문제로 피해 구제의 한계도 지적됐다. 아트뉴스는 보험 중개사 갤러거(Gallagher)의 예술품 보험 전문가 셰릴 카림(Cheryl Karim)의 말을 인용해 "부스비나 운송비 등은 '행사 취소 보험'을 통해 일부 보전받을 수 있지만, 주말에 대중을 만나 팔릴 수 있었던 작품의 '기회비용'과 새로운 컬렉터와의 네트워킹 상실은 그 어떤 보험으로도 보상받지 못한다"라고 짚었다. 수천만원의 참가비를 감당해야 하는 중소 갤러리들에게 이러한 지정학적 리스크의 연속은 사업의 존폐를 가르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겔 아브레우(Miguel Abreu) 갤러리 관계자는 "주말 대중 관람일에 전체 매출의 20% 이상을 기대하며 신규 컬렉터를 발굴해야 하는 화랑들에게 이틀간의 영업 취소는 단순한 일정 변경이 아닌 '미래 생존망'의 단절"이라며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페어를 찾는 젊은 컬렉터들이나 신규 고객을 발굴할 기회가 원천 차단된 것도 뼈아픈 손실"이라고 밝혔다. 아트뉴스는 아트바젤 파리 개막 후 보고된 판매액의 대부분이 대형 갤러리의 VIP 프리뷰에서 발생했으며, 소형 갤러리들의 매출 타격은 통계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 철저한 '계급과 양극화'… 시험대 오른 아트페어 모델

이번 사태는 전 세계적으로 성업 중인 하이엔드 아트페어 비즈니스의 구조적 취약성을 그대로 노출했다. 외신들은 지정학적 위기 당시 참가비 청구를 유예하고 판매 수익의 일부만 수수료로 받아 화랑들과 재정적 리스크를 분담했던 '아트 두바이(Art Dubai)'의 사례를 언급하며, 거대 자본이 굴러가는 아트페어 플랫폼이 소외된 중소 화랑의 피해를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결국 파리 도심을 마비시킨 시위는 아트바젤의 셔터를 내리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술 시장 내부에 존재하던 철저한 계급과 양극화의 민낯을 외부로 끄집어냈다. 상위 1%의 자본이 움직이는 VIP 프리뷰는 재난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수백억원의 현금을 창출했지만, 생태계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소 갤러리들은 무방비 상태로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위기 상황에서조차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에 따라 명암이 갈리는 이 현상은, 한국을 포함해 글로벌 팽창을 거듭하고 있는 대형 아트페어 산업이 해결해야 할 묵직한 과제를 던지고 있다.

[email protected] 박지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