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집값 떨어진다며?"…서민 동네는 되레 폭등, 월급쟁이의 배신감 [하우스 시그널]
강남 -0.39%·서초 -0.37%…서울 강남3구 아파트값 일제히 하락
서대문 +0.31%·성북 +0.30%·금천 +0.30%…비강남권은 상승
서울 아파트값 91주 연속 상승…집값 안정 기대와 엇갈린 현실
8억원 아파트 5% 오르면 4000만원…월 200만원 모아도 20개월
[파이낸셜뉴스] 최근 부동산 뉴스를 접한 평범한 무주택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품어봤을 일말의 기대다.
서초와 송파가 하락 전환하고 부동산 시장이 마침내 안정을 찾고 있다는 분석이 쏟아진다. 수년을 벼르며 전셋집을 전전하던 3040 맞벌이 부부들에게도 드디어 내 집 마련의 기회가 온 것만 같다.
하지만 퇴근길 지하철에서 자신이 눈여겨보던 동네의 실거래가를 확인하는 순간, 옅은 기대는 이내 짙은 한숨으로 바뀐다.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강남의 고급 아파트들은 수억 원씩 떨어진다는데, 정작 평범한 월급쟁이가 영끌을 감수하며 구입을 고민하던 서울 외곽의 2~3룸 아파트 가격은 끄떡없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이 식어간다는데, 왜 우리 가족이 몸을 뉘일 평범한 집 한 채는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하는 걸까.
통계는 평범한 무주택자들의 박탈감을 명확한 숫자로 증명한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11월 첫째 주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07% 상승하며 무려 91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주목할 것은 평균의 착시다. 지역별 뚜껑을 열어보면 시장은 철저히 두 동강이 나 있다. 강남구 아파트값은 한 주 만에 0.39% 떨어졌고, 서초구(-0.37%)와 송파구(-0.17%)도 동반 하락했다. 이른바 '강남 3구'의 일제히 주저앉은 것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중저가 아파트가 몰려 있어 서민들의 내 집 마련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비강남권은 불이 붙었다. 서대문구가 0.31% 올랐고, 성북구와 금천구도 0.30%씩 뛰었다. 중랑(0.28%), 강북(0.26%), 구로(0.25%), 도봉(0.20%) 등 서울 25개 자치구 중 무려 22곳이 일제히 상승했다. 강남의 고가 아파트는 떨어지는데, 평범한 사람들이 몰리는 서울 외곽 지역은 오히려 가격이 팽창하는 기형적인 흐름이 고착화되고 있다.
이러한 엇박자가 평범한 가계부에 미치는 타격은 가혹하다. 부부가 몇 년간 외식을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8억 원짜리 아파트 매수를 준비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이 아파트 가격이 단 5%만 올라도 4000만 원이 뛴 8억 4000만 원이 된다. 매월 200만 원씩 꼬박 저축하는 가정이 4000만 원을 모으려면 정확히 20개월, 즉 1년 8개월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
매월 200만 원을 남기는 것 자체가 전쟁이다. 아이 식비와 학원비, 전세대출 이자, 공과금을 감당하며 200만 원을 저축하려면 일상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게 뼈를 깎아 1년 넘게 모은 돈이, 그저 집값이 5% 오른 격차를 메우는 데 전부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다. 땀 흘려 저축하는 속도가 집값 오르는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는 구조 속에서, 성실한 월급쟁이의 꿈은 한 걸음 다가가면 두 걸음 멀어지는 신기루가 되어버린다.
"강남 집값이 떨어진다"는 뉴스가 3040 서민들에게 공허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남의 30억 원짜리 아파트가 5% 하락하면 1억 5000만 원이 빠진다.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하락장이지만, 28억 5000만 원이 되었다고 해서 평범한 월급쟁이가 그 집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선택지에 없던 그들만의 리그다. 무주택 가장에게 진짜 절망적인 뉴스는 강남의 1.5억 원 하락이 아니라, 내가 사려던 강북의 8억 원짜리 집이 4000만 원 오르는 현실이다.
결국 예산에 쫓긴 가족은 서울의 더 깊은 외곽이나 경기도로 눈을 돌리게 된다. 집값을 낮추는 대신 부모의 출퇴근 시간은 하루 1시간씩 늘어난다. 주 5일 출근을 기준으로 1년 48주를 계산하면 무려 240시간, 꼬박 '열흘'이라는 시간이 길바닥에 버려진다.
이 열흘은 단순한 통근 시간이 아니다. 퇴근 후 아이와 눈을 맞추며 밥을 먹을 시간, 피곤한 아내와 맥주 한 캔을 나누며 대화할 시간, 주말을 위해 체력을 비축할 시간이다. 주거비를 깎기 위해 가족이 함께 보내야 할 삶의 조각들을 헐값에 넘기고 있는 셈이다.
서울 아파트값 91주 연속 상승. 2012년 통계 작성 이래 최장 기록이다. 무리한 영끌을 피하고, 시장이 안정되기를 기다리며 성실하게 저축해 온 사람들에게 이 기록은 차가운 형벌과도 같다.
11월의 두 번째 일요일 저녁이다. 내일이면 또다시 수많은 가장이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언젠가는 우리 가족도 쫓겨날 걱정 없는 진짜 우리 집을 가질 수 있을 것이란 희망 하나로 한 주를 버텨낼 것이다.
부자들의 집값은 수억 원씩 내린다는데, 우리 가족이 몸을 뉠 방 세 개짜리 아파트는 오늘도 수천만 원씩 멀어지고 있다. 집값이 떨어질 적기를 기다리며 전셋집을 전전하는 동안, 그 집에서 아이와 지지고 볶으며 쌓아갔어야 할 소중한 '가족의 시간'도 함께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다.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