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용수 다 드립니다" SK투자설에 불붙은 日 유치전 [현장클릭]
전력·용수에 수백억원 보조금 제시
'제2의 구마모토' 노린 첨단기업 유치전
생산공장 넘어 R&D·AI 거점까지 확대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지난달 30일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에서 한일 저출산 대책 심포지엄이 끝나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일본 기자 십여 명과 한국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정말 일본에 투자할 계획인가", "미야기현에 공장을 짓는다는 게 사실인가"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한 일본 기자는 최 회장 앞을 막아서며 "제발 한마디만 해달라"고 요청했다. 최 회장은 입을 굳게 다문 채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현장에서 만난 일본 기자는 "SK가 미야기현에 투자한다는 보도가 나온 뒤 이 일대가 크게 들썩였다"고 했다. 당시 SK하이닉스의 일본 공장 건설이나 후보지는 정해진 게 없었다.
최 회장은 이튿날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일본 전역을 살펴보고 있다"며 전력과 용수가 풍부한 곳이라면 검토 대상이라고 밝혔다. 이달 1일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는 일본 반도체 기업 키옥시아와의 공동생산을 "하나의 선택지"로 꼽았다. 아사히신문은 SK가 일본의 여러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유치 제안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SK는 일본 합작공장 건설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투자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일본 지자체의 유치전은 이미 달아 올랐다.
미야기현 오히라촌 제2센다이 북부 핵심공업단지에는 30㏊가 넘는 부지가 남아 있다. 공업용수와 특고압 전력 공급이 가능하고 센다이 도심에서 약 24㎞ 떨어져 있어 인력 확보에도 유리하다.
무라이 요시히로 미야기현 지사는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에서 "공업용수와 전력을 확보할 수 있고 센다이 도심에서도 가깝다"며 "세계적으로 봐도 이만한 곳은 좀처럼 없다"고 강조했다. 반도체를 "가장 유치하고 싶은 업종 중 하나"라고도 했다.
투자·고용 요건을 충족한 신설 공장에는 투자액의 10%, 최대 40억엔(약 350억원)을 지원한다. 다만 무라이 지사는 SK 투자설에 대해 전달받은 정보가 없다고 밝혔다. 부지와 장려금이 SK에 개별적으로 제시된 조건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른 지역도 저마다 강점을 내세운다. 홋카이도 지토세시는 라피더스 공장에 맞춰 용수와 도로를 정비하고 있다. 미에현 욧카이치시에는 키옥시아 생산거점이, 규슈에는 구마모토의 TSMC 공장을 중심으로 관련 기업이 모여 있다. SK가 공식 후보지로 정한 곳은 아니지만 모두 전력·용수·인력·공급망을 갖춘 지역이다.
유치 열기의 배경에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TSMC를 끌어들인 구마모토의 경험이 있다. TSMC가 2024년 제1공장을 가동하자 협력업체와 주택·상업시설 투자가 이어지고 세수도 늘었다. 규슈파이낸셜그룹과 지방경제종합연구소는 TSMC 진출 등을 포함한 2022~2031년 경제 파급효과를 약 11조2000억엔(약 98조원)으로 추산했다.
이런 변화를 지켜본 지자체들은 기업을 찾아 도쿄로 올라오고 있다. 지난해 8월 미야기현의 기업입지 세미나에는 149개 단체, 254명이 참석했다. 무라이 지사와 현내 자치단체장들이 직접 투자 환경을 설명했다.
올해 1월에는 기무라 다카시 구마모토현 지사가 도쿄에서 반도체 기업입지 세미나를 열고 구마모토를 '새로운 사업 전개의 거점'으로 소개하며 추가 투자를 요청했다.
지난 10일 기자가 찾은 가가와현 기업입지 설명회에도 기업 관계자 등 100여 명이 모였다. 이케다 도요히토 지사와 엔비디아·리코IT솔루션즈 관계자의 발표 뒤 명함 교환과 입지 상담이 이어졌다.
가가와현은 대규모 데이터센터에 설비투자액의 10%, 전기요금·통신비 등의 50%를 지원한다. 대규모 투자에 대한 지원 한도도 5억엔(약 44억원)에서 최대 50억엔(약 438억원)으로 확대했다. 설명회 다음 날에는 주고쿠·시코쿠에서 유일하게 일본 정부의 '데이터센터 집적형 GX 전략지역'으로 선정됐다.
일본의 유치 대상은 생산공장에 그치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지난 8일 요코하마에 400억엔(약 3500억원)을 들인 첨단 반도체 패키징 연구거점 'APL'을 열었다. 일본 정부는 투자액의 절반이 넘는 225억엔(약 1969억원)을 지원했다. 약 6600㎡ 규모 시설에는 실제 생산라인과 같은 클린룸과 분석설비가 들어섰고 한일 연구자 95명이 근무한다.
APL은 일반적인 연구소보다 양산 현장에 가깝다. 삼성전자는 일본 소재·장비 기업 50여 곳과 고대역폭메모리(HBM), 3차원 집적회로 등 AI 반도체 후공정 소재를 평가하고 시제품까지 제작한다. 일본에서 만든 소재를 한국 공장으로 보내 시험하느라 걸렸던 시간을 최대 2개월 줄일 수 있다. 일본 소부장 기업을 삼성전자의 개발·검증 과정에 직접 연결한 셈이다.
SK의 일본 생산시설은 검토 단계지만 삼성은 이미 일본 공급망과 결합한 연구개발에 들어갔다. 일본의 기업 유치전도 단순히 공장 부지와 보조금을 제공하는 데서 벗어나 R&D와 첨단 패키징, AI·데이터센터 생태계를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넓어지고 있다.
센다이에서는 기자들이 최 회장의 답을 기다렸고 도쿄에서는 지사들이 기업에 부지·전력·용수와 보조금을 제시했다. 거점 하나가 지역의 고용과 세수, 산업구조를 바꾼 구마모토의 경험이 일본 지자체들을 움직이고 있다.
[email protected] 서혜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