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불법인 것 알지?" 캄보디아 잠잠해지니 베트남서 스캠 검거 3배 급증
【하노이(베트남)·서울=김준석 특파원·박성현 기자】 "인원이 모자라 급하게 뽑고 있습니다."
지난 8월 24일 해외 스캠 조직의 모집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접촉했던 해외 텔레마케팅(TM)을 빙자한 업체가 한 달 반 만인 지난 7일 먼저 연락을 해왔다. 해당 업체 관계자는 일자리를 구하고 있느냐고 물은 뒤 "이번에는 베트남에서 일한다"고 했다. "불법인 것은 아시죠?"라며 범죄 조직의 모집이라는 사실도 숨기지 않았다. 이어 항공권을 대신 예매해 줄 테니 빠른 시일 내에 출국하라며 재촉하기도 했다.
지난해 사회적 공분을 샀던 동남아시아 내 스캠 범죄 조직은 단속 속에서도 여전히 근절되지 않은 채 인접 국가로 무대를 넓히고 있다. 정부가 해외 공관의 경찰 인력을 보강하고 현지 수사 공조를 넓혀 가시적인 검거 성과를 거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국가를 겨냥한 단속망을 피해 베트남 등 주변국으로 거점을 옮기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범죄 조직 역시 은밀한 점조직 형태로 진화하며 수사망을 교묘히 피해 가고 있어, 국지적 단속을 넘어선 다각적이고 장기적인 국제공조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이 같은 실적은 해외 공관 경찰 인력 보강과 공조 체계 강화가 일정 부분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올해 1~8월 해외 거점 스캠 범죄 피의자의 국내 송환 인원은 484명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송환 인원(283명)을 크게 웃돌았다.
다만 국가별 검거 양상은 풍선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캄보디아는 올해 1~8월 검거 인원이 156명으로 여전히 가장 많았으나, 지난해 연간 검거 인원(255명)에 비해서는 크게 감소했다. 반면 주변국인 베트남은 지난해 29명에서 올해 1~8월 86명으로 급증해 지난해 연간 실적의 약 3배에 달했다. 이 밖에도 중국(116명), 태국(53명), 말레이시아(46명), 라오스(43명) 등 인접국에서의 검거 실적이 일제히 늘거나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정부는 현재 경찰주재관 78명과 경찰협력관 22명 등 총 100명을 해외 공관 등에 파견하고 있으며, 이 중 동남아 9개국에 37명을 배치해 수사 공조를 벌이고 있다. 캄보디아에는 대사관에 6명, 현지 경찰청 코리아전담반에 7명 등 총 13명이 배치됐다. 베트남에는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에 3명, 주호찌민 한국총영사관에 3명, 주다낭 한국총영사관에 1명 등 총 7명이 파견돼 있다.
경찰은 인터폴 적색수배와 현지 법 집행기관과의 공조를 통해 해외 도피 피의자를 추적·검거하고 국내 송환을 추진하고 있다.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국제공조도 진행 중이다. 인터폴의 범죄자금 이동 신속개입 제도(I-GRIP)를 활용해 계좌 동결 등 임시조치를 요청하고, 해외 은닉재산 추적을 위한 '은색수배서'도 활용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윤건영 의원은 "캄보디아에 대한 단속이 강화됐다고 해서 초국가적 스캠 범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며 "해외 거점을 둔 범죄 조직은 단발성 단속만으로는 뿌리 뽑기 어려운 만큼 현지 수사기관과의 국제공조를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단속과 송환 실적이 늘고 있는 가운데, 스캠 범죄 조직은 '점조직화'에 나서며 법망을 피해가고 있다. 스캠 조직들이 캄보디아에서 베트남 등 인접국으로 확산되면서 동남아 현지 교민 사회에서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하노이에 거주하는 교민 A씨는 본지에 "최근 불법 에어비앤비 단속이나 출입국법 조사 과정에서 한국인 스캠 범죄자들이 잇따라 적발되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며 "최근 부쩍 2030 남성이 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올 한해 현지 당국에 적발돼 공개된 사례만 보면, 지난 1월 하노이시 공안당국이 고급 주택가 빌라를 급습해 한국인 등 일당을 적발한 데 이어, 캄보디아 단속을 피해 박닌성 등으로 거점을 옮긴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 잇따라 공안부에 덜미를 잡혔다. 호찌민시에서도 한국 경찰의 공조 요청으로 인터폴 적색수배 중이던 조직원들이 강제 송환되는 등 캄보디아를 떠난 조직들이 베트남 일대로 은거지를 넓히는 과정에서 현지 수사망에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1년 새 피의자 숫자가 많이 감소한 캄보디아에서도 "스캠 조직이 언젠간 다시 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캄보디아 교민 B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최근 단속 등에서 많은 성과를 거뒀으나 여전히 많은 한국인이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온라인 스캠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며 "이들은 소규모로 무리를 나눠 숙소에 두문불출한 채 주로 야간에만 활동하며 극도로 노출을 피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남아 모 국가의 교민 C씨는 "캄보디아 사태 후 범죄 조직이 소규모 게릴라식으로 변했다"면서 "이들은 수개월마다 캄보디아·라오스·태국·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을 순회하면서 법망을 피해 적발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접근조·인출조·세탁조를 비롯해 검사 사칭·경찰 사칭·금융감독원 사칭 등 한 건당 최소 20명 가까운 인원이 투입됐지만, 이제는 인공지능(AI) 등의 도움으로 한 자릿수 남짓의 소수 인원으로 모든 건을 운영할 수 있어 특정 국가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면 곧바로 다른 국가로 잠적하는 풍선효과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
경찰 출신인 전형환 메가엑스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정부가 경찰주재관을 늘리면서 현지 단속과 검거가 상당히 큰 효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캄보디아에서 쫓겨난 조직들이 베트남과 태국을 거쳐 일부는 타 지역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재의 위축 국면은 조직들이 단속을 피해 잠시 웅크린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며 "스캠 조직들이 선호하는 유흥 인프라가 갖춰져 있고 처벌이 상대적으로 덜 엄격한 동남아는 여전히 이들에게 최적의 장소"라고 지적했다. 전 변호사는 "단발성 검거에 그치지 않고 주변국 수사기관과의 유기적인 공조 체계를 상시 유지하는 것이 초국가적 범죄를 막는 가장 확실한 해법"이라고 덧붙였다.
초국가적 조직 범죄의 특성상 입체적인 대응이 필수적이라는 제언도 나왔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수사망을 넓혀 국내 모집책뿐 아니라 자금책, 해외 총책까지 검거해 조직 전체를 해체해야 한다"며 "신속히 범죄수익을 추적하고 자금 세탁망도 차단해 조직의 거점 이동이나 재건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김준석 박성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