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정순민의 커튼콜] 노인을 위한 뮤지컬은 없다?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03.06 16:01

수정 2014.11.07 11:42



노인을 위한 뮤지컬이 따로 있을리 없다. 좋은 뮤지컬이란 모름지기 모든 관객에게 큰 감동을 선물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왕의 남자’ 같은 영화는 모든 연령대의 관객을 어두컴컴한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사실 외래 장르인 뮤지컬은 나이 지긋한 분들에겐 아직 낯선 측면이 있다. 중장년층 이상의 관객이 적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뮤지컬 시장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영화에 비하면 덜 대중화된 것이 사실이고 시장 자체가 20∼30대 위주로 돌아가고 있는 것 또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뮤지컬의 본고장이라고 하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그곳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 관객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객석 분위기도 20∼30대 관객이 점령하고 있는 국내와는 사뭇 다르다. 그곳에선 뮤지컬을 연금생활자들을 위한 문화 쯤으로 이해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이런 사실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브로드웨이 극장주와 프로듀서들의 모임인 미국극장주제작자연맹(LATP)이 지난 2006년 조사·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브로드웨이 관객의 평균 연령은 42세로 ‘고학력·고소득의 백인 중년 여성’이 가장 전형적인 관객의 모습이다. 지난 2006년 공연예매 사이트 티켓링크를 이용해 티켓을 구매한 관객의 평균치(31세 미혼여성)와 비교해도 열 살 이상의 차이가 나는 셈이다.

뮤지컬 시장이 좀더 덩치를 키우기 위해선 중장년층 관객의 개발이 필수적이다. 지난 2월1∼24일 서울 광화문 세종M시어터에서 초연한 ‘러브’는 그런 점에서 눈여겨 볼만한 작품이다. ‘명성황후’를 제작한 에이콤이 내놓은 ‘러브’는 ‘노인을 위한 뮤지컬’이다. 에이콤에 따르면 전체 관객의 80%가 40세 이상의 중장년층이었다. 벼락같은 흥행이라고 볼 순 없지만 적어도 중장년층으로부터는 잔잔한 반응을 이끌어내 앙코르 공연(15∼30일·KT&G 상상아트홀)도 펼칠 예정이다.

물론 ‘러브’가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요양원에서 만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마지막 사랑’이라는 한줄짜리 컨셉트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단선적인 스토리는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제 나이에 맞는 아마추어 배우를 캐스팅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들이 완벽한 앙상블을 이뤄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장년층 관객은 박수를 치며 뮤지컬 속 드라마와 음악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국내 공연계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눈높이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출현한 노인을 위한 뮤지컬이 회를 거듭하며 장수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jsm64@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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