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월드리포트

[김성호칼럼] 씁쓰레한 관계 '프레너미'/김성호 주필

파이낸셜뉴스
[김성호칼럼] 씁쓰레한 관계 '프레너미'/김성호 주필

 2012년 2월 22일 청와대 춘추관. 5년 임기에서 4년을 보낸 이명박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 문제가 질문으로 나오자 이 대통령은 "그들이(탈북자들이) 범죄자가 아닌 이상 국제 규범에 따라 처리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정부중앙청사 위기관리대책회의.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시진핑 시대의 중국을 겨냥해 중국 내수시장 선점과 관광객 유치를 위한 국내 준비태세를 철저히 점검할 것을 환기시키고 있었다.

 탈북자를 사지(死地)로 내몰지 말라고 압박할 때의 중국은, 1950년의 과거사를 논외로 치고라도 우리의 적(enemy)이다. 하지만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경제협력을 심화시키자고 할 때는 우리의 친구(friend)다. 중국과 한국 관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프레너미(Frenemy)'관계다.

 프레너미라는 말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뉴넘 칼리지의 심리학 여교수 테리 앱터의 저서 '베스트 프렌즈'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친구 간 경쟁의식이 높으며 이 때의 애증(愛憎)이 섞인, 선망과 질시가 범벅이 된 우정 관계를 이런 조어로 설명했다.

 지난 14일 중국의 미래 권력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로스앤젤레스타임스지는 '프레너미가 왔다'고 보도했다. 시진핑은 백악관 방문에 앞서 미국 내 지인들과 만찬을 가졌다. 만찬장에는 헨리 키신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등 중국을 잘 안다는 외교 거물들이 모두 앉아 있었다. 시진핑의 만찬사는 '끝내주는' 것이었다.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윈윈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상호 이익과 상호 존중을 가져오는 동반자 관계에 의거해 실질적인 일을 하러 왔습니다. 미국 민중과의 소통을 강화해 양국의 우의를 강화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시진핑이 미국을 떠나자마자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는 그의 연설 분위기와는 딴 판이었다. 지난 20일 갤럽은 '미국의 최대 적은 누구인가'라고 미국 국민에게 물었다. 답변에서 나타난 미국의 5대 적은 1위 이란(32%)을 선두로 ②중국(23%) ③북한(10%) ④아프가니스탄(7%) ⑤이라크(5%) 순서였다.

 핵 개발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는 이란이 1위로 꼽힌 것은 당연하다치고 중국을 최대 적이라고 꼽은 응답자가 지난해 조사에서는 16%에 머물렀으나 올해 23%로 껑충 뛴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을 '우려할 만한 상대'로 여기는 미국인들이 많아졌다는 방증이다.

 속내가 드러나는 여론조사와는 달리 프레너미는 외교적 수사로 미장된다. 이것은 인간관계로 치면 교언영색(巧言令色)과 같다. 그러나 포장 속의 속내는 다르다. 중국은 미국을 압도할 힘을 기를 때까지 미국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슬슬 구슬려 나갈 속셈이다. 미국은 중국이 최대 경제 대국이 돼도 실속은 미국이 차지하는 한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인 것 같다.

 중국과 미국은 경제적 의존관계를 심화시키고 있다. 지난 2010년 미국의 대 중국 무역적자는 2600억달러였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의 원재료와 부품을 들여와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니까 부가가치로 따지면 미국이 700억달러 흑자라는 분석이 있다. 실제로 애플의 아이폰은 중국에서 만들지만 대당 가격 600달러 가운데 중국이 차지하는 몫은 65달러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자료를 근거로 미국 경제주간지 포브스는 "중국 제품을 사는 것은 미국 제품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지적했다. 중국 또한 "미국 실업 증가가 중국의 수입상품 때문이라는 불만은 궤변에 불과하다"고 큰소리치기에 이르렀다.

 한국도 무역의존도에서 중국에 깊숙이 기울어진 지 오래다. 한·중, 미·중이 프레너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고 중국 내 탈북자 북송을 저지하는 문제에 힘이 빠져도 될까. 그러면 안 된다. 프레너미를 의(義)보다 이(利)를 좇는 야비한 어휘로 격하시키지 않도록 한·미 두 나라의 지혜가 발휘돼야 한다. 결코 빵만으로는 만족 못하는 게 인간의 정신이다.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