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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극일과 탈중국이 애국인가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7.13 17:36

수정 2020.07.13 17:36

[fn논단] 극일과 탈중국이 애국인가
동북아 GVC(Global Value Chain·글로벌 가치사슬)의 개편, 더 심하게는 GVC 붕괴라는 당혹스러운 이슈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일방향의 흐름이 아니라서 간단하게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시간의 흐름대로 동북아 GVC의 균열을 살펴보면 맨 처음은 중국의 중간재 자급률 상승이다. 우리의 대중국 중간재 수출, 특히 철강과 유화 제품을 중심으로 수출이 부진해지는 상황은 이미 수년 전부터 시작됐다. 다음으로는 공급망의 정치화 이슈다. 바로 1년 전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반도체 산업용 핵심소재 3종의 수출규제와 이어지는 화이트리스트 제외정책이다.
그리고 올해 초 국내 자동차 산업용 중국 내 생산부품 중 하나인 와이어링 하니스 조달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중단되면서 안전성 이슈가 추가됐다.

그리고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가장 최근의 이슈는 미국의 탈중국 압력이다. 이미 작년부터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되면서 가운데 끼인 한국의 어려움이 시작됐다. 더구나 올 들어 트럼프 행정부의 국내 정치적 입지가 약화되면서 2차 미·중 무역전쟁 발발 가능성과 미국 중심의 EPN(Economic Prosperity Network·경제번영네트워크) 부상이라는 불확실성까지 더해졌다. 경제적 배경에 정치·외교적 갈등에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까지 겹쳐 동북아 GVC가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동북아 GVC는 한·중·일 공동번영의 근간이다. 어떻게 보면 3국이 세계 시장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동북아 GVC가 완전히 와해될 경우 3국의 생산협력이 가져오는 효율성과 비용절감의 이점이 사라진다. 혹자는 남방이나 북방으로 눈을 돌려 다른 곳에 공급망을 구축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특히 그동안 소재·부품에 대한 높은 일본 의존도와 수출의 중국 시장 집중도를 낮출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럴듯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극일(克日)의 기치 아래 정부 주도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육성정책이 강하게 추진되고 있지만, 소재만 해도 그 기술이 개발되는 데만 10년 이상이 걸리고 개발된 기술이 현실에 적용되는 상업화는 또 다른 문제로 남는다. 탈중국도 여전히 많은 기업이 중국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중국 시장을 직접 공략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최소 10년 내 중국의 거대한 수요를 대체할 시장은 없다. 수출산업 중 중국 시장을 버리고 성공할 수 있는 산업은 없다.

우리는 더 현실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 동북아 GVC가 흔들리면서 물 만난 듯이 극일과 탈중국이라는 민족주의적 구호만 난무하다. 그런 흐름에서 소·부·장의 국산화와 리쇼어링(reshoring)이 마치 애국의 길인 것으로 포장되고 있다. 동북아 GVC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방향과 강도를 예단해서는 안 된다.
모자라는 대응도 안 되지만 설레발치는 과한 대응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성급하게 다가가지 말고 한발 물러서서 다양한 가능성을 살펴 헤아리는 것이 정말 애국의 길이다.
그런데 기억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극일'이라는 용어는 아마 전두환 정권 때 들어보고 근 30년 만에 처음 들어보는 것 같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경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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