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폐쇄와 개방 사이, 전환기 이슬람 세계의 한류

조용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5.04 11:08

수정 2021.05.04 11:08

2020 한류, 다음 /사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20 한류, 다음 /사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파이낸셜뉴스] 우리에게 다소 이질적인 이슬람 문화권에서 한류는 어떤 방식으로 향유되고 있을까.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권역특서 ‘2020 한류, 다음’ 이슬람 문화권 편을 발간했다.

이슬람 문화권은 단순한 종교적 신념을 넘어 종교 규범을 실생활에 적용해 할랄(Halal) 시장을 형성했고 전 세계 19억 명의 무슬림의 할랄 경제 규모는 2조 2000억 달러(약 2492조 3800억 원)이며, 2024년에는 3조 2000억 달러(약 3789조 6960억 원)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공유하는 이슬람 문화권의 소비 시장은 높은 성장률을 보여주고 있어 한류의 다음 진출지로서 접근이 필요하다. ‘2020 한류, 다음’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동시대 이슬람 문화권에 나타나는 사회 개혁의 움직임과 그 일환으로 추진되는 문화개방에 주목하는 한편, 그 속에서 한류가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고, 현지 문화 지형도에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파악했다.

■한류 할랄 인증의 교두보, 말레이시아

한류 콘텐츠에서 간접적으로 접하던 한식을 직접 체험해보고 싶다는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한식이 샤리아 율법에서 허용한 ‘할랄’에 부합하는지 따져야 한다.

‘2020 한류, 다음’은 이 점에 착안하여 할랄 인증 체계를 세우며 공신력을 확보해 세계 할랄 산업의 허브로 부상한 말레이시아와의 협력 현황과 함께 현지 할랄 산업의 주요 고객인 무슬림 청년들의 소비 동향을 다양한 업계 종사자와의 대담을 통해 촘촘히 살폈다.


■최대 무슬림 인구 인도네시아의 창의경제와 한류

이슬람협력기구(Organization of Islamic Cooperation)의 회원국 중 동남아시아 이슬람 문화를 주도해오고 있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한류가 고도로 성장한 곳이다. 인도네시아는 자국 창의산업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참고할 만한 대상으로 한류를 언급해왔다.

‘2020 한류, 다음’은 인도네시아의 현지 ‘현대화된 이슬람’이라는 수용 환경의 문화적 특성을 한류와의 관계성 속에서 살피는 한편, 인도네시아 창의산업의 블루칩으로 떠오르는 웹툰 산업을 동 분야 종사자와의 대담을 통해 현장감을 높였다.

■소수자 차별을 줄일 기폭제, 한류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우디 비전 2030’을 추진 중이며, 현지 사회는 대변혁의 시기를 겪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던 여성의 운전과 취업이 허용되고, 대중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개관했다.

여성들은 더 이상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닌, 문화를 향유할 적극적 주체로 재탄생했다. 이 지점에서 한류는 소수자를 향한 차별을 줄일 기폭제가 될 수 있다. 한류를 통해 문화 향유의 자유를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에 맞물려, 방탄소년단(BTS)은 가장 보수적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심장부에서 2019년 비아랍권 가수 최초로 스타디움 콘서트를 개최했고, 현장은 검은 아바야를 입고 환호하는 수만 명의 여성으로 가득찼다. 일련의 사회 변혁에 대한 관계자들의 견해 역시 함께 담아냈다.

■중동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지 아랍에미리트의 한류

아랍에미리트는 역내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손꼽히는 매력 국가다. 1980년대부터 관광산업을 육성해 경제 다변화 전략을 실시한 결과 2000년대 두바이는 관광도시로서 ‘세계 최초’, ‘세계 최대’, ‘세계 최고’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아랍에미리트는 전 세계인의 문화·예술·관광의 수도이자 허브가 되기를 목표로 하고 있고, 전 세계를 무대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한류와 연계된 이벤트의 유치는 아랍에미리트의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코로나19 펜데믹 시기 온라인 공간에서 영향력을 더욱 확대해오고 있는 한류가 다민족, 다문화 국가 아랍에미리트 각계각층의 수용자들에게 소비되는 방식을 인터뷰 형식을 빌려 수록했다.

■이란 ‘무슬림 키즈’가 주도하는 한류와 소셜미디어 담론

대중문화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제재 사유가 되는 양상은 이란에서 빈번히 관찰된다. 이슬람 율법을 근거로 엄격하게 통제되는 사회와는 대조적으로 여성과 청년들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SNS·뉴미디어의 환경에서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동시대 세계인과 조우한다.

여성들은 SNS 공간에서 연대하고 저항하며 젠더 구조의 제약을 극복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해왔다. 이렇게 주체성을 기른 10~20대의 젊은 여성들은 한류의 주요 수용자이자, 케이팝 팬덤 리더로 활동하며 이란 밖의 청년들과 소통한다.

이란에서 한류는 단순한 외국의 문화가 아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통제에 저항하는 의식적 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

■개방과 폐쇄 사이 전환기 이집트와 한류

2010년대 초반 시작된 ‘아랍의 봄’ 시위가 이집트에도 확산되면서, 현지 문화예술계는 희망과 혼란이라는 부침을 겪었다.
이러한 상황 속 현지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이집트 비전 2030’에는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문화산업을 국가 경제 발전을 축으로 삼으려는 시도가 담겨있다.

다만, 관련 산업 육성에 집중하는 정부의 정책과, 표현의 자유를 갈구하는 아티스트들의 현실 사이에서, 그리고 오랜 기간 지속된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대립 구도 사이에서 이집트의 문화예술계의 향방은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이러한 추세 속 한류는 일방적인 진출보다, 동시대 이집트의 문화지형도에서 수용자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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