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돈으로 푸는 성욕 안된다"…'20년 성매매' 그의 벼랑 끝 고발

뉴스1

입력 2021.09.20 10:02

수정 2021.09.20 10:23

성매매 경험 당사자이자 반성매매 활동가 봄날(가명)이 2019년 출간한 책. © 뉴스1 강수련 기자
성매매 경험 당사자이자 반성매매 활동가 봄날(가명)이 2019년 출간한 책. © 뉴스1 강수련 기자


성매매 알선-구매 포털사이트 공동고발 기자회견에서 성산업 카르텔 분쇄 퍼포먼스로 잘려나간 관련 문구들. 2018.9.17/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성매매 알선-구매 포털사이트 공동고발 기자회견에서 성산업 카르텔 분쇄 퍼포먼스로 잘려나간 관련 문구들. 2018.9.17/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26일 오전 전북 군산시 개복동 성매매 업소 화재 참사 현장이 사건 발생 11년만에 철거되고 있다. 2013.02.26/뉴스1
26일 오전 전북 군산시 개복동 성매매 업소 화재 참사 현장이 사건 발생 11년만에 철거되고 있다. 2013.02.26/뉴스1


[편집자주]중독과 상처, 고통에서 회복돼 다시 출발한 사람들의 드라마, '회복자들'을 만났습니다. 삶의 끝에 내몰린 절망을 희망으로 이겨낸 우리 이웃들입니다.

(서울=뉴스1) 강수련 기자 = 반(反)성매매 활동가 봄날(가명)은 자신의 상처를 글쓰기로 치유했다. 폭력과 가난에 내몰려 성매매 업소에서 20여 년간 일한 그는 2012년부터 4년간 블로그에 글을 썼다.


성매매업소에서 벗어난 이후였지만 트라우마는 그를 괴롭혔다. 끔찍했던 기억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문장으로 표현하면서 그는 자신의 마음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블로그 글을 토대로 2019년 출간한 책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반비출판사)은 그의 회복기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성북구 여성인권센터 '보다'에서 봄날을 만나 3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봄날'을 모색하다

-왜 글을 쓰게 됐나요?
"처음에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글을 썼어요. 탈성매매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알고 지냈던 활동가들이 블로그에 글을 써보라고 권유했어요. 저도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뒀던 얘기가 너무 많았고, 이걸 풀어내면서 위로받고 싶었던 거 같아요. 쓰고 싶은 얘기는 다 썼어요."

-글을 쓰는 게 회복에 도움이 됐나요?
"글을 쓰면 쓸수록 당시의 기억이 올라와서 사실 힘들긴 했어요. 매일 변화하고 있었고, 살아가는 게 급박했을 때라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죠. 그래도 글을 쓰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어서 참 행복했어요. 경험을 직면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에도 글쓰기가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 책 출간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었고요?
"블로그의 경험을 토대로 책을 다시 쓰는 게 어려웠어요. 제 경험을 일반인 눈높이에 맞게 쓰기 위해 3년 동안 완전히 글을 다시 썼어요. 다른 작가들의 글을 많이 보면서, 내 심정을 내 방식대로 풀어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마지막 탈고 때 기분이 정말 묘하더라고요."

그의 글은 나비효과처럼 바람을 일으켰다. 탈성매매 여성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재해석하는 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에서 만난 한 여성은 자신의 글을 읽고 탈성매매를 했다고 했다. 여성 변호사가 봄날의 블로그 글을 읽고 도움을 주겠다며 여성인권지원센터를 찾아오기도 했다. 신입 활동가 면접을 보는데 자신의 글을 읽었다는 지원자도 있었다.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은 한국에서 최초로 출간된 국내 성매매 당사자의 이야기다. 봄날은 ‘팔리든 말든 열심히 썼으니 밀어붙여 보자'며 냈지만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초판 2000권이었던 책은 4쇄까지 찍히며 에세이로는 적지 않은 8000부가 팔렸다.

그는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에서 성매매 업소를 '수렁'이라고 표현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돈을 더 벌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내 가족들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후 사직서를 내고 그 수렁 속으로 내 발로 찾아갔다. 그리고 20여 년 동안 빠져나오기 힘든 기나긴 여행을 떠났다." (책 44~45쪽)




◇"성매매 여성의 경험 모두 비슷"


글쓰기를 하면서 그는 수렁에서 점차 빠져나왔다. 2011년 자활을 시작해 4년 동안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 가정폭력 생활시설 인턴십도 마쳤다. 이후 2015년 본격적으로 활동가 길을 걷게 됐다.

봄날은 "업주와 구매자들에게 짓밟히면서 살았던 경험이 열심히 산 원동력"이라며 "구매자나 알선업자에게 다른 삶을 산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업주들은 업소를 그만두는 여성들에게 '여기 말고는 어디서 일할 수 있겠어, 돈맛을 알면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어'라고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나를 비하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일상이었던 구매자나 알선업자에게 자기가 생각지도 못하는 삶을 사는 여성들도 있다는 걸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부모가 사별·이혼해서 혼자 남겨진 여성, 가출 청소년, 가족의 학대에 도망친 여성,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업소로 온 여성 등 성매매 여성들은 서로 비슷한 불행을 공유했다.

봄날은 "폭력의 완성이 '성매매'"라고 말했다. 가정폭력·성폭력·데이트폭력이 겹쳐 있고, 사람을 도구화하는 성매매는 '자발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봄날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성매매 합법화 주장에 "성매매 여성에 대한 낙인을 없애고 노동권을 주장하며 성매매 환경을 바꾼다 해도 여성이 안전해지지 않는다"고 반박하며 "알선업자와 구매자를 강하게 처벌하고 성매매 여성은 처벌을 면제하는 '노르딕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들이 처벌받지 않으면 더 쉽게 업소를 신고할 수 있겠죠. 업주와 구매자가 있어서 성매매 여성들이 있는 거예요. 돈으로 성욕을 푸는 걸 사회가 허용하면 안 돼요. 법안을 만들고 예산을 확보하려는 정치권의 노력이 절실합니다."

◇23일 ‘성매매 방지법’ 17주년

그가 버티고 견디며 감당했던 세월의 무게를 모두 체감할 수는 없었지만 3시간의 인터뷰 동안 ‘봄날’의 의미는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누구나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 빠져나와 치유될 수 있는 안식처가 필요하다는 것. 오는 23일 ‘성매매방지법’ 시행 17주년에 봄날은 성매매 당사자들과 연대하며 반성매매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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