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의 특급논설] 정년을 65세로 늘린다고?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2.11 16:43

수정 2022.02.11 16:43

범정부 4차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가 10일 출범했다. 사진=뉴시스
범정부 4차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가 10일 출범했다. 사진=뉴시스

요약
·범정부 인구정책 TF에서 고령자 고용 활성화를 과제로 제시했다
·인구 감소 추세 속에서 정년 연장은 명분이 있다
·그러나 재계 반대와 청년층 반발을 넘어서야 한다
[파이낸셜뉴스] 직장인 정년연장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현재 정년은 60세다. 이걸 더 높이자는 취지다. 범정부 기구인 4차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는 10일 고령자 고용 활성화를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로 제시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1기 TF 출범 이래 정년연장은 단골 이슈다. TF는 계속고용제도란 용어를 쓴다. 60세 정년 뒤에도 재고용, 정년연장, 정년폐지 등을 통해 은퇴 근로자를 계속해서 노동시장에 투입하자는 얘기다.

◇정년을 연장해야 할 이유

명분은 차고 넘친다. 우리나라 출생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합계출산율 최저점은 2021년 0.86명에서 2024년 0.7명으로 더 떨어졌다. 아이를 낳지 않으니 인구가 주는 건 당연하다. 통계청은 대한민국 인구가 2020년 5184만명에서 2070년 3766만명으로 급락할 걸로 본다. 2070년 인구는 1979년 수준이다.

경제는 노동력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과거 1970~90년대 고도성장은 인구 보너스 효과를 톡톡히 봤다. 거꾸로 인구가 줄면 경제엔 마이너스다. 생산연령인구(15~65세)는 2020년 약 3738만명에서 2070년 1737만명까지 꾸준히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잠재성장률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인구 곧 소비자가 줄면 경제는 물먹은 스폰지마냥 활력을 잃는다.

정년연장을 말할 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변수가 재정이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금은 치명상을 입는다. 보험료 낼 사람은 푹푹 주는데 보험료 탈 사람들은 떼구름처럼 모여들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을 타는 나이는 2023년 63세, 2033년 65세로 높아진다. 만약 연금 보험료 내는 나이를 더 높이고(예컨대 60세에서 65세로), 타는 나이를 더 늦추면(65세에서 70세로) 재정 펑크 걱정을 덜 수 있다.

경제성장과 나라살림을 책임진 정부 눈엔 정년연장이 신의 한 수다. 2020년 기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는 710만명에 이른다. 고도성장 시대에 성장한 이들은 학력도 높고 숙련도도 높다. 정부는 이 소중한 인력풀을 더 오래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래서 자꾸 정년연장 카드를 내민다.

인구 감소 시대를 맞아 고령자 고용 활성화가 이슈로 떠올랐다. 사진=뉴시스
인구 감소 시대를 맞아 고령자 고용 활성화가 이슈로 떠올랐다. 사진=뉴시스


◇노인천국 일본은 어떤가

고령화는 일본이 선배 격이다. 자연 정년연장 대책도 우리보다 앞섰다. 진작에 인구 감소를 겪은 일본은 작년부터 정년을 70세로 높였다. 70세까지 정년 연장, 정년 폐지, 70세까지 계속고용을 제시한 뒤 기업에 선택권을 줬다.

앞서 일본은 지난 2013년 희망자 전원에게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계속고용제도를 도입했다. 한국 정부가 참고하려는 게 바로 이 제도다. 일본 전문가인 이지평 한국외국어대 특임교수(융합일본지역학부)는 지난해 4월 국가미래연구원(IFS)에 기고한 글에서 "저출산·인구고령화로 인해 젊은층 인구가 감소하는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의 고용 확대 없이는 일본 경제가 성장세를 유지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대차, 삼성전자의 경우

현대차 노사는 지난해 7월 숙련 재고용제 도입에 합의했다. 그동안 해오던 시니어 촉탁제의 이름을 바꿨다. 정년 퇴직한 숙련 노동자를 회사가 계약직 등으로 재고용하는 게 핵심이다. 원래 노조는 아예 정년연장을 못박으려 했다. 하지만 회사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재고용제는 임금을 덜 받는 대신 정년을 사실상 연장하는 효과가 있다.

한국 간판기업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시니어 트랙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인사제도 개편에서 밝힌 내용이다. 정년 뒤에도 우수 인력을 활용하자는 취지다. 언론은 개편안 중에서 '30대 임원도 나올 수 있다'는데 주목했지만 길게 보면 시니어 트랙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변화다.

국가대표 기업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시니어트랙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사옥 모습. 사진=뉴스1
국가대표 기업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시니어트랙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사옥 모습. 사진=뉴스1


◇정년연장 뭐가 걸림돌인가

정년연장은 두 군데서 기를 쓰고 반대한다. 먼저 재계다. 지난해 9월 대한상의는 국내 대·중소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중장년 인력관리에 대한 기업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내놨다. 2016년 정년이 60세로 높아진 뒤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묻는 조사였다. 중장년 인력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응답이 89%에 달했다. 이들은 높은 인건비(47.8%, 복수응답), 신규채용 부담(26.1%), 저성과자 증가(24.3%), 건강·안전관리(23.9%), 인사적체(22.1%) 등을 어려움으로 꼽았다.

노동계에서 요구하는 정년 65세 연장에 대해선 약 72%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정년연장은 시기상조'라는 답변이 40.7%로 가장 많았다.

재계가 정년연장에 손사래를 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13년 박근혜정부와 국회는 고령자고용법을 개정해 정년을 60세로 높였다. 개정안은 2016년부터 시행됐다. 당시 임금피크제가 이슈가 됐다. 재계는 정년연장을 수용하는 대신 임금피크제 의무화를 요청했다. 고령자 인건비가 크게 늘까봐서다. 그러나 개정안은 "노사 양측이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선에서 두루뭉술 마무리됐다. 재계는 정년을 65세로 높일 때 같은 일이 벌어질까 걱정한다.

◇청년실업 지금도 높은데

사실 재계 반대야 정부와 정치권이 슬쩍 뭉개면 그만이다. 하지만 청년층 반발은 대통령이라도 무시할 수 없다.

고령자 채용이 늘면 청년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건 상식이다. 상식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있다. 국책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0년 5월 '정년연장(60세)이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효과'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에 따르면 종업원 1000명 이상 대기업의 경우 정년연장의 수혜자가 1명 증가하면 실제 고령층 고용이 1명 늘었다. 거꾸로 청년층 고용은 1명 줄었다. 대기업처럼 좋은 일자리를 놓고 고령층과 청년층이 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

라이더유니온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지난해 11월 10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인근 도로에서 안전운임제 도입과 라이더보호법 제정을 요구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라이더유니온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지난해 11월 10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인근 도로에서 안전운임제 도입과 라이더보호법 제정을 요구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대 갈등 시한폭탄

지난 2013년 고령자고용법을 개정할 때 청년들은 어어 하다 당했다. 그때 정치권은 유권자 중추세력으로 등장한 50대 베이비부머 직장인들이 곧 정년(55세 전후)에 도달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여야가 서둘러 선심을 쓴 게 60세 정년연장이다. 이걸 65세로 높이면 기득권 강성 노조만 신바람이 난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났다. 지금 2030 세대는 올해 대선판을 좌우할 만큼 정치적 위상이 높아졌다. 베이비부머 표만 보고 65세 정년연장을 말하는 순간 청년표는 다 날아간다고 봐야 한다.

4차 인구정책 TF는 오는 3~6월 작업반 논의를 거쳐 7월 이후 총괄대책과 분야별 대책을 순차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발표 시기를 3월 대선과 5월 새정부 출범 이후로 잡은 것은 현명해 보인다.
그러나 작년 12월 청년층(15~29세) 체감실업률은 19.6%로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벌써 입춘이 지났지만 청년들은 여전히 춥다.
정년연장은 언제 발표하든 청년층의 거센 반발을 각오해야 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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