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외교/통일

<전문가분석> 중국과의 '전략적모호성' '안미경중' 유효한가

이종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4.19 17:07

수정 2022.04.20 01:03

'역내 5개 조약동맹 강화' 동맹 역할 주문...'회피전략' 한계
'인·태 경제 프레임워크' 글로벌 공급망 '경제 안보'는 한몸
'10대 핵심추진 과제' 한·미·일 협력 제시 "안미경중" 한계 
신냉전 진영화 속 중국과의 경제관계 선체질 개선 나서야
중, 북한 문제 역할론 환상...비핵화 개방 개혁 저지 동인 커
한국 외교·안보 정책의 원칙 재정립, 정책 위계 재정리해야
[파이낸셜뉴스]
바이든 행정부의 19쪽으로 구성된 '인도·태평양 전략' 표지. 자료=주한미대사관 홈페이지 캡처
바이든 행정부의 19쪽으로 구성된 '인도·태평양 전략' 표지. 자료=주한미대사관 홈페이지 캡처
미 바이든 행정부 대외정책의 양대 축은 ‘인도・태평양 전략’과 ‘민주주의 정상회담’이다.

미국이 출범 1년여 만에 외교정책의 중심·비중을 유럽과 중동에서 인도·태평양으로 옮긴 이후 '인도·태평양전략'을 종합·구체적으로 정리한 19쪽 분량의 문건을 지난 2022년 2월 11일 처음으로 내놓았다.

이 문건에서 미 백악관은 인·태전략을 본격적으로 제시하며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위해 앞으로 어떠한 전략을 가동할지 로드맵을 제시했다.

현시점에서 그 핵심을 다시 한번 짚어 보고 지난 정부 5년간의 '안미경중' '전략적모호성'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외교 안보 정책이 이대로 유효한지 국제외교안보 전문가 의견을 들어본다.

반길주 인하대학교 국제관계연구소 안보연구센터장은 인·태전략은 우선 "역내 핵심 동맹으로서, 한·미 동맹의 역할 제고 측면에서 '역내 5개 조약동맹(five regional treaty alliances)' 강화라는 중요한 요소가 담겨있다"고 짚으면서 "이는 역으로 말하면 이 조약 동맹국들이 다른 국가들보다 인·태전략에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미국은 인·태전략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동맹국과 그렇지 않은 동맹국을 사실상 차등화하려는 경향성이 있어왔고 오커스 동맹을 통해 호주에 원자력추진잠수함 기술 제공에 이어 최근 극초음속 미사일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은 그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이러한 차등화를 분명히 하겠다는 신호를 준 것이기에 한국은 안보와 국익을 위해 이제 이러한 전략적 모호성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반 센터장은 두 번째로 "'글로벌 공급망 재구축, 인·태 경제 프레임워크(economic framework)'가 적시돼 인태전략에 담겨 있다"며 "경제안보의 중요성, 인·태전략 참여국 간 기술혁신과 공급망 공조를 강화할 것이라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인·태전략은 근본적으로 대중국견제라는 포석이 내재해 있기에 '중국과 공급망을 분리'하겠다는 의미로 인·태전략에 참여하지 않으면 '기술혁신과 안정적인 공급망'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된다.

이는 안보와 경제가 분리되지 않고 융합되는 ‘경제안보’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방증하며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국과는 안보, 중국과는 경제라는 분리된 근시안적 ‘안미경중’ 정책이 한계에 직면하게 됐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냉전 시대에 '한국은 경제안보'를 어떻게 국가전략으로 디자인하고 '어떻게 정책화할지' 명확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진단이다.

미국 해군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 '칼 빈슨'과 영국 해군 항모 '퀸 엘리자베스', 일본 해상자위대 헬기 항모 '이세' 등 6개국 함선들이 지난 2월 3일 필리핀해에서 연합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미군 인도·태평양사령부
미국 해군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 '칼 빈슨'과 영국 해군 항모 '퀸 엘리자베스', 일본 해상자위대 헬기 항모 '이세' 등 6개국 함선들이 지난 2월 3일 필리핀해에서 연합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미군 인도·태평양사령부
반 센터장은 세 번째로 인·태전략엔 "향후 1~2년간 추진하게 될 10대 핵심추진 과제 중 하나로 ‘한·미·일 협력’ 강화를 제시했다"며 "한·일 간 경직된 관계가 지속될 경우 한·미관계도 회복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신호"라고 풀이했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한·미 동맹의 결속력을 회복할 기회이기도 하고 북한에 대한 억제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의미이다.

그러면서 반 센터장은 "한·미·일이 형식적 협력으로는 더 이상 대미 레버리지 강화도 대북 억제력 신장도 어려울 것"이라며 "지소미아(GSOMIA) 진화나 한·미·일 대탄도탄 작전 공조와 같은 실질적 안보협력·발전을 논의할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재천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여전히 한국의 외교 안보 정책을 종종 미국과 중국 간 선택의 문제로 치환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러한 선택의 관점은 ‘안미경중(安美經中)’이나 ‘균형 외교’ 같은 그럴듯한 개념으로 포장돼 정책 슬로건으로 제시되기도 했다"고 짚었다.

안보와 경제 모두 중요하며 외교도 균형적으로 하는 것이 맞으며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도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이런 일반론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관점에서는 한국 외교 안보의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신냉전의 본질은 미·중 양국의 패권 다툼이기도 하지만 기존 국제 질서 유지를 희망하는 세력과 현상 변경을 기도하는 세력의 경쟁이기도 하다"며 "한국의 선택이 ‘미국이냐 중국이냐’가 아니라 ‘기존 질서의 수호냐 새로운 질서의 수용이냐’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이 같은 질문에 먼저 답하고 각론에 임해야 한다"며 "한국이 지속적으로 번영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한국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으로 작용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다른 자유주의 국가들과 협력해 수호하고 강화해야 하고, 이러한 원칙이 다른 외교정책보다 최우선(overriding) 원칙으로 작동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세계질서는 본격적인 탈(脫)글로벌라이제이션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국경 없는 세계화의 세대는 저물고 몇몇 강대국들이 자국과 또 마음이 맞는 국가들(like-minded countries) 위주로 글로벌공급망(GVC: Gloval Supply Chain)을 재편하고 있어서, 세계 경제의 분절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해석이다.

또 김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의 경제관계에 의존하던 과거 한국의 경제 체질을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며 "전면적인 분절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탈동조화는 피하기 어렵다면 미리 체질 개선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신냉전 질서의 진영화는 북·중·러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 문제에 있어서 중국 역할론도 이제 거의 환상에 가까운 얘기다"라며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 개방 개혁을 오히려 저지하려 하는 동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차기 정부에선 이같이 안보와 경제가 분리되지 않고 융합되는 ‘경제안보’의 시대, 본격적인 강대국 경쟁시대, 탈세계화 시대에 맞는 한국의 안보·외교·통일 정책 원칙을 다시 세우고 정책의 위계를 재정리해야 할 것이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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