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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안전관리에 500명 투입하니 중대재해 0명"..극한직업은 옛말

김현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5.30 15:52

수정 2023.05.30 18:44

1년간 '작업 중지권' 875건 행사
1분기 평균 재해율, 전년비 32% 급감
26일 울산 동구에 위치한 HD현대중공업에서 HD현대중공업 하청업체 금영기업의 근로자들이 스마트폰으로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BM)를 진행하는 모습을 이정식 고용부 장관이 점검하고 있다. 사진=고용부 제공
26일 울산 동구에 위치한 HD현대중공업에서 HD현대중공업 하청업체 금영기업의 근로자들이 스마트폰으로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BM)를 진행하는 모습을 이정식 고용부 장관이 점검하고 있다. 사진=고용부 제공

[파이낸셜뉴스] "작업장이 비에 젖어 위쪽에서 작업할 때 추락 위험이 있습니다. 안전벨트 착용은 필수입니다."(작업자)
"다른 위험 요소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작업반장)
지난 26일 울산역에서 한시간 가량 차를 타고 이동하니 여의도 3배 면적에 이르는 HD현대중공업 사업장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건조가 한창인 초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앞에서 HD현대중공업 하청업체인 금영산업 작업자 10여명은 동그랗게 둘러서서 위험성평가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BM, Tool Box Meeting)를 진행하느라 분주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TBM이 단순 구두가 아닌 스마트폰을 통해 진행된다는 것이다. 폰 화면에는 위험성평가 결과로 집계된 떨어짐·베임 등 위험 요소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이는 작업자들의 안전을 위해 HD현대중공업이 개발한 모바일 안전 작업지시 프로그램이다. 작업반장은 다음날 작업 내용을 하루 전 프로그램에 입력한다. 작업자들은 구두로만 진행하면 잊을 수도 있는 당일 작업순서와 안전 유의사항을 스마트폰으로 수시로 확인하며 상기할 수 있다.

또 회의에서 원청인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위험요소를 발견할 경우 모바일이나 핫라인을 통해 '안전작업요구권'(작업 중지권)을 활용해달라고 적극 안내했다. 근로자들이 행사한 작업 중지권은 지난 1년간 875건에 이른다.

HD현대중공업 전경[현대중공업 제공]
HD현대중공업 전경[현대중공업 제공]

HD현대중공업, 안전에 500여명 투입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라 현장 안전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임직원이 1만2700여명에 달하는 HD현대중공업에서는 최근 1년간 근로자 사망 사고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HD현대중공업의 위험성 평가는 크게 반기에 한 번 이뤄지는 '정기', 비일상적인 작업 전이나 변경 사유가 발생했을 때 이뤄지는 '수시', 작업 시작 전 매일 하는 '현장' 등 세 가지로 분류된다.

위험성 평가는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중대산업재해 감축 로드맵의 핵심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규범·지침을 토대로 노사가 함께 위험 요인을 발굴·개선하는 내용이 골자다.

노진율 HD현대중공업 안전통합경영실 사장은 "지난해 3월 안전정책을 총괄하는 안전기획실과 현장안전을 담당하는 각 사업부 안전조직이 통합돼 243명 규모 안전통합경영실로 개편되는 등 작업자들의 안전의식을 높이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안전 전담 인력은 490여명으로, 50인 이상 협력사는 진단 안전 관리자를 1명 이상 의무적으로 선임하도록 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이 지난 20년간 발생한 산업재해 데이터로 개발한 인공지능(AI) 시스템도 눈길을 끈다. AI는 매일 사고 유형별 발생 확률을 예측해 그 결과를 각 부서로 전달한다. 기상에 따라 많이 발생하는 사고유형 등을 작업자에게 미리 알려 주의를 요구하는 식이다.

故정주영 회장 "이익 나도 재해 있으면 가치 없어"

이같은 노력으로 올해 1·4분기 평균 재해율(전체근로자 대비 재해근로자 비중)은 전년 대비 32% 급감했다. 연평균 재해율 역시 2021년 0.224%에서 지난해 0.187%으로 약 16.5% 줄었다.

현장에서 고용부 출입기자단을 안내한 한영석 HD현대중공업 부회장(대표이사)은 "우리 사업장에서 그 누구도 다치면서까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단 하나도 없다"며 "모든 종사자들이 출근한 모습 그대로 퇴근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는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현대그룹 창업자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아무리 이익이 나도 재해가 많이 나면 그건 아주 가치 없고 3류 국가의 4등, 5등 회사"라고 언급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날 기자단과 함께 현장을 참관한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위험성평가 제도의 확산을 위한 원·하청 상생 협력을 강조했다. 최근 사망사고의 70%가 하청업체에서 일어나는 만큼 안전보건관리에 관한 원·하청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안전에 있어서 개편된 위험성평가를 토대로 원·하청이 한 몸처럼 상생해야 한다"며 "원청이 협력업체의 안전보건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지원에 앞장서달라"고 당부했다. honestly82@fnnews.com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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