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한차례도 언급 안돼… 1기땐 17번
中 군비통제서도 '한반도 비핵화' 실종
1기에 이어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
"美가 세계 떠받치는 시대는 끝났다"
中이 설정한 '제1도련선' 방어력 강화
유럽, 한·일 등 동맹국 역할 강화 촉구
中 군비통제서도 '한반도 비핵화' 실종
1기에 이어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
"美가 세계 떠받치는 시대는 끝났다"
中이 설정한 '제1도련선' 방어력 강화
유럽, 한·일 등 동맹국 역할 강화 촉구
백악관이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정부의 최상위 외교 및 안보 정책 지침 문서인 새로운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2기 행정부의 국가 안보 목표와 계획을 담고 있다. 또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고 스스로의 이익을 지킬 것인지에 관한 종합적인 방향도 포함돼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도 20년 만에 군비통제 백서를 발표해 한반도 비핵화에 우려를 낳고 있다. 세계 안보지형이 급변하면서 한국도 강력한 영향권에 들어섰다.
■NSS 작성 의무화, 1986년부터 법제화
14일 군과 외교가에 따르면 NSS 보고서는 지난 1986년 제정된 골드워터-니콜스 법(Goldwater-Nichols Act)에 따라, 매년 대통령이 의무적으로 작성하고 공개하게 되어 있으며, 의회에 제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런 법적 규정에도 현실적인 발행 관행은 불규칙적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임기 중 1987년과 1988년 2번 발행했다. 그다음 대통령인 부시 대통령은 임기 중 총 3번을 발행했다. 4년의 임기 두 번을 연임에 성공한 클린턴 대통령은 8년 동안 7번의 보고서를 냈다.
이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NSS 보고서는 분량이 역대급으로 작다. 표지와 대통령 서문, 목차를 포함해 총 33쪽 분량이며, 본문은 29쪽에 불과하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지난 2017년 NSS 보고서의 분량은 이번 보고서보다 활자도 작고 68쪽이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 행정부의 2022년 NSS 보고서는 약 48쪽 분량이었다.
■트럼프 2기 보고서, 지난 1기 보고서 포괄
트럼프 대통령 1기 행정부 때 발표한 NSS 보고서에는 북한이 17번 언급됐지만 이번 보고서에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에는 "트럼프 1기 행정부는 미국의 강력한 강점을 성공적으로 결집해 방향을 바로잡고 새로운 황금기를 열었다며, 미국이 그 길을 계속 걸어가도록 하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 2기 행정부와 이 문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고 명기돼 있다. 따라서 이번 트럼프 2기 보고서는 트럼프 1기 보고서의 연장선에서 그 내용을 포괄하고 있음을 시사한 대목으로도 해석된다.
지난 2017년 작성한 트럼프 1기 NSS 보고서는 '원칙 있는 현실주의(principled realism)'를 바탕으로 '4대 핵심 기둥(four pillars)'을 제시했다. 이는 이전 행정부들과 달리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명확히 반영한 국익 중심의 전략이었다.
4개의 기둥은 △미국 국민, 본토, 그리고 삶의 방식 보호 △미국의 번영 증진 △힘을 통한 평화 유지 △미국의 영향력 확대로 기존의 안보 전략을 "국익 정의를 확대하여 거의 모든 국제 문제를 다루어 왔다"고 비판했다. 이에따라 미국의 핵심 국익에 초점을 맞추는 데 주력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의 힘, 영향력, 이익에 도전하는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동맹국들에는 더 많은 방위비 부담을 요구하는 등 국익 중심의 일방주의적 접근 방식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보고서는 지난 1기 보고서를 통해 면밀히 들여다봐야 명확히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2기 NSS 보고서가 분량이 작아진 이유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또 각국이 기밀로 분류하는 국가안보 잔략을 유일하게 공개하는 미국의 NSS 보고서는 상세 보고서가 아닌 기초·기본을 다룬 것으로 그 양의 과소가 가치를 평가할 요소는 아니라고 짚었다.
■강력한 중국 견제, 동맹국에 대한 결집 촉구
이번 2기 보고서에는 중국과 관련해 "상호 이익이 되는 경제적 관계를 맺길 희망한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유화적 메시지가 들어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구체적인 국가는 명시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중국을 겨냥해 "어떤 경쟁국이든 남중국해를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미국 경제와 더 넓게는 동맹국의 이익을 해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잠재적인 적대국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자유로운 해상 교역로에 통행료를 부과하거나, 그 바닷길을 통제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를 담고 있다. 아울러 보고서는 경제 안보 분야와 관련해 중국이 설정한 '제1도련선' 즉 일본 규슈 남부에서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 말라카 해협을 잇는 대미 방어선이자 미국의 대중 군사봉쇄선을 방어하는 데 필요한 능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된다고 강조했다.
동남아시아, 중남미, 중동만으로는 중국의 막대한 과잉 생산력을 흡수할 수 없다며, 유럽·일본·한국·캐나다·멕시코 등 다른 주요 국가들이 중국 경제를 가게 소비 중심으로 재균형 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무역 정책을 채택하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서방진영과 동맹국들이 중국 경제 구조를 견제하는 데 협조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분석된다.
NSS에는 한국을 향해서 국방비 증액·미군의 접근성 확대와 경제를 포함한 안보적 측면에서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공조 강화를 촉구했다. 한국을 일본과 함께 중국 방어의 핵심 동맹국으로 규정하면서 한국이 더 큰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부담 분담 요구에 따라서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투자해야 할 분야로 방위비 지출을 늘려야 된다. 서태평양에서의 연합 억제력 강화와 중국의 군사적 공세를 억제할 능력을 갖출 것도 제시했다.
중국을 견제하는 경제기술 분야에서도 한국은 미국 전략의 핵심 협력국으로 등장한다. 한국, 일본, 유럽 등과 함께 중국의 공급망 지배와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해서도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들에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 과잉 생산과 구조적 불균형에 공동 대응해야 된다고 촉구하는 게 이 보고서의 중심 내용으로 해석된다.
보고서에서는 "우리는(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현대적인 핵 억지력과 더불어 미국 본토를 위한 골든 돔을 포함한 차세대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원합다"며 "이를 통해 미국 국민, 해외에 있는 미국 자산, 그리고 미국 동맹국을 보호할 수 있다"며 미국민과 우방국에 강한 자신감도 투사했다.
트럼프 2기 국가안보 전략 보고서는 당초 9월에 나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중국 관련 표현 수위를 톤다운 해야 된다는 미 재무부 장관 스콧 베센트의 요구로 늦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 3일 미국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가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함으로써 확인됐다. 이번 보고서가 그 표면적인 표현이 완화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오히려 더 근본적이고 강력한 기조의 실행을 시사한다고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세계 각국, 자국 방어에 책임…美 우선 주의 강화
트럼프 2기 정부의 NSS 보고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작성한 서문에 '먼로 독트린'을 명시했다. 미국은 더 이상 '아틀라스처럼 세계를 떠받치는 국가'가 아니라며 동맹국이 자신을 방어하는 데 우선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개월 동안 미국은 미국과 전 세계를 재앙과 재난의 벼랑 끝에서 구해냈다며 지난 4년간의 나약함, 극단주의, 그리고 치명적인 실패 끝에, 미 행정부는 국내외에서 미국의 힘을 회복하고 세계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기 위해 긴박하고 역사적인 속도로 움직였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상 어떤 행정부도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극적인 반전을 이룬 적이 없고 취임 첫날부터 미국의 주권적 국경을 회복하고, 미국 침략을 막기 위해 미군을 배치했다고 밝혔다. 급진적인 젠더 이념이 주입된 군 내부의 광기를 일깨우며(Woke, 자각·각성), 1조달러 규모의 투자를 통해 군을 강화하기 시작했다고 기술했다.
그는 동맹을 재건하고 동맹국들이 공동 방위에 더 많이 기여하도록 했다며 여기에는 나토(NATO) 회원국들이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에서 5%로 인상하겠다는 역사적인 약속도 포함된다고 부연했다.
트럼프는 "미드나잇 해머 작전을 통해 우리는 이란의 핵 농축 능력을 완전히 파괴했다. 저는 우리 지역에서 활동하는 마약 카르텔과 잔혹한 외국 갱단을 외국 테러 조직으로 선포했다. 그리고 단 8개월 만에 캄보디아와 태국, 코소보와 세르비아, 콩고민주공화국과 르완다, 파키스탄과 인도, 이스라엘과 이란, 이집트와 에티오피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의 분쟁을 포함하여 8개의 격렬한 분쟁을 해결하고, 모든 생존 인질들을 가족에게 돌려보내 가자 지구에서의 전쟁을 종식시켰다"고 보고서를 통해 웅변했다.
NSS는 '엘리트들'이라고 지칭한 과거 지도자들이 어떻게 미국을 잘못 이끌었는지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통렬한 자성과 '미국 우선'을 뒷받침하는 원칙과 우선순위의 정책들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정확한 의중은 미국 전쟁부에서 곧 발표할 국가방위전략(NDS)에서 좀 더 명확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군비통제' 백서 발표, 북핵 용인하나
이런 가운데 중국도 지난달 27일에 군비통제와 관련된 특정 정책을 다룬 백서 '새로운 시대의 중국의 군비통제, 군축 및 비확산'을 발표했다. 중국 정부가 군비통제 백서를 발표한 것은 1995년, 2005년에 이어 20년 만이다.
중국은 앞서 지난 2005년 백서에 주요 내용으로 포함됐던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한다'는 표현을 이번 백서에서는 처음으로 생략했다. 대신 "한반도의 평화·안정·번영에 힘써왔다"는 표현을 사용해 정치적 해결과 안정 유지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용인하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어 동북아 안보 지형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의 이번 백서에는 핵 정책과 관련 중국의 핵무기·전력 운영·교리 개념·향후 발전 계획 등이 담겼다. 이를 통해 중국이 변화된 국제 질서 속에서 성장한 핵 전력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새로운 핵 질서의 중심축으로 올리려는 전략이 담겨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중국은 사실상 북한의 핵무장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최소한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겠다는 신호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북핵 불용(不容)이라는 국제사회의 공동 목표의 뿌리가 흔들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중·일 양국 간 갈등의 골이 점입가경으로 깊어지는 상황에서 일본 내 외교·안보 전문가들 역시 일본의 최대 안보 위협을 중국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카이치 일본 총리 체제에서 일본의 중장기 안보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국가안전보장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력정비계획' 등 3대 안보 문서 개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는 강한 일본을 내세우고 있는 다카이치 내각이 적의 공격에 대한 반격 능력을 넘어서서 자위대의 능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는 미-중 양국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공식 문서에서 생략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 능력 증강을 저지할 외교적 동력을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같이 중국이 북한과의 밀착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안보 딜레마에 직면하며 향후 대만 문제 등 미-중 갈등 사안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INSS는 북한의 핵 위협이 상수가 되는 안보 환경에서 한국은 자체적인 억제력 강화와 함께 한미 동맹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환경에 처할 것으로 예측했다. 중국의 2025년 군비통제 백서는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중국의 공식적 지지 철회를 시사한다는 점에서 한국 안보에 중대한 도전으로 부상하고 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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