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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 꼬리표 떼려면… AI·무인화 결합 ‘초디지털화’ 돼야 [도약하는 K방산]

이종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1.14 18:44

수정 2026.01.15 06:01

(4) 미래 전략과 과제
전통 강자 전차·자주포 등에 첨단기술 이식
전력 효율 극대화하는 실용주의 전략 짜야
MRO 등 ‘애프터마켓’ 시장 선점도 필수
‘방산 정기구독’ 국가 늘려 수익창출 도모
기술 보호·금융 지원 등 국가 정책 집행돼야
중소·벤처 협력하는 산업 생태계 조성 과제
가성비 꼬리표 떼려면… AI·무인화 결합 ‘초디지털화’ 돼야 [도약하는 K방산]
가성비 꼬리표 떼려면… AI·무인화 결합 ‘초디지털화’ 돼야 [도약하는 K방산]
한국의 방위산업(K방산)은 '우크라이나 전쟁 특수'의 수혜자를 넘어 시대의 판도를 바꾸는 '퍼스트 무버'로 안착할 수 있을까.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한 글로벌 '갭 필러'로 세계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K방산의 향배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민주주의의 병기창'에 비견될 만큼 눈부신 성장을 이뤘지만 축배를 들기엔 이르다. 이제는 '패스트 팔로어'의 관성을 깨고 우크라이나발 특수 너머의 해법을 증명해야 할 전략적 기로에 서있다.

■미국식 하이테크 너머 '실용적 퍼스트 무버'

우크라이나전쟁은 전장(戰場)의 '디지털 전환'이 앞당겨졌음을 증명했다. 전통적 플랫폼의 강점을 유지하되, 인공지능(AI)·무인화·서비스를 결합한 'K방산 2.0' 전략이 차세대 생존 방정식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지난해 2월 런던에서 열린 '밀리터리 밸런스 2025' 발간 기념 컨퍼런스에서 "우크라이나전쟁은 철기의 시대에서 소프트웨어의 시대로 넘어가는 변곡점이다. 한국의 K-9이나 K-2 같은 전통적 하드웨어가 생존하려면, 우크라이나에서 증명된 '저비용·고효율 무인 체계'와의 결합이 필수적"이라고 진단했다.

장원준 전북대 교수는 K방산은 미국식 초고가·고성능 전략을 무작정 뒤쫓기보다 중후발국들도 즉시 도입 가능한 '미들급 하이테크' 시장을 정조준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완전 무인전차보다 현실적인 유·무인 복합운용(MUM-T) 시스템, AI 파일럿을 탑재한 FA-50, KF-21과 단일 고가 위성 대신 군집 초소형 위성 정보망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첨단기술을 기존 전차·자주포 등에 신속히 이식해 전력 효율을 극대화하는 한국형 '실용주의 퍼스트 무버' 전략 제안이다.

단순 완제품 판매에서 벗어나 성능 개량과 유지·보수·정비(MRO)를 아우르는 '애프터마켓' 선점도 필수적이다. 이미 한국산 무기를 도입한 '록인(Lock-in)' 국가들을 대상으로 소프트웨어 중심의 신속 성능 개량 서비스를 상시화하는 방식이다.

■‘K방산 정기구독’ 모델 구축, 페루 사례 확대해야

가장 혁신적인 과제는 방산의 서비스화다. 전 세계 안보협력국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한국 무기의 성능과 정비를 고정적으로 제공받는 '방산 정기구독' 국가를 늘려가는 전략이다. 매년 일정액의 구독료를 지불하면 실시간 AI 업그레이드와 성과기반 군수지원(PBL)을 통해 전투 가동률을 보장받는 개념이다. 이는 전쟁 유무와 관계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방산 생태계'의 완성을 의미한다.

페루가 대표적이다. 지난 2024년 한국과 기본계약 체결 이후 페루는 함정, 장갑차를 계약했다. 나아가 전차·경공격기와 함께 조선소 현대화 등을 포함한 K방산 정기 구독국가로 전환되고 있다. 이를 중동·동남아·동북유럽·중남미 국가들로 확대해야 한다. 향후 수십년간 신냉전이 종식되기 전까지 이러한 전략은 안정적 무기 공급과 자국 방위산업 육성, 안정적 후속군수지원을 희망하는 주요국들에 충분한 신뢰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엄효식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사무총장은 K방산은 가성비와 신속한 납기능력은 큰 장점이다. 하지만 현지생산이 강조되는 추세 등을 고려할 때 전장에서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우위를 점할 무기체계인가의 여부가 무기를 선택하는 결정적인 요소다. 결국 대한민국 방산 무기체계가 하나의 브랜드로서 전 세계에 인식될 수 있으려면 이제는 가성비를 넘어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폴란드와 사우디가 던진 질문 "단순 구매는 끝났다"

2026년 기준 GDP의 5%를 국방비에 쏟아붓고 있는 폴란드는 이제 한국에 '기술적 동등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최근 타결된 K-2 전차 2차 실행계약 과정은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폴란드 측은 유럽형 차세대 전차(MGCS) 프로젝트와의 저울질 끝에 한국의 핵심 사격통제 장치 소스코드 공유를 요구하며 배수진을 쳤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전략적 기술 공유'라는 파격적인 결단으로 화답하며, 폴란드를 단순 소비처가 아닌 '유럽 생산 거점'으로 격상시켰다.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천궁-II 배치를 완료한 사우디는 '비전 2030'에 맞춰 현지 생산 비중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협상 과정에서 사우디 왕실은 중동·아프리카 지역의 '독점 판매권'을 요구하는 등 영민한 전략을 구사했다. 한국은 이를 '공동 마케팅 수익 배분 모델'로 전환, 유연하게 대응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제 방위산업은 무기쳬계나 플랫폼을 팔고 구축해 주는 세일러 차원이 아닌 구매국과 관련 산업을 함께 설계하는 글로벌 파트너로 연결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기술 보호는 구조적 문제로

과거 방산기술 유출은 주로 개인의 일탈이나 보안 사고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최근 이와 관련한 위협은 훨씬 구조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해외 기업과의 공동 개발·현지 생산·외국계 자본의 지분 참여가 늘어날수록 기술 보호의 경계는 모호해질 수 있다.

누가 핵심기술에 접근하는가, 기술이전 결정은 어디에서 이뤄지는가, 이사회와 지배구조는 국가안보 논리와 얼마나 충돌하는가. 이는 더 이상 보안담당자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지배구조와 국가전략의 문제가 됐다. '글로벌 협력의 역설' 속에서 핵심기술을 지키는 새로운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특히 미래 방산의 성패는 기술보다 사람에 달려 있다. AI, 로봇, 우주 기술, 그리고 방위산업과 무기획득 시스템을 이해하는 인력은 매우 희소하다. 인재 양성과 유치는 단순한 채용이 아니라 관·산·학이 함께하는 중장기 K방산 전문인력 생태계 구축이 요구된다. 대학은 연구와 교육의 허브가 되고, 기업은 인턴십과 채용, 실전 프로젝트를 제공하며, 국가는 관련 인력양성 사업, 보안과 연구 지속성을 보장하는 강력한 지원 정책과 집행에 나서야 한다. 이는 단기적 성과보다 긴 안목이 필요하다. 이 같은 구조 없이는 지속가능한 K방산도, 기술 자립도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 있다.

방산 금융 거버넌스의 고도화도 절실하다. 수십조 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뒷받침할 금융 지원 체계가 불투명하면, 기술력이 아무리 좋아도 수주전에서 패배한다. 범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외교·금융·기술 이전을 원스톱으로 관리하는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대·중·소 스타트업, 시너지 생태계 구축에 해법

K방산의 또 다른 과제는 대·중·소 스타트업이 함께하는 산업 생태계 조성에 있다. 대기업 중심 수출 모델은 빠른 성과를 내는 데에는 유리했지만, 미래기술 경쟁과 지속가능성 보장을 위해서는 중견, 중소 협력업체와의 동반 성장과 스타트업 육성이 필수다.

장 교수는 "AI 알고리즘, 센서, 소프트웨어, 로봇 부품은 오히려 중소·벤처에서 혁신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또한 첨단소재, 부품 강소업체도 키워내야 한다. 이들이 단순 하청이 아니라 공동 설계자이자 수익 공유 파트너로 참여하지 못한다면, K방산의 혁신 속도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안정적 소재·부품 공급망 구축 없이는 글로벌 4강 진입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해 11월 워싱턴DC에서 열린 '공급망 회복력과 방산 혁신' 세미나에서 "한국 방산의 강점은 '빠른 납기'였으나 미래의 강점은 '디지털 통합 능력'이 될 것이다. 특히 사물인터넷과 AI를 결합한 K방산의 MRO 서비스는 서구권 국가들이 직면한 고질적인 정비 지연 문제를 해결할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 바 있다.
퍼스트 무버란 가장 앞선 기술을 가진 국가가 아니다. 신냉전 종료 후에도 작동할 전략을 미리 준비한 국가다.


장 교수는 "K방산이 대한민국의 미래성장 동력이자 안보 자산으로 남기 위해서는 지금의 성공을 냉정하게 의심하고 다음 10년을 설계해야 한다"며 "환호가 잦아들기 전에 미래를 준비하는 용기와 과감한 투자가 K방산의 미래 30년을 보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