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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협 5개만 막아도 세계가 멈춘다 [김경민의 적시타]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06 07:00

수정 2026.03.06 07:00

호르무즈·말라카·수에즈·바브엘만데브·대만해협
원유·컨테이너·반도체가 지나가는 글로벌 해상 병목
한 곳만 흔들려도 유가·물류비·보험료 급등
전쟁·해적·기후 리스크까지…바다의 ‘목줄 경제’
세계 5대 해상 초크포인트. 제미나이 제공
세계 5대 해상 초크포인트. 제미나이 제공

[파이낸셜뉴스] 세계 무역의 대부분은 바다 위에서 움직인다. 국제해사기구(IMO)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통계를 보면 전 세계 교역량의 약 80% 이상이 해상 운송을 통해 이동한다.

하지만 그 거대한 흐름은 넓은 바다 전체가 아니라 단지 몇 개의 좁은 통로를 통해 지나간다. 지도에서 보면 작은 물길처럼 보이는 해협이 바로 그곳이다. 선박 항로가 한곳으로 집중되면서 자연스럽게 세계 경제의 병목이 된다.



국제 전략가들은 이런 곳을 '초크포인트(choke point)'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목을 조르는 지점이라는 의미다. 이곳이 흔들리면 세계 물류가 흔들린다.

현재 글로벌 공급망에서 가장 중요한 해상 초크포인트는 5곳이다. △중동의 호르무즈 해협 △동남아시아의 말라카 해협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홍해 입구의 바브엘만데브 해협 △동아시아의 대만해협이다.

이 5곳은 지리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 에너지와 원자재, 공산품이 지나가는 세계 교역의 핵심 통로라는 점이다. 이 가운데 한 곳만 흔들려도 유가와 물류비, 보험료, 금융시장까지 동시에 반응한다. 이것이 국제 정세가 긴장될 때마다 이 해협들이 가장 먼저 주목받는 배경이다.

호르무즈 해협. 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 연합뉴스
(출처=연합뉴스)
(출처=연합뉴스)

지난 1일 오전 10시 40분 중동산 석유 운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상황. 베셀파인더 화면 갈무리·뉴시스
지난 1일 오전 10시 40분 중동산 석유 운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상황. 베셀파인더 화면 갈무리·뉴시스
중동 에너지의 관문, 호르무즈 해협

이번 미국·이란 전쟁으로 가장 '핫'해진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수로로 이란과 오만 사이에 위치한다. 중동 산유국들이 생산한 원유가 세계로 나가는 사실상의 출구다.

이 해협의 폭은 약 33~40㎞ 정도에 불과하지만 실제 선박이 오갈 수 있는 항로는 훨씬 좁다. 유조선이 항해하는 통로는 약 3㎞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 주요 산유국의 원유 대부분이 이곳을 통과한다. 세계 해상 석유 수송량의 상당 부분이 이 해협을 지나기 때문에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는 사실상 '아킬레스건'으로 불린다.

중동 긴장이 높아질 때마다 이란은 종종 해협 봉쇄 가능성을 언급하며 압박 카드로 사용해 왔다. 실제 봉쇄가 이뤄진 적은 없지만 위협만으로도 시장은 즉각 반응한다.

해협 주변에서 군사적 충돌이나 선박 공격 사건이 발생하면 해상 보험료가 급등하고 선박 운항이 지연되면서 유가와 운임이 동시에 움직인다.

수에즈 운하. 연합뉴스
수에즈 운하. 연합뉴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해협들

말라카 해협은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수로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사이에 위치한다. 동아시아와 유럽, 중동을 연결하는 핵심 무역로다.

이 해협은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해상 통로 가운데 하나다. 매년 10만 척이 넘는 선박이 이곳을 통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과 일본, 중국 같은 제조업 국가들이 수입하는 에너지 상당 부분이 이 해협을 지나간다. 특히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원유 수입 가운데 약 80%가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에서는 이 문제를 '말라카 딜레마'라고 부른다. 중국의 에너지 공급이 이 좁은 해협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중국은 파키스탄과 미얀마를 연결하는 파이프라인과 육상 물류망을 구축하며 해협 의존도를 줄이려는 전략을 추진해 왔다.

수에즈 운하는 또 다른 차원의 병목이다.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인공 수로로 이집트 북부에 위치한다. 유럽과 아시아를 가장 빠르게 잇는 해상 통로다.

이 운하를 통과하면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가는 것보다 약 9000㎞의 항해 거리를 줄일 수 있다.

2021년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좌초하면서 운하가 며칠 동안 막혔던 사건은 이 수로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단 1척의 선박이 멈췄을 뿐인데 전 세계 물류망이 동시에 흔들렸다.

대만해협. 뉴스1
대만해협. 뉴스1
또 다른 병목, 홍해와 대만해협

홍해 남쪽 입구에 위치한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아프리카 지부티와 예멘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홍해를 지나 수에즈 운하로 향하는 선박들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목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 커졌다. 예멘 내전과 후티 반군의 상선 공격이 이어지면서 홍해 항로 자체가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다.

일부 선박들은 공격 위험을 피하기 위해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가는 항로를 선택하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항해 거리가 크게 늘어나고 운송 비용도 급등한다.

대만해협은 중국 본토와 대만 사이에 위치한 수로로 동아시아 해상 교역의 핵심 항로다. 일본과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를 잇는 주요 물류선이 이곳을 지나간다.

특히 반도체 공급망과 관련해 이 해협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대만은 세계 첨단 반도체 생산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관련 장비와 부품 역시 이 항로를 통해 이동한다.

경제 분석기관들은 이 해협에서 충돌이 발생할 경우 글로벌 경제에 엄청난 충격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대만해협 분쟁이 세계 GDP의 약 10%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시된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