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은 불바다 평양은 탄가루, 고유가 파도 올라탄 '검은 자립'
환율 1500원 시대의 역설, "왕따라서 좋다"는 고립의 민낯
첨단 대신 지하 막장 택한 김정은, 100불 유가 비웃는 중
석탄이 밥이고 달러다… 글로벌 전쟁 위기 속에 꽃피는 '밀수 경제'
환율 1500원 시대의 역설, "왕따라서 좋다"는 고립의 민낯
첨단 대신 지하 막장 택한 김정은, 100불 유가 비웃는 중
석탄이 밥이고 달러다… 글로벌 전쟁 위기 속에 꽃피는 '밀수 경제'
[파이낸셜뉴스] 세계 경제가 숨을 헐떡인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혔다.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왔다 갔다 한다. 환율 1500원은 한국 경제의 목을 조른다. 초연결 사회의 상호 의존은 치명적인 독이 됐다.
그런데 이 아수라장 속에서 홀로 미소 짓는 곳이 있다. 바로 평양이다. 낡은 유물 취급받던 석탄과 자력갱생이 고유가 파도를 타고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친환경·저탄소를 부르짖는 시대에 대관절, 석탄이라니.
"왕따라서 다행이야"
전 세계가 중동의 불길에 전전긍긍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시선은 달랐다. 행선지는 첨단 산업 단지가 아니었다. 낡은 석탄 광산이었다. 지도자의 동선은 곧 국가 전략이다. 지난 15일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5기 대의원 선거. 김정은은 평양 투표소 대신 평안남도 천성청년탄광을 찾았다. 대의원 후보인 탄광 지배인에게 직접 찬성표를 던졌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4년 13기 선거 때는 김일성정치대학이었다. 체제 보위를 과시했다. 7년 전 14기 선거는 최고 이공계 대학인 김책공업종합대학이었다. 과학기술 중시를 선언했다. 이번 15기는 지하 막장이다. 메시지는 명확하다. 고유가와 대북 제재라는 이중고. 북한의 생존 동력은 결국 자원 자립, 즉 '석탄'이다. 이를 안팎에 천명한 고도의 상징 조작이다.
노동신문은 연일 증산을 독려한다. '석탄 사수'가 1면을 도배한다. 세계가 에너지 네트워크에 목 졸릴 때 북한은 평온하다는 역설을 전한다. 완벽하게 배제된 고립 덕분이다. 북한은 오랜 기간 석유 의존도를 극단적으로 낮췄다. 대신 석탄을 가스화해 화학제품을 만드는 '탄소하나(C1) 화학공업'에 매달렸다.
이 기형적 산업 구조가 지금 고유가 시대에 최적화된 전시 경제 모델이라고 자찬하는 것이다. 외부 공급망이 무너질수록 평양은 "보라, 우리 식이 옳았다"며 더 큰 주체의 목소리를 낸다.
북한에서 석탄은 단순한 땔감이 아니다. 통치 자금이자 체제 결속의 강력한 무기다. 국제 유가 폭등은 북한산 석탄의 암시장 가치마저 끌어올렸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힐수록 중국과 러시아로 향하는 북한의 석탄 밀수 단가는 뛴다. 글로벌 전쟁 위기가 김정은에게 달러를 벌어다 주는 꼴이다.
100불 유가 타격감 '제로' 北의 정신승리
"석탄공업부문의 노동계급은 국가건설의 척후에서 가장 값높은 공훈을 세워가는 나라의 핵심이다. 석탄은 어제도 오늘도 우리 공업의 식량이며 자립경제발전의 동력이다."
김정은의 현장 연설은 더욱 직설적이었다. 그는 "우리의 발전이 가속될수록, 우리의 이상이 현실로 전환될수록 석탄 수요는 더욱 절실하게 제기되고 있다"며 "우리 국가의 융성 부흥을 견인해야 할 중추공업들이 다름 아닌 석탄을 연료와 원료로 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지난달 열린 9차 당대회에서 석탄 생산량을 향후 5년간 1.2배로 확대하기로 한 목표의 연장선이다.
더욱 무서운 건 내부 선전전이다. 북한은 중동 전쟁을 제국주의의 몰락으로 포장한다. 유가 폭등으로 고통받는 자본주의의 혼란을 대대적으로 생중계한다. 배급마저 끊겨 신음하는 인민들에게 정신적 포만감을 주입하는 식이다. 물질적 굶주림은 '혁명을 위한 고난'으로 승화된다. 얼굴에 묻은 까만 석탄 가루는 애국의 훈장이 된다.
1500원 환율과 150달러 유가에 휘청이는 한국. 갱도에서 석탄 가루를 씹으며 버티는 북한. 한반도가 상영 중인 블랙코미디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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